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세상사는 이야기

明朗奮鬪(명랑분투)

Geotopia 2020. 5. 9. 23:09

  독립기념관 겨레의 집 한쪽 벽에 커다란 태극기가 걸려 있다. 어지럽게 '낙서'가 되어있는데 자세히 보면 하나같이 명필들이 모여있다. 일제와 싸우던 독립군들이 적어 놓은 결의의 글들이다. 태극기를 앞에 놓고 결연하게 자신의 의지를 표현하고 있는 장면이 선명하게 그려진다.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한 귀퉁이 쓰여있는 '明朗奮鬪'라는 글귀다. 

 

  '明朗奮鬪"

 

  '명랑분투, 기쁘게 떨쳐 나가 싸우자'

  목숨을 내놔야 하는 그 길은 한 인간으로서는 두려운 길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독립이라는 큰 희망을 실천하는 그 길은 '기쁜' 길이기도 했으리라. 개인이 삶이 아니라 민족적 삶으로 자신을 자리 매김해야만 나올 수 있는 기쁨이다. 

  이 글귀는 비장함과 함께 한편으로는 왁자지껄 유쾌한 분위기도 전해준다. 희망은 사람을 유쾌하게 만든다. 더욱이 세속적인 희망을 넘어선 대의명분을 희망으로 가슴에 새겼으니 현실의 어려움과 두려움을 거뜬히 이길 수 있었으리라. 노래하며 춤추며 운동가의 길로 떨쳐 나가게 해 달라는 자신의 소원과 의지를 담았음을 느낀다. 

  '함주서'라는 이름이 옆에 쓰여있다. 인터넷 검색을 해봤지만 함주서라는 분에 대한 정보는 찾을 수가 없다. 이름없이 스러져간 수많은 독립투사 중에 한 분이리라. 역사에 이름을 바쳤으면 그뿐, 개인적 욕심을 모두 던져버린 그 이름.

 

 

  더불어 여러 가지 생각들이 두서없이 떠오른다. 

 

  반듯한 필체는 그들이 대부분 '글줄깨나 써 본' 지식인들이었음을 말해준다. 계급사회의 끝자락에서 식민지가 되었으므로 정세를 이해하고 독립운동에 투신한 사람들은 아무래도 지식인층이 많았던 모양이다.

 

  지금은 한자가 낯설지만 그때까지는 한자가 널리 쓰였다는 것도 알 수 있다. 깨어 있는 사람들이었던 독립운동가들 사이에서도 일반적으로 쓰였던 것을 보면 당시에는 한글이 크게 대접받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았던 그들은 강렬한 의지의 화신들이었다. 절망하거나 체념하지 않고 독립할 수 있다는 한 줌의 희망을 활활 타오를 들불의 불씨로 믿고 온몸을 던졌다. 친일파들은 '독립은 불가능하다'는 판단을 바탕으로 민족을 버리고 친일의 길을 선택했다. 현실에 순응하라는 뜻으로 '세상을 비관적으로 보지 말라'는 말을 하는 경우가 있다. 독립투사를 취조하던 친일파들이 했음직하다. 독재정권 시절에도 많이 떠돌던 논리였다. 하지만 역사는 친일파나 독재권력에 부역하던 자들의 판단이 '비관'이었음을 증명했다. 진정한 희망은 '이익'이 아니라 '정의'에서 비롯되어야 함을 일깨워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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