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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조를 향하여

Geotopia 2018. 4. 12. 21:51

▶ 존경받는 여성 셰르파도 있다

  루클라 시내가 끝나는 지점에 유명한 여성 셰르파를 추모하는 아치형 구조물이 설치되어 있다. 문과 같은 모양을 하고 있어서 본격적인 히말라야의 시작을 알린다. 우리 일행 중에는 여성 셰르파가 없고 트래킹 중에 만난 다른 팀에서도 여성 셰르파를 만난 적이 없었다여성 셰르파가 있기는 하지만 매우 드물다는 뜻이다. 보기 조차 힘든 여성 셰르파 중에서 이렇게 대대적으로 추모를 할 만한 인물이었으니 대단한 여성이었던 모양이다.

  그런데 네팔에는 셰르파 뿐만이 아니라 사회활동을 하는 사람은 절대적으로 남성이 많다. 여성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부문인 상업 부문에서도 남성들이 훨씬 많다. 인도도 비슷한 특징이 나타난다. 네팔과 인도는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은데 남성 중심 사회라는 점도 비슷한 점이다. 이런 사회적 환경에서 이 정도의 위치를 확보하기 위해서는 굉장히 많은 노력을 해야 했을 것이다. 남성 중심 사회의 벽을 넘어야 했고, 또한 셰르파로서 뛰어난 능력도 갖춰야 했을 것이므로.

 


[이곳에서부터 본격적인 트래킹이 시작된다. 동상의 주인공은 '파상 라무'라는 유명한 여성 셰르파다] 


▶ 13km를 걸어도 해발고도가 똑같다니…


  루클라에서 몬조까지는 약 13km 정도 떨어져 있다. 그런데 이 코스는 해발 2800m에서 시작하여 해발 2800m에서 끝이 나는 재미있는 코스다. 이 코스는 두드코시(Dhudh Kosi)강을 따라 이어지는데 출발점인 루클라는 하천과의 고도차가 상당히 큰 곳에 자리를 잡았다. 즉, 두드코시강과 루클라와의 고도차는 거의 600m에 이른다. 그래서 트레킹로는 루클라에서 출발하자 마자 바로 고도가 낮아지기 시작한다.

  올라가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 앞에서 내려가는 길을 만나면 전혀 반갑지 않다. 노년기 산지인 우리나라 산은 자잘한 봉우리가 많아서 능선을 타고 종주를 하다 보면 쉬지 않고 오르고 내리기를 반복한다. 심지어는 정상을 향해 올라가는 능선조차 짧은 내리막이 있는 경우도 많다. 올라가는 것이 분명한데 잠깐 내려가는 길이 있다는 뜻이다. 힘든 오르막에서 만나는 내리막은 잠깐 숨을 돌릴 수 있는 여유를 주기 보다는 여태 올라온 것이 무효가 되었다는, 그래서 더 많이 올라가야 한다는 뜻이므로 전혀 반갑지가 않다.

  이런 우리나라와 비교해 보면 히말라야는 오히려 자잘하게 오르내리는 길이 드물다. 이 코스 역시 루클라부터 낮아지기는 하지만 2600m까지 서서히 낮아져서 한동안 고도를 유지하다가 팍딩 부근에서 다시 서서히 고도가 올라가서 몬조에 이른다.

  그래서 이 구간은 그다지 힘든 구간은 아니다. 우리나라 산과 비교해봐도 최대 표고차 200m 정도를 오르내리니까 힘들지는 않다. 왠지 "히말라야 답지 않다"는 되바라진 생각이 드는데 사실 높은 봉우리를 등반하지 않는 트래킹은 대부분 이렇다. 결정적으로 고산병이 문제인데 아직 고산병이 나타날 고도가 아니므로 충분히 되바라진 생각을 할 수도 있다.


[루클라~몬조 구간 *Google earth]

   

▶ 좁끼오는 무슨 생각을 할까?

 

   산 길을 걸어가다 보면 좁끼오와 야크떼를 자주 만난다. 자동차라곤 범접할 수 없는 산길이지만 히말라야로 들어가는 가장 큰 길인 이 길은 그래도 사람과 야크가 서로 비껴설만한 넓이는 된다. 낭낭한 방울 소리와 함께 반대 방향으로 지나치거나 우리를 추월해서 올라가는 녀석들은 하나같이 입에 흰 거품을 물었다. 녀석들도 힘들기는 마찬가지라는 얘기겠지? 가끔 가다 보면 힘에 부쳐서 걸음을 멈추고 숨을 몰아쉬는 녀석들도 적지 않다.

  그런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엉뚱한 생각이 들 때가 있다. 만약 좁끼오나 야크가 생각을 할 수 있다면 무슨 생각을 할까? 산이 목적은 아닐 것이므로 먹이를 생각하며 걸을까? 아마도 가장 큰 이유는 주인이 던져주는 한 덩어리 먹이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녀석들은 그 먹이를 스스로 지고 다닌다. 제 먹이에 더하여 먹이보다 훨씬 많은 양의 짐을 함께 등에 지고 걷는 좁끼오와 야크를 보노라면 기분이 참 묘하다. 자신이 지고 가는 먹이를 꺼내 주는 주인에게 평생을 충성하는 그들, 어떻게 보면 안타까운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사람도 다를 바가 없다. 노동으로부터 소외된 사람이나 제 먹이를 스스로 진 채 거품을 물고 히말라야를 오르는 좁끼오나…

  이들의 커다란 머리 속에 뇌가 가득 차 있어서 등에 진 먹이를 스스로 꺼내 먹을수가 있다면 아마도 벌써 인간을 지배했을 것이다.


[고지대에 짐을 내리고 루클라로 돌아가는 좁끼오]

 

▶ 산 중턱에 집을 지은 이유는?

 

  길 옆으로 간간이 작은 마을이 있다. 루클라 같은 큰 마을은 없지만 제법 규모가 큰 마을도 있고 집이 서너 채에 불과한 작은 마을도 있는데 대개는 큰 마을을 이루기 보다는 몇 채씩 작은 무리를 짓고 있다. 큰 길에서 보면 계곡 건너편, 그것도 산 중턱에도 마을이 있다. 마을이라기 보다는 두세 채 외딴 집이다. 그곳에 가려면 계곡을 건너 엄청난 비탈을 올라가야 한다. 도대체 어떻게 거기에 집터를 정했을까? 어떻게도 궁금하지만 그것 보다도 왜 지었을까가 궁금하다. 셰르파 치링에게 물었더니 무어라고 대답을 하는데 내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브로큰 잉글리쉬끼리 만나면 정말 소통이 어렵다. 대충 때려잡기로는 여름철 가축을 방목할 때 쓰는 일시적인 집인 것 같다.

  그런데 마을의 집들은 대부분 정갈하다. 궁핍한 느낌보다는 얼핏 알프스 산지의 마을같은 느낌이 들기도 한다. 하지만 농민들이 히말라야에서는 가장 경제적 수준이 낮다고 한다.

  마을이 있는 곳에는 어김없이 농토가 있는데 계곡 주변의 얼마 안 되는 평지를 일구어 농토를 만들었다. 우리나라에도 산지촌이 있지만 이런 엄청난 산 속에 이루어진 마을은 그저 놀라울 뿐이다.


[계곡 옆 마을. 농토를 끼고 있다]


[산 중턱에도 작은 마을이 있다. 역시 자급할 만큼의 농토가 있다]

  

▶ 히말라야의 품속으로

    

  히말라야의 품속으로 다가갈수록 정상에 눈을 이고 있는 설산들이 뚜렷하게 보인다. 루클라에서부터 보였던 콩데는 여전히 이정표 역할을 하는데 가까이 다가가면서 모양이 조금씩 달라지는 느낌이다. 살짝 뒤로 넘어진 판판한 삼각형으로 보였는데 가까이 다가갈수록 삼각형이 사라져간다. 트레킹로가 남쪽에서 계속 북쪽으로 이어지는데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원래 보였던 남쪽 사면이 아니라 동쪽 사면이 보이기 때문이다. 콩데는 두드코시강 건너에 있다면 반대쪽, 그러니까 트레킹로가 있는 쪽에는 쿠슘 캉구르(kusum Kangguru, 6367m)라는 산이 있다. 지도상으로 보면 콩데보다 남쪽에 있는데 루클라에서는 산에 가려서 보이지 않는다. Koshigaun이라는 작은 마을에서 점심을 먹었는데 이 마을은 쿠슘 캉구르에서 시작된 계곡에 자리를 잡았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쿠슘 캉구르는 마치 두 귀가 뾰족한 배트맨처럼 생겼다. 낯선 이름은 들어도 자꾸 잊어버리기 때문에 쉽게 배트맨산으로 부르곤 했다.


[쿠슘캉구르.  빙하 침식으로 권곡(kar)이 발달하여 뾰족한 첨봉(horn)이 되었다]


  설산의 정상은 모두 빙하가 출발하여 사방에 깊은 권곡(圈谷, kar)을 만들어놓았다. 사방에 권곡이 만들어지면 정상은 자연스럽게 끝이 뾰족한 첨봉(尖峰, horn)이 된다. 콩데도 쿠슘 캉구르도 모두 정상은 칼처럼 날이 서있다.

  두드코시강은 만년설에서 발원하기 때문에 건기임에도 수위를 잘 유지하고 있다. 물의 색깔이 탁한 코발트색인데 전형적인 융빙수 색깔이다.



[융빙수가 흐르는 두드코시강]


▶  실내 연구가 중요한 이유


  베트맨산에서 흘러내린 계곡에는 큼직한 바위들이 쌓여 있다. 대부분 줄무늬가 선명한 변성암 계열의 바위인데 층리가 뚜렷해서 '혹시 퇴적암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얇은 편리구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변성암이 맞는 것 같다. 테티스해의 지향사가 융기하여 히말라야가 만들어진 것으로 단순하게 생각했었지만 실제로 히말라야는 훨씬 복잡한 지질구조를 가지고 있다. 특히 인도대륙이 아시아판에 섭입하면서 솟아오른 부분은 변성암이 많이 분포한다. 이치를 따져보면 당연한 사실인데 막연하게 히말라야는 퇴적층이 융기한 것으로 생각해왔다니… 자료를 미리 보지 않았더라면 아마도 상당히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변성암을 쉽게 퇴적암으로 단정했을지도 모른다.



[쿠슘캉구르산에서 흘러 내리는 계곡의 편마암 암괴]


   코시가운에서 점심을 먹게 되어 잠시 주변을 살펴볼 수 있었다. 집을 짓기 위해 깎은 사면에 원력들이 쌓여있다. 이곳의 해발고도는 2,700m 정도인데 그렇다면 단구일까 빙하성 쇄설물일까? 하천과의 고도차가 상당히 커서 단구로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단구가 아니라면 빙하성 쇄설물이다. 분급이 잘 이루어지지 않은 둥그스름한 돌들이 두텁게 쌓여 있다. 근처 사면에 동파로 만들어진 돌들이 굴러 떨어져 만들어진 암괴원(block field)도 있는 것으로 보아 빙하성, 또는 주빙하성 지형들이 발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암괴원 block field]


[분급이 되지 않은 원력이 퇴적되어 있는 층]


[하천 옆의 퇴적층. 융기와 침식의 증거다]



[원력이 두껍게 퇴적되어 있는 층. 분급이 어느 정도 이루어져 있고 원마도가 높은 것으로 보아 단구일 가능성이 크다]


[동파로 떨어져 나온 돌들]


[하천 옆의 퇴적층. 하천과의 고도차도 크고 퇴적층의 높이도 상당하다]


▶ '간절함'


  삼십 명이 넘는 사람들이 함께 움직이는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하지만 모두들 하나 같이 대장의 지휘에 자발적으로 따라주고 서로 양보를 하려고 애쓰는 모습을 느낄 수 있다. 이제 이틀째, 조금씩 일행들이 눈에 익기 시작한다.

  라마교의 규칙에도 대부분 금세 적응을 한다. 라마교도가 있을리가 없지만 모두들 하나같이 원주민들의 종교를 존중해준다. 마을이 있으면 어김없이 스투파나 초르텐이 있고 옴마니반메훔을 새긴 바위나 돌판들이 있다. 그런데 이런 시설들을 지날 때는 반드시 왼쪽으로 통과를 해야 하는 것이 라마교의 율법이다. 어느 곳에선가 대장이 일부러 작은 스투파를 왼쪽으로 돌아가면서 한 마디했던 것 같다. 오른쪽으로 지나가는 것이 빠른 길이었으므로 우린 무심코 오른쪽으로 지났었다. 하루가 지나자 모든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왼쪽으로 통과를 하는 라마교도가 되었다.

  어디를 가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것이 라마교 관련 경관이다. 걷기 조차 힘든 산 비탈 마을인데다 먹고 살기도 만만치 않은 곳이다. 이런 시설물을 만드는데는 많은 시간과 돈, 그리고 육체적 노력이 필요하다. 운송 수단이라고는 오로지 사람이거나 기껏해봐야 야크나 좁끼오가 전부인데 스투파 하나만 지으려고 해도 얼마나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겠는가! 차라리 그 노력과 비용으로 잘 먹고 사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자본주의적 생각이 든다.

  답은 '간절함'이다.

  물론 내가 내 맘대로 내린 답이지만 스투파, 타루초, 룽다, 옴마니반메훔 바위 등 수많은 종교 경관에서 '간절함'이 느껴진다. 극한의 자연환경에 적응하고자 하는 '간절함'. 그 '간절함'으로 인해 극한의 환경이 더욱 극한으로 가는 아이러니도 나타나지만 육체적 고난을 정신적 기쁨과 위안으로 승화시키고 있는 모습으로 보인다.


[큰 나무 주변에 타루초를 둘러 놓았다. 우리나라에서도 비슷한 풍경을 볼 수 있다]


[마을 한 가운데 서 있는 룽다]


[스투파. 뒤에 보이는 산은 콩데다]




[옴마니반메훔을 새긴 돌판]


[마을 입구에는 이런 구조물이 많다. 길은 양쪽으로 나 있어 왼쪽으로 통과한다]


▶ 몬조 가는 길에 만난 자잘한 이야기들


[선거벽보가 곳곳에 붙어 있다. 이 사람들에게도 정치가 필요하기는 한 것일까?]




[바위에 붙어있는 선거 벽보. 저걸 어떻게 붙였을까?]



[작은 마을을 지난다. 롯지와 가게들이 있는데 도대체 먹고 살 수 있을 만큼 손님이 올까 싶다]


[히말라야에도 변화의 증거들이 곳곳에 있다. 태양광 패널과 물탱크가 설치되어 있는 롯지]


[물이 풍부하고 경사가 급한 장점을 이용하여 수력발전을 한다. 상류에서 발전소로 물을 끌어들이는 도수로]



[상류의 물을 하류로 이동시켜 낙차를 얻는 수로식이다. 소규모지만 발전소와 소비지가 가까워서 효율성이 높다. 전기를 사용하는 마을이 모두 계곡 주변에 있기 때문이다. 수력 발전소가 소비지인 대도시와 멀리 떨어져 있는 우리나라와는 상황이 많이 다르다]


[대부분의 일들이 기계장비 없이 사람의 힘으로 이루어진다. 고된 노동을 바위에 새긴 옴마니반메훔으로 달랠 수 있을까?]


[집도 순전히 인력만으로 짓는다]



▶ 팍딩


[팍딩은 두드코시강과 고도차가 거의 없어서 해발고도가 2625m에 불과하다. 몬조까지 세 시간, 해발 200여m를 올라가야 한다]


[화강암 계열의 암석으로 집을 지었다. 편리(片理)구조가 나타나는 것으로 보아 화강암질 편마암이다. 건축재로는 화강암을 많이 사용한다]


[다리 건너 팍딩이 보인다. 하천을 넘는 다리가 많은데 모두 이렇게 생긴 구름다리다]


[팍딩으로 가는 구름다리에서 바라본 두드코시강]


[돌도 사람의 힘으로 나르고, 자른다. 이렇게 돌을 쌓아서 집터를 만들고 그 위에 집을 짓는다]

 

▶ 삶이란?


  세수 대야에 물을 1/3쯤 채워 놓고 아이의 손을 닦아주는 엄마를 보았다자꾸 손을 빼려는 아이와 대야 속에 새까만 땟국물을 보면서 절로 웃음이 나온다. 카메라를 들이댈 수는 없었지만 어릴적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그런데 얼굴이며 손발이 꾀죄죄한 것은 어린 아이 뿐만이 아니다. 어른, 아이 할 것없이 대체로 비슷하다. 때묻은 옷(자주 빨 수가 없으므로 그냥 입는다)을 입고 얼굴은 까무잡잡하다. 햇볕에 타서 까무잡잡한 것인지, 잘 씻지 않아서 까무잡잡한 것인지 잘 분간이 되지 않는다. 심지어는 여자들도 화장한 사람을 볼 수 없다. 우리도 예전에는 그랬으므로 이 사람들도 좀 형편이 나아지면 행색도 나아질까? 만약 그렇다면 지금 이 사람들의 삶은 우리보다는 못하다고 볼 수 있을까?

  아니다.

  이 사람들은 잘 살고 있다.

  삶이란, 잘 먹고 잘 사는 것이란 상대적인 것이다. 이 사람들, 한결같이 꾀죄죄한 얼굴에 남루한 차림이지만 상대적 박탈감에 빠지지 않고 행복하게 살고 있다. 이들에게 감히 '못 사는 사람들'이라고 낙인을 찍은 잣대는 GNI니, 평균 수명이니 하는 것들이다. 이들 잣대에는 모두 한결같이 순위가 뒤따른다. 절대적, 정성적 가치는 철저하게 배제된 잔인한 상대평가다. 그 숫자 놀음의 포로가 되어 알량한 우월감을 즐기고 있는 것이 우리다. 모두가 상대적 박탈감에 행복하지 않은 바로 우리다.

  하지만 아쉬운 장면도 있다. 루클라 비행장 옆 야크 외양간에 유리를 잔뜩 박아놓은 대문 기둥이 있다. 몬조로 가는 트래킹로 옆에 길게 쌓아놓은 시멘트 벽에는 길쭉한 대못이 세로로 박혀있다. 월담을 못하게 하려고 박아놓은 '對 밤손님 용' 방어 시설이다. 이것이 눈에 띈 이유는 내 어린 시절 우리 동네에서 한 때 유행을 했었기 때문이다. 새마을 운동이 한창이던 그 무렵 갑자기 집집마다 시멘트 블록으로 담을 치지 시작했었다. 정부에서 뭔가를 지원해줬다고 어른들이 나누는 얘기를 줏어 들었다. 시멘트 블록 쌓기의 맨 마지막 마무리 공정은 바로 깨진 유리를 박는 것이었다. 보기에도 살벌한 그 시설은 절대로 도둑이 범접을 할 수 없을 것 같은 모양이었다.

  하지만,

  만약 도둑이 온다면 어느 얼빠진 도둑이 담을 넘어 들어오겠는가, 허술해 빠진 대문으로 들어오지… 결정적으로 훔쳐갈 물건이 우리 마을 대부분 집에는 있지를 않았었다. 어린 내 마음 속에도 그런 생각이 들었으니…

  그런데 이곳, 히말라야에서 그런 시설을 보고 있다. 빼앗기는 것을 두려워 하고 자신을 것을 지키고자 하는 마음이 이 사람들 마음 속에 생기기라도 한 것일까?


[대못이 박혀있는 담장. 원래는 과객들이 등짐을 내려놓도록 만들었던 것 같은데 주인이 마음이 변한 것일까?]


▶ 옛 생각이 나는 시골 마을



[우리나라 토종닭과 똑같이 생긴 닭]


[텃밭에 채소가 자란다. 일종의 시설재배도 이루어지고 있다]


[땔감을 쌓아 놓았다. 솔잎은 우리나라에서도 애용되던 땔감이다]



[야크가죽으로 만든 의자. 가볍고 튼튼하다. 반들반들 윤이 날 만큼 오래 썼다]


▶ 산이 이름을 얻는 이유


  '산 속',

  우리나라와는 매우 다른 개념의 산 속이다. 맘 먹으면 갈 수 있는 곳이 우리 산 속이라면 이곳에서는 마음을 먹어도 도저히 갈 수 없는 산 속이 많다. 눈 덮인 설산들은 대부분 그런 산들이다. 외지인들이 와서 사냥하듯 '정복'을 하고 있지만 이곳 사람들은 오히려 신성하게 여기고 범접하지 않는다.

   눈덮인 쿠슘 캉구르(배트맨산)가 오른쪽에서 계속 우릴 따라온다. 한참을 지나온 것만 같은데 더 똑똑하게 보이다니 참 신기하다. 문득 깨닫는다.

  '큰 산은 그렇구나. 그 품에 들기도 어렵고 벗어나기도 어렵구나.'

  그래서 사람들에게 이름을 얻는 모양이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산이 바뀌었다. 보는 방향이 바뀌었기 때문에 약간 다르게 보이는 것이려니 생각했었는데 알고 보니 다른 산이다. 탐세르크(Tham Serku, 6623m)라는 산이다. 왼쪽으로는 콩데가 멀리 앞쪽으로 계속 보이는데 오른쪽으로 보이는 산은 주인공이 둘이다.


    [어느 순간 오른쪽으로 보이던 산이 바뀌었다. 이 산은 탐세르크(Tham Serku)다]

 

▶ 히말라야의 진수성찬? 적당한 소비는 상생이다.

  

  점심에 이어 저녁도 진수성찬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식판에 담아 주는 학교 급식같은 수준이지만 해발 3천m를 넘보는 산 속에서 먹는 밥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진수성찬도 보통 진수성찬이 아니다. 잠깐 '황제 여행'이란 낱말이 스친다. 석가모니가 고행을 했던 그 히말라야에서 진수성찬이라니… 왠지 죄를 짓는 것만 같고, 히말라야 트래킹에 큰 오점을 찍는 것만 같다. 하지만 대장에게서는 전혀 그런 기색이 없다. 벌써 수십 번은 이곳을 다녀간 베테랑인데 맛난 음식을 탐할 리가 없다.

  대장은 확고한 '네팔 트래킹 철학'이 있다. 굳이 설명하려 들지 않는데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보면 자연스럽게 그 철학을 읽을 수 있다. 정답은 '공정여행'이다. 짧은 시간이지만 네팔 사람들에게 일거리를 주는 여행이다. 카트만두에는 한국 음식을 전문으로 하는 쿡이 15명 정도 있다고 한다이들을 통하지 않으면 트래킹이 불가능하다다른 방도가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음식점이 거의 없기 때문에 이 대군사가 끼니를 해결하기가 불가능하다. 쿡들에게 의존해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는 얘기다.

  반대로 말하면 우리가 없으면 이들의 생계도 묘연하다. 이들에게 우리는 큰 일거리를 줄 수 있다는 뜻이다쿡들에게는 노동량에 상응하는 만큼 수고료를 지급한다. 일반적으로 세르파가 가장 많은 급료를 받지만 우리 팀에서는 쿡과 포터에게 더 많은 돈을 지불한다. 노동량에 비례해서 급료가 정해지는 시스템이다. 역시 대장답다.

  흥청망청은 해서도 안 되고 우리 처지에 할 수도 없다. 하지만 적당히(적지 않게) 소비하는 것은 이방인으로서 주인들에 대한 예의라고 생각해야 할 것 같다. 우리의 여행을, 우리의 '진수성찬'을 의미있게 생각하고 함께하는 사람들(쿡, 셰르파, 포터)과 주민들을 진심으로 대하자고 마음을 다잡는다.


[히말라야의 진수성찬]


▶ 대장의 에베레스트 등정기를 듣다


[멀리 몬조가 보인다]


[몬조 초입에 있는 커다란 변성암괴] 


   해발 2800m, 아직 고산병 증세가 나타나지 않는다. 모두들 긴장하고 있었는데 의외로 몸이 멀쩡하니까 슬슬 긴장이 풀리는 모양이다. 이성은 '마시지 말라'고 명령하는데 감성은 술을 찾는다. 아직은 여늬 여행지와 별로 다르지 않는 느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내일은 학교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하루 더 이곳에서 머물기 때문에 심리적 여유가 있다.

  결국 술을 마셨다. 그것도 많이… 인천공항에서 산 싸구려 위스키로 시작해서 소주로 끝장을 내고 말았다. 34달러 짜리 잭다니엘 한 병을 사왔다. 벌꿀이 들어있다고 해서 기대 반 걱정 반 하면서 샀는데 기대가 걱정이 되었다. 술꾼한테 단 맛은 쥐약이다. 그래도 군사가 많아서 그런지 삼베바지 가랭이로 방귀 새 듯이 한 병이 없어졌다.

  술판은 방으로까지 이어져서 결국 소주를 마셨다. 술병을 따면서도 마음 한 구석은 '과음하면 안 된다'를 뇌이는데 앞 자리에 앉은 상대가 강적이다. 강희권, 이 인간은 정말 덩치값을 한다. 그의 사전에는 '그만 마시자'는 말이 없는 것이 분명하다.

   걱정이 돼서 각 방을 순찰하던 대장까지 합류해서 술판이 더 길어졌다. 뜻하지 않게 대장의 에베레스트 등정기를 들었다. 2002년 실패담과 2006년 성공담은 한 편의 드라마다. 성공담보다는 실패담이 훨씬 더 드라마틱하다. 삶과 죽음의 경계를 넘나들었으니 그 생각의 깊이는 보통 사람과 같을 수가 없겠다. 에베레스트, 함부로 입에 올릴 수 없는 존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