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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말라야, 알고 가면 눈이 커지는 지리 지식들

Geotopia 2018. 1. 28. 07:58

▶ 기대 반, 걱정 반, 하지만 무조건 간다!


  못 가본 나라이기 때문이다. 지리학도에게 '못 가본 곳'은 다른 이유가 필요없는 절대적인 매력이다. 네팔 히말라야 트래킹 얘기를 처음 들었을 때 망설임 없이 참가하기로 결정한 이유이다.

  네팔, 히말라야의 품에 있는 네팔은 특히 지리학도로서는 적어도 한번은 가봐야 하는, 지리적인 의미가 큰 나라다. 신기습곡산지, 빙하지형 등 자연지리적 경관과 인도문화와 티벳문화가 융합된 독특한 문화 특성을 가지고 있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경제 수준이 낮은 나라지만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라는 점도 매력이다. 부족함이 없어 보이는데도 행복하지 않은 사람들이 많은 나라인 대한민국 사람으로서 무엇이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지 배워야 할 점이 틀림없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트래킹은 나에겐 낯선 여행이다. 짧은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고싶은 지리학도의 강박증은 트래킹 스타일의 여행보다는 넓은 지역을 빠르게 이동하는 여행 스타일을 좋아하도록 만들었다. 지금까지 여행은 항상 그랬다. 그래서 한편으로는 약간의 우려가 섞인 아쉬움도 없지 않았다. 그러나 새로운 경험이라는 매력으로 아쉬움을 이길 수 있었다.


[설산에서 공급된 빙하성 쇄설물과 하천이 운반한 화강암질의 둥근 돌이 함께 보이는 히말라야의 하천 *딩보체-추쿵 일대]


▶ 알고 가면 도움이 되는 사실들

 

*히말라야 형성 과정


[① 인도판과 아시아판 사이에 바다(테티스해)가 있었다. ② 백악기 후반 인도판이 북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면서 테티스해에 발달하던 지향사(해저 퇴적층)가 습곡으로 밀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③ 인도판이 아시아판에 접근하여 맞닿았다. ④ 인도판이 아시아판을 밀어 대히말라야가 만들어졌고 테티스해 퇴적층이 솟아 올라 테티스히말라야가 만들어졌다. ⑤ 히말라야 북쪽의 티벳 일대가 융기하여 티벳고원이 만들어졌고 히말라야와 테티스히말라야 남쪽에는 소히말라야가 만들어졌다. ⑥ 소히말라야 남쪽으로 시왈리크산지가 만들어졌다.]


  히말라야 산맥의 융기 과정은 크게 3시기로 구분된다.

  첫번째 시기는 신생대 에오세(3,800만 년 전)에 일어났다. 에오세 조산운동으로 테티스히말라야와 대히말라야가 형성되었다. 인도판이 아시아판과 부딪혀 강하게 미는 에너지 때문에 아시아판의 말단부가 밀려 올라갔다. 두 판이 모두 대륙지각이고 안정지괴이기 때문에 강한 압력에 구부러지기보다는 말단부가 완만하게 들려 올라갔다. 마치 동해지각의 확대로 한반도의 동쪽이 들려 올라간 것과 유사한 현상이다. 

  물론 두 대륙의 충돌은 중생대 백악기 후반(1억년 전~6,500만 년)에 인도 순상지(데칸 고원)가 티베트 고원을 향해 접근하면서 시작되었다. 하지만 이때의 지각운동은 히말라야 산맥 형성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지 않았던 것으로 보인다.

  두번째 시기는 신생대 마이오세(2,600만 년 전~700만 년 전)에 일어났다. 이미 융기작용이 상당히 진행되었기 때문에 내만성퇴적물과 인도 순상지의 전면이 융기하여 소히말라야를 형성했다.

  두 차례에 걸친 조산운동으로 해성퇴적층이 융기하여 현재 히말라야 산지의 4,000~5,000m 고도에서는 중생대 해서(海棲)생물인 암모나이트·벨렘라이트 화석이 많이 발견된다.


[대히말라야의 해발 6천m 이상 고산지는 설산이며 빙하의 작용으로 정상부가 뾰족하다. 반면 소히말라야 지역은 정상부의 굴곡이 완만하고 식생이 발달한다]


  세번째 시기는 제3기말(700만 년 전)에서부터 현재까지 계속되고 있는 조산운동이다. 히말라야 산록에 퇴적된 육상퇴적층을 융기시켜 외히말라야, 즉 시왈리크 산맥을 형성했다. 특히 150만 년 전(홍적세 중기) 이후 1500m 이상 융기하였고 이 융기 운동은 지금도 진행 중이다. 산술적으로 계산해 보면 '1500m/150만 년=0.1cm/Year', 매년 0.1cm라는 맹렬한 속도로 융기가 진행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과거에 하천 작용으로 만들어진 돌개구멍(Pot hole)이 융기로 고지대로 올라와 있다]


  인도판이 가한 엄청난 에너지는 티벳고원의 동쪽까지 영향을 미쳐서 인도차이나 반도 방향과 일치하는 거대한 구조선을 만들었다. 이 구조선을 따라 메콩강, 이라와디강, 살윈강 등의 긴 하천이 발달한다.


[이라와디(Irrawaddy)강은 남쪽으로 직선상의 하곡이 발달한다. *미얀마의 만달라이(Mandalay)시(사진 위 왼쪽 불빛 있는 곳) 주변]


*히말라야의 지질구조


  대표적인 신기습곡산지이지만 다른 신기산지 지역과는 다른 점이 있다. 화산이 발달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인도판과 아시아판이라는 오래된 시원육지가 부딪혀 만들어진 산지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히말라야의 많은 지역에서는 시원생대 변성암 계열의 암석이 많이 발견된다. 인도 순상지의 전면을 형성한 결정질암(結晶質岩)을 비롯하여 관입 심성암(화강암 등)도 나타난다. 알프스에 해성퇴적층이 많이 분포하는 것과 대비가 된다.


[변성암 *몬조-남체 일대]


[주민들은 건축재로 화강석을 즐겨 사용한다. *딩보체]

 

  하지만 두 대륙이 충돌하는 과정에서 대륙 사이에 바다가 있었고 여기에 지향사가 형성되었기 때문에 해성퇴적암도 분포한다. 대략 고생대와 중생대 시기로 테티스 해 해저에 퇴적되었던 퇴적층이 두 대륙의 충돌로 융기한 것이다.

  또한 하천에 의해 퇴적된 지층도 발달한다. 만입을 메운 내만성퇴적층(內灣性堆積層), 산지가 침식되어 퇴적된 육상퇴적층 등이다.


[육상퇴적층이 하천에 의해 침식되고 있다. *몬조-남체 일대]

[네팔의 지질구조 *자료:히말라야 트래킹(Daum블로그)]


*네팔의 지형


  네팔은 지형적으로 크게 4개 지역으로 구분하는데 大히말라야산맥, 小히말라야산맥, 시왈리크산맥, 타라이 산록 평지 등이다. 각각의 지형구는 동서로 길게 배열되어 있는데 그 이유는 인도판이 가하는 압력의 영향으로 압력 방향의 수직 방향으로 구조선이 발달하기 때문이다.


[인도판 진행 방향(남서→북동)의 수직방향으로 구조선이 발달하고 있다. *자료: Google earth]


[네팔의 지형 구분 *자료:히말라야 트래킹(Daum블로그)]


  먼저 대히말라야산맥 지역은 네팔의 북부 고산지대로 <티베트>와 경계를 이루며 에베레스트를 비롯하여 칸첸중가, 마나슬루, 안나푸르나, 다울라기리 등 8,000m급의 높은 산지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셰르파족을 비롯한 산악 주민들이 목축과 농경, 관광 등에 종사하면서 살고 있지만 인구가 희박하다.
  두번째는 소히말리아산맥 지역으로 대히말라야산맥 남쪽에 해당하며 마하바라트산맥이라고도 한다. 대부분 해발고도 3,000m 미만의 산지들이 분포하며 산지 사이에 산간 분지들이 발달하여 삶의 터전이 되고 있다. 카트만두 분지가 가장 대표적인 산간 분지이다. 카트만두 분지는 해발 1400m에 위치하며 너비 20km 규모의 다이아몬드형 분지로 네팔의 심장부를 이룬다.


[카트만두 분지. 소히말라야 지역에 위치하는 가장 넓은 분지이다]


  세번째는 시왈리크산맥으로 해발고도 600m∼1,000m, 평균 너비 30km의 산지 지역이다. 동-서 방향으로 발달한 산맥 사이 사이에 크고 작은 분지가 발달하는데 고온다습하여 농업이 발달한다.
  마지막은 타라이 지역으로 갠지스강 범람원인 힌두스텐 평원의 북단부에 해당한다. 타라이지역의 북부는 산록지대의 말단부로 낮은 산지를 이루며 남쪽으로 갈수록 고도가 낮아져서 해발 100m 이하인 지역도 있다. 너비는 20km 정도로 평탄한 지형과 비옥한 토양을 활용하여 농업이 발달한다. 갠지스강의 지류인 코시강, 나라야니강, 카르날리강 등이 흐른다. 최근에는 농경지 개발이 더욱 진전되어 네팔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다.


*네팔의 기후


  '네팔'하면 '눈덮인 히말라야'가 떠오르기 때문에 보통 추위를 걱정한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다지 춥지 않다. 네팔은 위도가 약 26˚N에서 30˚N 사이에 위치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제주도 보다도 훨씬 남쪽에 있는 것이다. 따라서 겨울철에도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춥지 않다. 아래의 카트만두 기후 그래프를 보면 겨울철에도 10˚C 이하로 내려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해발고도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산지 지역은 온도가 낮다. 대히말라야 지역의 해발 6천m 이상 고산지는 만년설로 덮여 있다. 그렇지만 트래킹 코스는 만년설까지는 가지 않는다. 습도, 지형 조건 등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0.5˚C/100m로 본다면 해발 3천3백m 지점에서는 카트만두(해발 1311m)에 비해 10˚C 정도 낮다고 보면 된다. 예를 들면 남체바자르(해발 3400m) 일대는 1월 평균 기온이 0˚C 안팎이 된다는 의미다. 하지만 낮기온은 훨씬 높은 것이 보통이다. 1월은 건기로 날씨가 맑기 때문에 햇볕이 따가워서 체감온도가 상당히 높다. 그러나 밤이 되면 기온이 급강하하여 상당히 춥다.

[카트만두의 기온과 강수량]




[밤 사이 창문에 하얗게 성애가 끼어 얼어 붙었다. *딩보체]



[*자료: 히말라야 트래킹(Daum블로그)]


*네팔의 인구, 면적, 교통


  약 2,938만 명으로 우리나라에 비해 훨씬 적다. 인구밀도도 약207.3명/㎢로 역시 높은 편은 아니다. 합계 출산율은 2.1명으로 수치 상으로는 인구가 늘어나지 않을 가능성이 크지만 평균 수명이 늘어나는 추세이기 때문에 인구는 지속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특이한 점은 성비가 95.5로 남성의 비율이 상당히 낮다는 점이다. 대개 출생 성비는 약간 남초를 보이지만 점차 여초로 바뀌는 것이 일반적인 경향이기는 하지만 네팔은 특히 여초가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남성들이 위험하고 힘든 일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카트만두(중심도시부)의 인구 추이]


  수도인 카트만두의 인구는 약 150만 명(2018)으로 수위도시의 인구 집중도가 그다지 높은 편은 아니다. 일반적으로 개발도상국은 종주도시화가 심하게 나타나는데 카트만두는 그렇지 않다. 그러나 Patan, Kirtipur, Thimi, Bhaktapur 등 위성도시를 포함하는 대도시권(Metropolis)의 인구는 약 300만 명을 넘는다(Wikipedia/ *인구 통계가 정확하지 않다).

  면적은 약 14만㎢로 남한 면적(100,210㎢) 보다 약간 넓고 한반도 면적(220,847㎢) 보다는 작다. 

  대히말라야 일대는 자동차 교통이 발달하지 않아 도보로 이동을 해야 한다. 단, 주요 거점에 경비행기와 헬리콥터 노선이 설치되어 있어서 카트만두 등 외부지역과 연결이 되고 있다.



[*자료: 히말라야 트래킹(Daum블로그)]


*네팔의 역사


 -고대

  · 초기 역사: 네와르(Newari)족 전설. 석가모니 탄생지-룸비니(타라이지역)

  · 아소카 왕의 네팔 방문: BC 3세기.

  · 리츠차비(Lichchhavi) 왕조(4~7세기): 히말라야 산지 무역. 티벳과 중앙아시아에 불교 문화 전파

  · 티벳의 지배(7세기 중엽)


[네팔이 석가모니의 탄생지임을 알리는 문구가 붙어 있는 불상. 최근 정부 차원에서 활발하게 홍보되고 있다. *카트만두 트리뷰반 국제공항]


 -중세

  · 누와코트(Nuwakot)왕조와 타쿠리(Thakuri)왕조(8세기 이후): 침략과 전쟁

  · 말라(Malla) 왕조(11~18세기): 타쿠리왕조의 아리데바왕이 세움. 15세기 카트만두, 박타푸르, 파탄 등 3개 왕국 성립(15세기)


[파탄왕궁]


[박타푸르왕궁]


  -근세

  · 고르카왕조(Gorka, 1769); 프리티비 나랴얀 샤가 말라 왕조 정복. 폐쇄정책. 시킴, 부탄, 타라이 점령. 청나라에 패하여 청나라의 속국이 됨.

  · 앵글로-네팔 전쟁(1814): 부투활(Butawal)의 무력 충돌→수가울리(Sugauli)조약: 시킴, 타라이 상실(*이후 1857년 인도 저항 진압의 대가로 타라이를 되돌려 받음).

  · 라나(Rana) 통치: 장바하두루의 구데타(1846)→'라나(Rana)'라는 종신 재상 취임. 라나를 세습화. 영국과 결탁하여 권력 유지. 

  -현대

  · 왕정 복귀(1951): 네팔 의회당(NC) 주도 혁명군이 라나 체제를 무너뜨림(인도의 지원을 등에 업고)→트리부반(Tribuvan) 국왕 추대(1951):라나 일족과 네팔 의회당의 연합 정부

· 입헌군주제(1955): 마헨드라 비르 비크람 샤 데브(MahendraBirBikramShahDeva)왕. 국왕과 정부(네팔 의회당)가 권력을 공유.

  · 왕정 복귀(1960): 마헨드라왕이 헌법 정지 및 의회 해산 명령. 전제 정치-판차야트(Panchaayat, 선출직 112명, 국왕 임명 28명으로 구성된 어용 의회) 체제.

  · 자유화(1980): 비렌드라 비르 비크람 샤 데브(BirendraBirBikramShahDev)왕-경제정책 실패로 체제 위기

  · 민주화 운동(1990): 네팔 의회당 중심→신헌법 제정(1990.11): 입헌군주제, 양원제, 복수 정당제 수립→네팔 공산당(UCPN)과 네팔 의회당(NC)의 각축으로 정치적 혼란이 심해짐. 1996년 이후 마오이스트(Maoist) 활동, 인민전쟁 등으로 정치적 불안 가중.

  · 비렌드라 왕 총격으로 사망(2001)→갸넨드라 비르 비크람 샤 데브(GyanendraBirBikramShahDev) 왕 즉위→극심한 정치적 혼란.

  · 과도정부 구성(2006.4): 유혈사태, 미국 및 인도의 압력→기리자 프라사드 코이랄라(GirijaPrasadKoirala) () 수상이 수상에 취임하여 과도 정부 구성.

  · 평화협정 체결(2006.11.21): 인민전쟁(1996년 이후 12,800명 사망, 10만 명 실종) 종식 합의→마오이스트 합법화, 국왕의 권력 무력화.

  · 국왕제 폐지와 민주공화국 선포(2008): 네팔연방민주공화국(The Federal Democratic Republic of Nepal) 탄생. 람 바란 야다브(Ram Baran Yadav, 네팔 의회당) 대통령, 파르만난다 자(Parmananda Jha) 부통령. 수바스 넴방(Subas Nembang, 전 임시국회의장) 제헌의회 의장. 슈파 카말 다할(PushpaKamalDaha, 마오이스트 의장) 네팔연방민주공화국 초대 수상 취임.


*네팔의 문화적 특성


  네팔의 민족구성은 인도 아리아 계열이 80%로 주류를 이루고 티벳에서 유입한 몽골계열이 17%를 차지한다. 몽골계는 주로 히말라야 산지에 많이 거주하며 나머지 지역에는 아리안 계열이 많다.


[*자료: 히말라야 트래킹(Daum블로그)]


  공용어는 네팔어이다. 네팔어는 힌디어에서 유래하였다고 알려져 있으나 직접적인 연관성은 15% 안팎에 불과하다. 영어는 공용어는 아니지만 초등학교부터 가르치고 있다. 트래킹을 중심으로 관광 산업이 발달하기 때문에 영어는 일상적으로 많이 필요하다. 하지만 공용어가 아니기 때문에 사람에 따라 편차가 크다.
  종교는 헌법에 국교로 명시한 힌두교가 86%로 가장 많고, 나머지는 불교(8%), 이슬람교(4%)를 믿는다. 특히 대히말라야 지역의 몽골계 주민들은 대부분 불교를 믿는다. 티벳에서 이주한 이들은 티벳불교(라마교)를 믿는다.
  네팔은 지리적으로 인도와 중국 사이에 있기 때문에 아리안족, 힌두문화, 티벳 문화, 몽골족, 불교문화 등이 혼합된 독특한 성격의 문화가 나타난다. 네팔 문화의 큰 특징은 힌두교와 불교의 조화로서 두 종교가 배타적이지 않고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9세기에서 15세기에 걸쳐 이슬람교도의 침략에 쫓긴 라지푸트족이 인도에서 이주해 옴으로써 인도 문화 요소가 섞이기 시작했다. 현재의 지배민족인 구르카족은 라지푸트족과 고대 이후 네팔의 주요 종족이었던 네와르족과의 혼혈족이다.


[힌두신 파르바티상과 라마불교의 마니차가 함께 있다. *루클라]


▶ 준비해두면 좋은 것들


  참여 결정은 쉽게 했지만 실행에 옮기려니 뒤따르는 생각들이 많다. 무엇보다 겨울 히말라야를 잘 탈 수 있을지가 걱정이다. 한겨울에도 산행을 해 본 경험이 없지는 않지만 그동안의 내 경험과는 비교할 수도 없는 세계 최고의 산이라는 사실 때문에 자꾸만 걱정이 앞선다.

  하지만 대장은 동네 뒷산 가듯이 얘기를 한다. 심지어는 '태조산 샤방샤방 올라갈 정도면 된다'나?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경험한 분이기 때문이려니 생각은 하면서도 함께하는 대원들을 조금은 긴장시켜야 하지 않을까 싶다. 특히 강추위 속에서 장거리 산행은 복장이 가장 큰 걱정이다. 우리나라와는 다른 환경일텐데 내가 가지고 있는 장비로 추위를 잘 이길 수 있을까? 급경사가 많을텐데 강추위 속에서 땀이라도 흥건히 흘리면 어쩌나…

  아무래도 대장은 믿을 수(?)가 없다. 광덕산이나 오르락 내리락 했던 나와 8848m를 올랐던 대장의 스케일은 비교 자체가 될 수 없다. 마침 작년에 동행했던 대원을 알게 되어 그분으로부터 정보를 입수할 수 있었다. 역시! 대원은 대장과 달리 많은 주의 사항을 귀뜸해 주었다. 추위와 고산증, 그리고 열악한 숙소 등에 대한 경고가 많다. 하지만 경험하지 않으면 듣는 것만으로는 잘 이해가 되지 않는 법이다. 추위의 강도도 정확히 가늠하기 어렵고 숙소 역시 마찬가지다. 고산증은 경험한 적이 있지만 역시 예측이 불가하다. 그래도 경험한 분의 조언을 토대로 발열 내의와 타이즈를 샀다. 기모 셔츠도 한 장 샀다. 뜨거운 물을 담을 물통도 꼭 필요하다고 해서 네팔 현지에서 구입했다. 두꺼운 파커는 부피가 커서 제껴두었는데 꼭 가지고 가야한다는 말에 챙겨 넣었다. 그리고 두루마리 화장지와 물티슈, 비누도 넉넉하게 넣었다. 결과적으로 이런 물건들은 모두 필요가 있었다. 조언을 듣지 않았다면 아마 그냥 갔을 것이다. 물론 견딜 수는 있었겠지만 많이 불편했을 것이다.

  목욕탕 슬리퍼를 하나 가지고 갔던 것도 쓸모가 있었다. 양말은 충분히 가지고 간다고 가지고 갔지만 부족해서 중간에 빨아서 신었다. 부피가 작으므로 충분하게 가지고 가면 좋을 것 같다.

  상비약들도 중요했다. 특히 진통제는 꼭 필요했다. 고산증은 사람에 따라 다양한 형태로 온다. 두통, 소화불량, 구토, 호흡곤란, 무기력 등등. 남미에 갔을 때 나는 두통으로 와서 아스피린으로 해결을 했던 경험이 있다. 그런데 아스피린을 사러 갔다가 아스피린이 진통제가 아니라 혈전 용해제로 바뀌어서 진통효과가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약사가 대신 권해줬던 진통제(굿 스펜)가 고산증을 이기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 없어도 그만인 것들


  필요없는 것들도 있었다. 등산용 셔츠는 내내 두 장으로 해결이 됐다. 건조해서 의외로 땀이 잘 나지 않아서 다음 날 그냥 다시 입어도 별 문제가 없었다. 빨래비누는 세수비누를 겸용할 수 있기 때문에 굳이 둘 다 준비할 필요는 없는 것 같다. 속옷을 여러 벌 준비해 갔지만 역시 생각보다 땀이 많이 차질 않아서 많이 필요하지 않았다. 다만 속옷은 폴리에스텔 소재의 기능성 제품이 좋았다.

  한 가지 중요한 팁을 얻었다. 여름에 주로 입는 기능성 소재의 등산복을 언더웨어로 받쳐 입는 것이다. 가는 비행기에서 읽은 트래킹 안내서에 본 내용을 원용해서 시도를 해봤는데 효과가 만점이었다. 겨울 산행에서 나는 항상 딜레마에 빠지곤 했었다. 메리야쓰를 입을 것인가, 말 것인가를 두고서. 땀이 많은 체질이라서 메리야쓰를 입어도, 입지 않아도 항상 땀이 차서 곤란했었다. 이젠 답을 얻었다. 메리야쓰 대신에 통기성이 좋은 기능성 소재의 옷을 입는 것이다. 원래는 카투만두에서 반팔 대신에 입을 생각으로 준비했는데 의외로 효자 노릇을 톡톡하게 했다. 빨기도 쉽고 무엇보다 잘 마르기 때문에 좋았다.

  방풍자켓도 이번엔 별 소용이 없었다. 비바람이 불어야 제 기능을 발휘할텐데 그런 날이 없었기 때문이다. 특히 방풍 바지는 아무 쓸모가 없었다. 하지만 눈이 덮인 높은 산지를 가려면 필요할 것 같다. 이번 트래킹에서는 그런 기회가 없었으므로 쓸 기회가 없었지만 만약 포칼데를 올라 갔다면 필요했을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겨울 산행에 애용하는 조끼 역시 별 소용이 없었다. 낮에 이동할 때는 강한 햇빛 때문에 더워서 셔츠 한 장이면 충분했다.

  어영부영 짐이 많다. 짐을 간소하게 꾸리는 편인데 이렇게 부진부진 늘어난 것은 가는 곳이 히말라야이기 때문이다. 겁을 집어 먹어서 자꾸 자잘한 것들을 챙겨 넣었기 때문이다.

  준비 끝! 가자 히말라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