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세상사는 이야기

휴대폰 카메라

Geotopia 2020. 6. 8. 00:02

▣ 100배 줌, 어불성설?

 

  아직은 DSLR에 견줄만한 정도는 못되지만 휴대폰 카메라 성능이 매우 좋아졌다. 최신형 핸드폰 광고에는 '100배줌'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사실 오랫동안 DSLR을 써온 사람으로서 '100배 줌'이라는 말을 들었을 때 '지나친 과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음식을 먹음직스럽게 찍는다든가, 애완 동물을 예쁘게 찍을 수 있다는 것까지는 그렇다치더라도 100배줌이라니? 디지털로야 얼마든지 확대가 가능하지만 카메라에 달린 작은 렌즈로는 광학적인 줌은 한계가 뚜렷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면 표준 렌즈인 캐논 50mm(F1.2)렌즈는 모두 15매(9군)의 렌즈로 구성되어 있다. 보급형인 50mm(F1.8)렌즈 조차도 6매(5군)의 렌즈로 구성되어 있다. 줌 렌즈는 더 많은 렌즈를 필요로 하는데 대표적인 줌렌즈 가운데 하나인 캐논 24-70렌즈는 무려 21매(15군)의 렌즈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니 내 상식으로는 100배 줌이란 어불성설이다.

 

▣ 폰카메라의 위력

 

  그런데,

  휴대폰 카메라를 다시 보게 되었다, 우연한 '사건'으로.

  지난 겨울에 지리과 동기들과 동아프리카 여행을 갔었다. 다녀온 다음에 각자 찍은 사진들을 공유했는데 휴대폰으로 찍은 친구의 사진 중에 좋은 사진이 의외로 많았다. 폰카메라를 믿지 않았으므로 '의외로'가 나로서는 맞는 느낌이었다. 전체적으로 해상도가 좋았지만 무엇보다 내 눈을 끈 것은 자동차로 이동 중에 찍은 사진이었다. 폰으로 찍은 사진을 보면서 내 디지털 카메라가 머쓱해졌던 것이다. 우리 일정이 짧은 기간 동안 먼 거리를 움직이는 코스여서 이동하는 시간이 많았으므로 이동 중에 찍은 사진이 많았다. 이동 중에 사진을 찍으려면 흔들리기가 쉽고(케냐 마사이마라 가는 길은 비포장이어서 몸을 가누는 것조차 힘든 곳도 많았다), 우연히 잘 찍는다 해도 먼 곳은 그럭저럭 찍히지만 가까운 곳은 선명한 정지 화면을 얻기가 어렵다. 그런데 친구가 찍은 휴대폰 카메라 사진은 가까운 곳까지도 선명한 정지 화면으로 찍힌 사진이 많았다.

 

[흔들리지 않았고 심도도 깊다 *사진: 양화목]
[들판 사진도 마찬가지다 *사진: 오병산]

▣ 이동 중 사진 찍기: 흔들리거나 앞 부분에 흘림 화면이 나오거나

 

  이동중에는 셔터 속도가 빨라야 하는데 그럴려면 조리개를 많이 열거나 감도(ISO)를 높여야 한다. 조리개를 많이 열면 심도가 얕아지므로 창밖의 풍경을 찍는 데는 적절하지 않은 경우가 많다. ISO를 높이면 셔터 속도가 빨라지는 대신에 해상도를 포기해야 한다. 날씨에 따라, 피사체에 따라 변수가 많아서 절대적인 기준이 없는데 이동 중에는 상황이 빠르게 바뀌기 마련이어서 조리개 값과 감도를 수시로 조정하기가 어렵다. 그래서 조리개 값과 ISO 값을 어느 정도 고정을 시키고 창밖을 응시하곤 한다. 그 결과는 다음과 같이 나타난다.

 

[전체가 흔들리거나]
[앞 부분은 정지 화면이 찍히지 않는다]

▣ 첫 번째 반성

 

  친구들의 휴대폰 사진을 보면서 두 가지 반성을 했다. 첫째는 휴대폰에 대한 변치 않는 고정 관념, 그리고 또 하나는 내 사진 습관.

  대놓고 휴대폰 카메라를 깔보다 보니 휴대폰 카메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것이 많았다. 우선 휴대폰 카메라 렌즈도 여러 개의 렌즈가 결합되어 만들어진다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휴대폰은 두께가 얇기 때문에 여러 장의 렌즈를 겹치는데 한계가 있다. 이 문제를 해결한 첫번째 아이디어는 렌즈를 여러 개 다는 방법이다. S20은 13㎜, 26㎜, 52㎜ 등 3개의 렌즈를 달았다. 광각과 망원렌즈를 따로 달아서 역할을 나눈 것이다. 좋은 아이디어다. 엄격히 따지자면 약간의 화각 차이가 생기겠지만(렌즈의 위치가 다르므로) 아마도 프로그램으로 문제를 어느 정도는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각각의 렌즈가 맡은 영역의 중간 부분은 디지털로 해결을 했다고 하니 화각의 차이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다. 내 카메라(S9)에도 렌즈가 두 개 달려 있는 이유를 이제서야 알았다. 

  두번째 놀라운 사실은 각각의 렌즈가 디지털 카메라용 렌즈처럼 여러 장의 렌즈가 겹쳐져 있다는 점이다. 렌즈가 그렇게 작은데 여러 장 겹쳐 있다는 사실이 놀랍기만 하다. 한 마디로 기술의 승리다. 하지만 디지털 카메라 렌즈처럼 많은 수의 렌즈를 겹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런데, 이 문제도 해결한 카메라가 등장했다. 삼성의 최신형(S20) 휴대폰은 렌즈를 옆으로 눕히는 획기적 방법으로 렌즈가 차지하는 물리적 공간을 확보했다. 그 사실을 아는 순간 무릎을 칠 수밖에 없었다. 알고 보면 간단한 원리인데 생각하기는 쉽지 않다. 발상의 전환으로 내 고루한 고정관념을 뒤집었다. 프리즘을 사용하는 것은 DSLR의 가장 기본적인 기술이다. 그 원리가 이렇게 활용될 수 있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광학 10배 줌을 확보했다. 100배줌은 디지털줌이므로 충분한 해상도를 보증하기 어렵겠지만 광학 10배줌만으로도 엄청난 것이다. 디지털 줌은 무려  1억800만 화소 광각 카메라가 비밀의 열쇠다. 이정도 화소면 디지털 줌으로도 상당한 해상도를 확보할 수 있겠다. 

  동영상은 초당 30장을 찍는 사진 연사와 같다고 한다. 정지 영상은 그렇게 찍힌 동영상에서 한 컷을 잘라내는 원리가 아닐까 추측해본다. 이동할 때  찍은 사진이 DSLR보다 나은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새롭게 알게 된 사실은 Raw파일로 저장이 된다는 점이다. 이건 사실 꽤 오래전부터 적용된 기술이라는데 아예 찾아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었다. 디지털 줌을 결합하여 구현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아웃포커싱도 어지간히 된다.

 

[Raw 파일(S9): 해상도는 많이 아쉽지만 색 관용도는 꽤 넓다]

 

▣ 두 번째 반성

 

  휴대폰 카메라 사진의 EXIF정보를 살펴보니 셔터 속도가 매우 빠르다. 흔들리지 않는 영상이 찍혔으니 당연한 것이다. 디지털 카메라도 충분히 그정도의 속도를 확보할 수 있다. 다만 ISO를 높여서 해상도를 포기해야 한다는 아쉬움이 따르지만. 조금만 생각해보면 흔들리는 사진보다는 약간의 해상도 손실을 감수하는 편이 현명하다. 어지간해서는 낮 시간에 ISO를 1000 이상을 잘 사용하지 않는 것이 내 사진 습관 가운데 하나다. 사실 올려도 상관이 없는데 왜 습관을 버리지 못하는지 지금 생각해보니 나도 잘 모르겠다. 'ISO를 높여도 된다'로 생각을 바꿔야겠다. 

  또 한 가지, 광각을 적절히 사용해야 한다는 점이다. 셔터 속도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조리개를 많이 개방해야 하는데 그럴수록 핀이 맞는 범위가 줄어드니 이동 중에 좋은 사진을 얻기가 어렵다. 더구나 망원이라니! 움직이는 상태에서 좋은 사진을 얻는 것이 거의 불가능하다. 더구나 길 사정이 좋지 못한 경우에는 더욱. 이동중에는 피사체에 집중하는 것은 어차피 어려우니 마음을 비우고 광각을 적절히 사용하는 것이 좋겠다.

 

▣ 아직은 아니지만

 

  DSLR을 기다리던 때가 불과 이십년이 채 되지 않았다. 컴퓨터가 교실에 들어오면서 디지털 사진이 유용해졌기 때문이었다. 사진이 지리수업 자료로 유용했으므로 나는 비교적 일찍 사진에 관심을 갖고 있었다. 필름을 인화해서 좋은 사진을 고르고, 큰 사이즈로 인화해서 수업에 쓰곤했는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시간도 오래 걸리고 비용도 많이 들었다. 

  그래서 처음 DSLR이 나왔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엄청 반가웠었다. 2000년 쯤이었던 것 같다. 하지만 가격을 알고는 절망했던 때가 기억에 생생하다. 그때 가격으로 3백여만원을 호가 했으니 보통 사람에게는 그림에 떡이었다. 게다가 화질도 지금과 비교하면 형편이 없는 수준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못 산 것이 천만다행이다. 그리고 불과 3~4년 남짓 지난 다음에 마침내 내 손에도 DSLR이 들어왔다. 2007년이었으니 13년 전이다. 하루가 다르게 진화를 거듭하여 해상도가 필름을 넘보는 수준이 되었다. 제조 회사도 늘어나고 기종도 많아졌다. 기계적 성능이 엄청나게 좋아져서 이젠 진화 속도가 둔화되는 단계에 이르렀다. 마치 컴퓨터의 진화가 펜티엄에서 멈춘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휴대폰 카메라가 등장한 시기도 비슷했던 것 같다. 언제나 가지고 다닐 수 있다는 장점 때문에 반가웠던 기억 역시 생생하다. 하지만 DSLR이 진화하는 속도에 비해 휴대폰 카메라의 진화 속도는 훨씬 느렸다. 점점 얇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한 휴대폰과 일정한 물리적 크기가 필요한 렌즈는 원래 함께 가기가 어려운 만남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휴대폰 카메라도 꾸준히 진화해서 보급형 디지털 카메라를 위협하는 수준에 이르렀다. 얼마 전에 렌즈 교정하러 서비스센터에 들렀다가 DSLR사용자가 크게 줄었다는 얘기를 들었다. 듣는 순간은 잠깐 의아했지만 설명을 듣고보니 금방 이해가 되었다. 바로 휴대폰 카메라 때문이다. 엄청난 해상도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일반 사용자들에게는 성능이 좋은 휴대폰 카메라가 디지털 카메라를 대신할 수 있는 훌륭한 대체제이다. 더욱이 광학줌과 해상도 등 그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이 매우 커졌으니 디지털 카메라의 운명도 크게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센서에 들어올 수 있는 빛의 양은 렌즈의 물리적 크기를 넘어서기 어렵다. 예를 들면 미러리스 카메라는 바디가 작아서 렌즈 마운트도 작다. 따라서 들어올 수 있는 빛의 양이 한계가 있어서 조리개 값을 높이는데 한계가 있다. 휴대폰은 더 작으므로 한계가 더 클 수밖에 없다. 렌즈를 여러 장 활용하는 것도 물리적 조건 때문에 한계가 뚜렷하다. 아무리 소프트웨어가 진화한다고 해도 카메라의 기본은 빛이다. 빛의 양은 물리적인 현상이므로 소프트웨어로 증폭하는 것이 불가능하다. 휴대폰 카메라가 넘볼 수 없는 영역, 거기를 잘 찾는다면 DSLR을 고집할 이유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남아 있을 것이다.

 

▣ S9 Raw 파일

 

 

▣ S9 Jpeg 파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