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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행기도 히말라야는 피해간다

Geotopia 2018. 2. 6. 09:30

▶ 편서풍을 피해서 남쪽으로


  오후 2:40, 늦게 출발한 비행기가 남쪽으로 내려간다. 최단 코스인 대권항로로 가려면 바로 중국으로 넘어가야 하는데 남쪽으로 내려가는 이유는 무엇일까? 내 상식으로 추측할 수 있는 이유는 바람뿐이다. 편서풍이 역풍으로 작용하므로 서쪽으로 갈 때는 비행 속도가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사실은 상식이다.


[인천-카트만두 대권항로 *자료: Google earth]


  그렇다면 무역풍대까지 내려가려는 것일까? 만약 맞다면 이 비행기는 상당히 남쪽까지 내려가야 한다. 겨울철이어서 중위도고압대가 북위30도 아래로 내려가 있기 때문이다. 카트만두의 위도가 약 27.5도 정도이므로 지금은 거의 중위도고압대에 걸려 있다고 볼 수 있다. 따라서 편서풍을 피하고 무역풍을 순풍으로 받기 위해서는 북위27.5도 아래까지 내려가야 한다. 인천으로부터 약 1100km가 넘는 먼 거리다(위도 1도는 110km. 인천은 북위37.5도).

  실제로 비행기는 서해안을 따라 계속 내려가더니 제주도를 지난다. 제주도를 지나 잠시 후 서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중국 상하이로 향한다. 대략 북위 31도~32도 부근(상하이는 북위31˚12’)으로 여전히 편서풍대에 속한다. 상하이부터는 완만하게 남쪽으로 내려 가면서 비행을 계속한다. 비행 구간에서 가장 남쪽은 미얀마의 만달레이 북쪽이었는데 만달레이의 위도는 북위21° 58’ 30”이다. 이 정도면 무역풍대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전체 항로가 무역풍을 순풍으로 맞으며 갈 수 있는 위도대는 아니었지만 적어도 편서풍을 완전한 역풍으로 맞으며 가는 항로는 아니지 않을까 싶다. 미얀마를 벗어나면서 서서히 북쪽으로 방향을 틀더니 다카(방글라데시)를 지나면서 크게 북서쪽으로 방향을 틀어 카트만두로 향한다.


[중국 윈난성(북위 25도 부근) 상공을 지난다]


[미얀마 만달레이 북부(북위 21도 부근) 상공]


[방글라데시 다카(북위 24도 부근) 상공]


  이 정도면 내 추측이 크게 틀리지 않는 것 같다. 대권항로는 약 3984km정도인 반면, 실제 우리 비행기가 날아간 거리는 약4988km로 무려 1천km를 외돌아 가는 먼 항로다. 상당한 거리를 손해보는 대신에 시간을 벌 수 있고, 또 그만큼 연료를 절감할 수 있기 때문이리라.


[실제 항로 *자료: Google earth]


▶ 상식이 부족하면 추측이 정확하지 않다


  그런데

  돌아오는 길이 내 예상을 빗나갔다. 카트만두 공항을 이륙한 비행기는 히말라야를 넘어 대권항로로 돌아오리라는 내 예상과는 달리 자꾸만 남쪽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닌가! 이건 뭐지? 다카 상공까지 내려가면서 항로가 올 때와 점점 같아져 갔다. 그렇다면 내 추측은 보기 좋게 틀린 것이다. 올 때와 갈 때 모두 공통적으로 적용이 되는 어떤 항로 설치 원칙이 있을 수 있다는 뜻이다. 바람만으로 설명하는 것은 너무 단순한 추측일 가능성이 커졌다.



[카트만두에서 인천으로 돌아오는 항로. 인천에서 카트만두로 갈때와 항로가 같다]


  돌이켜 생각해 보니 카트만두로 올 때 위도를 30도까지 내려서 비행을 해도 편서풍이 역풍이기는 마찬가지였다. 겨울철이라서 중위도 고압대가 회귀선 부근 가까이 내려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일부 구간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편서풍대를 비행했는데 그 증거가 비행 속도와 비행시간이다. 대부분 구간에서 비행 속도가 시속 800~900km에 머물렀고 총 비행 시간은 7시간30분이었다. 반면에 돌아올 때는 5시간3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았다. 비행속도가 빠른 것은 당연한데 대부분 구간에서 시속 900km를 넘었다. 하노이 북쪽에서는 시속 977km를 넘나들더니 쿤밍 상공에서는 시속 1000km를 넘어섰다.

  지식이 부족하면 추측이나 가정도 한계가 있기 마련이다. 그래도 또 추측을 해봤다. 히말라야 때문일까? 가능하면 바다에서 가깝도록 항로를 정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도 있는 것 같다. 중국과의 항공협정 관계 때문은 아닐까?


▶ 비행기도 히말라야는 피해간다.


  얕은 지식은 총동원을 해봤자 절대량이 부족할 뿐이다. 더구나 이런 특수한 분야는 인터넷을 두드려봐도 시원한 답이 잘 나오지 않는다. 이런 때는 고수가 있어야 하는데 최고 고수는 당연히 기장이다. 승무원에게 혹시 기장에게 물어봐 줄 수 있는지 물었더니 망설임없이 그러겠다고 한다. 사실 큰 기대없이 한 말이었는데 의외로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생겼다.

  모니터를 한 동안 들여다 보면서 놀다가 가뭇 잠이 들었는데 승무원이 깨운다. 기장에게 물어보고 왔단다. 이렇게 고마울데가! 승무원이 전해준 내용은 이랬다.

  첫째, 비상시에 대비해서 산악지역을 피한다. 만약 사고가 발생한다면 구조, 기체 수습 등에서 산악지역은 어려움이 많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어디쯤에서 사고가 나는 상황을 가정해 보면 쉽게 이해가 된다. 비상착륙은 물론 불가능할 것이며 구조대가 접근하는 것도 매우 어려울 것이다. 자동차도 못들어가는 곳이 대부분이므로 실제 비상사태가 발생한다면 대책이 없을 것 같다.

  두번째는 기체 이상으로 빠르게 고도를 낮출 필요가 있는 상황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때 높은 산지 지역은 그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히말라야 상공에서 기압조절 장치가 고장이 났다면 하강을 해봐야 수천m 상공이므로 비상 상황에 대처할 수가 없을 것이다. 이런 이유로 히말라야 같은 높고 험준한 산지는 가능하면 피해서 항로를 평야지대로 수정한다.



[히말라야 기슭의 루클라공항. 평지가 좁아 경비행기 전용임에도 활주로를 경사지게 만들어 착륙 거리를 줄였다]


▶ 평생 공부해야 한다


  친절한 승무원 덕분에 생각지도 못했던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어서 기분이 좋다. 추측했던 것과 엇비슷한 내용도 있었지만 정답을 듣지 않는다면 모르는 것과 같다. 아무리 그럴싸한 가설을 세웠더라도 증명이 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추측은 추측일 뿐이다. 옳다는 것이 확인이 되어야 비로소 지식이 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항상 공부하고 묻는 것을 부끄러워 하거나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내가 공부하고 있는 분야는 물론이지만 다른 분야는 더욱 그렇다.

  가끔 느끼는 사실이지만 지리학 선지식이 오히려 나의 사고를 단순화시킬 수도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느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눈으로 세상을 본다. 그래서 때로는 다른 사람이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자신의 관심분야 외의 현상을 자신의 눈으로 해석하려다가는 오류를 범할 가능성이 크다. 지리학도로서 모든 현상을 지리적으로 해석하려는 버릇이 나 역시 있다. 하지만 이런 버릇이 때로는 엉뚱한 결론을 유발할 수도 있다. '대권항로'와 '바람'은 비행기 운항과 관련해서 내가 알고 있는 지식의 전부나 다름없다. 곧 내가 비행기 운항과 관련하여 판단할 수 있는 근거가 그것 뿐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비행기의 운항이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는 사실은 그 분야를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충분히 추측하고도 남는다.

  평생 공부를 해야 하는 이유다. 평생 동안 나의 눈을 스스로 의심하고 눈을 넓히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 이유다.

 

☞ 비행기가 가장 빠른 길로 가지 않을 때도 있다. http://blog.daum.net/lovegeo/678089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