인문지리/종교

천진교 대성전

Geotopia 2022. 6. 30. 22:48

  청양군 장평면 낙지리

 

  1984년 '신도안 재개발사업'으로 신도안에서 이전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20년대 신도안으로 이주한 뒤 교세를 안정되게 유지했으나 6.20작전으로 일컬어지는 신도안 재개발 사업으로 강제 이주를 당한 이후로 교세가 계속 축소되고 있다. 

 

계룡시에 있는 신도안 동학교 마을터 안내판

 

  당시 청양에 천진교 교도가 많이 살고 있었기 때문에 청양으로 이주하게 되었다. 낙지리로 30여 가구가 이주, 정착했으나 지금은 2가구만이 남았다. 전국적으로도 교세가 많이 축소되어 30여 가구만이 남아서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한다.

  대성전에는 1명이 상주하면서 대성전을 관리하고 있다. 회당 건축 등을 추진하고 있지만 자금이 부족하여 신도의 노력 봉사로 근근히 진행하고 있는 형편이라고 전한다. 일요일에는 정기 예배를 보지만 10여 명 안쪽 사람들이 모이고, 공식 행사가 있을 때나 전국에서 많은 신도들이 온다.

 

수운상(맨 왼쪽)과 대성전. 수운상의 오른쪽으로 2대 최시형, 3대 김연국, 4대 김덕경의 비가 서 있다.

  대성전 앞에는 최제우(1대교주), 최시형(2대교주), 김연국(3대교주), 김덕경(4대교주)의 비가 나란히 서 있다. 수운 최제우가 창시한 동학은 해월 최시형에 이르러 교세를 확장하고 동학농민전쟁 등 역사에 큰 획을 그었다. 3대교주 손병희에 이르러 천도교로 이름을 바꾸고 종교 체계를 완성하기 위해 노력하였다.  그러나 이용구, 송병준 등 친일 행위자가 등장하자 이들을 출교 처분함으로써 이들이 '시천교'라는 이름으로 분파하였다. 손병희는 3.1운동에 천도교 대표로 33인에 참여하는 등 민족 계몽운동에 노력하였다.

   출교된 분파 가운데 구암 김연국이 2천여 명의 교도를 이끌고 1926년 신도안에 정착하였다. 이후 '상제교'라고 이름을 바꾸고 교세를 넓혔다. 1944년 김연국이 사망하여 그의 아들 김덕경이 4대교주를 이어 받았고 1958년에 천진교로 이름을 바꿨다. 1984년 신도안 재개발 계획에 따라 강제 이주 당하여 교당이 청양군 장평면 낙지리로 이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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