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네팔 쿰부히말 트레킹

히말라야의 시작: 루클라

Geotopia 2018. 2. 18. 01:31

▶네팔 비행기 아이러니


  아이러니 하다. 자동차가 없어서 비행기를 타야 한다니…

  솔루쿰부(SoluKumbu) 트래킹이 시작되는 루클라는 자동차길이 없다. 산 아래로 내려가는 길도, 히말라야 속으로 들어가는 길도 모두 걸어가야 하는 길 뿐이다. 카트만두에서 직선거리로는 겨우 135km에 불과한데 자동차길이 없다니 우리 상식으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네팔의 경제 수준 탓도 있겠지만 워낙 지형이 험준해서 길을 놓기가 쉽지 않다. 그래서 카투만두에서 쿰부까지 자동차를 이용해서 가려면 지리(Jiri), 설레리(Salleri), 파플루(Phaplu) 같은 마을까지 자동차로 간 다음 거기서 부터는 걸어가야 하는데 본격적인 히말라야 트래킹이 시작되는 루클라까지 산 넘고 물 건너 2~4일(예전에는 지리에서 루클라까지 1주일이 걸렸다고 한다)이 걸린다. 보통사람은 히말라야는 고사하고 히말라야 문턱까지 가는 것만으로 쓰러지고도 남는다.

  그래서 대부분 트래커들은 프로펠러 소리가 엄청나게 시끄러운 작은 경비행기를 타고 루클라까지 40여 분을 날아간다. 정원은 기장, 승무원 합쳐서 20명이 안 되는 작은 비행기다. 이 또한 아이러니하다. 경비행기는 우리나라에서는 보기 어렵다. 그런데 네팔에는 아주 흔하다. Yeti, Budda, Simrik, Tara 등 경비행기 항공사가 여러 개다. 헬기도 못지 않게 많으므로 어떻게 보면 우리보다 비행기가 일상 가까이에 있는 셈이다.


[카트만두 공항의 국내선 터미널. 버스터미널 느낌?]




[우리를 카트만두에서 루클라까지 태워준 비행기]


  네팔에서는 어쩌면 누구나 주변에 아는 조종사 한 명쯤은 있을 것 같다. 우리나라에서는 조종사가 아주 귀한데…  옳지 않은 선입견이지만 낮은 경제 수준과는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다.  카투만두에서 루클라까지 비행기 삯은 340달러 정도다. 세르파, 포터, 쿡 등 트레킹 관련 일을 하는 사람들의 일당이 대략 15달러~25달러 정도니까 비행기 삯은 매우 큰 액수다. 그러니 이 비행기는 대부분의 네팔 사람들에게는 그림의 떡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많은 비행기들이 유지될 수 있는 이유는 관광객들이 많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니까 가난한 나라 네팔에 고급 교통수단인 비행기가 많은 아이러니한 상황은 수많은 관광객과 트래커들 덕분이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비행기가 많으면 비행사가 많이 필요할 것이므로 네팔에는 비행사를 양성하는 기관이 많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비행사를 양성하는 과정은 어느 나라를 막론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 이 나라에서도 아마 다르지 않을 것이고, 그렇다면 경제적 능력이 있는 사람만이 비행사가 될 수 있다는 얘기다. 가난한 나라에서 비행기는 경제적 불평등을 심화하거나, 적어도 유지하는 기능을 할 것 같다.



[솔루쿰부 일대 *Google earth]


▶ 기적같은 마을 루클라


  비행기 아래로 기복이 엄청난 산과 계곡들이 내려다 보이는데 비행기가 성큼성큼 고도를 낮춘다. 도대체 착륙할 공간이 있어 보이질 않는데 어디에 내리려는 것일까? 비행기의 특성 상 정면은 보이지 않으므로 옆으로 보이는 모습으로 추정을 해 보는데 도저히 비행장이 나올 것 같지가 않다. 가파른 경사의 계곡 위를 나는가 싶었는데 갑자기 활주로가 나타난다. 산 능선을 깎아서 활주로를 만들었다. 활주로의 시작 부분이 엄청난 낭떠러지 위에 있어서 마치 비행기가 갑자기 착륙을 하는 것만 같다. 게다가 활주로에 경사가 있어서 착륙하면 오르막을 오르도록 되어 있다. 제동 거리를 줄여서 좁은 지형을 극복하기 위한 방법이다.



[루클라 가는 비행기에서 내려다 본 히말라야 산간 마을 풍경]


[루클라 공항에 착륙 중인 경비행기]



[이륙 중. 활주로의 끝이 낭떠러지다]


  루클라의 첫 느낌은 기적과도 같은 마을이다 싶다. 도대체 마을이 있을 것 같지 않은 곳인데 제법 마을이 크다. 집들의 행색도 궁벽한 시골 느낌이 아니고 상당히 깔끔하다. 쿰부히말 트래킹 코스의 출발점이어서 관광 기능이 강한데 비행장까지 만들어지면서 상당히 번성한 마을이 되었.

  아침 공기가 서늘한 공항을 벗어나 롯지에서 찌아(밀크티)를 마시며 몸을 녹였다. 정상이 눈으로 덮인 설산이 눈앞에 있지만 이곳은 춥지는 않다. 응달에 얼음이 언 곳도 있지만 꽃이 핀 곳도 있다. 그래도 낯선 곳은 춥게 느껴지기 마련인지라 따뜻한 찌아를 거푸 마시게 된다. 몸을 녹이면서 긴장을 애써 풀어보려고 하지만 히말라야는 너무 낯설다. 잠시 후 산행을 시작해야 하지만 옷을 어떻게 입어야 할지, 토시, 장갑 등 방한 장비는 어느 정도까지 써야 할지 감이 잡히질 않는다.


[루클라 공항 옆에 핀 꽃. 매마르고 추운 날씨인데도 꽃을 피웠다]



[보온병이 필수다. 따뜻한 물이나 찌아를 담아 둔다]


  몸을 녹이고 잠깐 밖에 나가봤다.

  옹기종기 모여서 불을 쬐고 있는 사람들(포터, 쿡들)의 수줍은 표정이 맨 먼저 반기는 풍경이다. 우리와 함께 할 셰르파, 포터, 쿡들이다. 자기들 집에서 각자 출발해서 우리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서 루클라에 도착해 우릴 기다리고 있었다. 삼삼오오 모여있는 모습이 왠지 쑥스러워 하는 시골 청년 모습이다. 마을의 집들은 깔끔한데 이 사람들은 공통적으로 행색이 집들과는 딴판이다. 머리는 대부분 감지 않았으며 얼굴도 까무잡잡하다. 햇볕에 타서 까무잡잡한 느낌보다는 자주 씻지 않아서 그런 것 같다. 이 사람들은 모두 친근한 모습의 몽골족이다. 카트만두의 아리안들과는 확연하게 다르다. 대부분 티벳에서 히말라야를 넘어온 사람들의 후손들임을 짐작할 수 있다.

  하늘 높이 펄럭이는 타루초와 함께 아담한 루클라 공항이 보이고 공항에 바로 붙어 있는 마을의 집들이 보인다. 좁은 땅에 제법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기 때문에 집들은 밀도가 높다. 대부분 단층 건물들이고 높아봐야 3층 안쪽인데 재료는 돌과 나무, 그리고 함석 등이다. 새로 지은 듯 깔끔하게 콘크리트로 지은 집도 가끔씩 눈에 띈다. 지진 피해를 입을 가능성이 커서 건물을 튼튼하게 지어야 할 것 같다. 콘크리트로 지은 3층 건물은 내진 설계가 되었는지 속을 들여다 볼 수는 없지만 좀 위태로워 보인다.



[루클라 전경]


  경사진 길로 야크와 좁끼오가 올라 온다. 원래 느린 것이 소 걸음이지만 언덕을 오르는 좁끼오와 야크의 동작이 매우 여유가 있어 보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우리 짐을 운반할 야크와 좁끼오였다. 주인은 40대 정도되는 여인인데 열여덟 먹은 그녀의 아들이 함께왔다. 학교에 다닐 나이지만 어머니를 따라 다니며 일을 배우고 있다. 이곳의 아이들은 대부분 그렇게 산다. 집이 키시부크(Kisibook)라는 곳으로 루클라와는 대략 20km 정도 떨어져 있다. 아무리 히말라야 사람이라도 얼추 하루를 걸어야 하는 길이다. 그런데 내가 이들을 본 시각은 아침 여덟시 경이었다. 내리막을 내려와서 좀 수월하게 왔다고 쳐도 오늘 새벽에 출발해서 오기는 어려웠을 것 같다. 밤새 왔을 것 같지는 않고 아마도 어제 와서 기다렸을 것이다.



[루클라 비행장 옆 언덕을 올라오는 야크와 좁끼오]


  커다른 합판을 지고 가는 사람이 눈길을 끈다. 위에서 내려다 보니 커다란 합판에 작은 몸이 완전히 가려서 마치 커다란 네모가 그냥 움직이는 것 같다. 합판이나 문짝을 지고 가는 사람은 이후로도 많이 볼 수 있었다. 참 특이한 풍경이다. 다른 교통 수단이 없으므로 천상 사람이 지고 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전통 가옥에서는 이런 합판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합판을 지고 가는 사람. 위에서 보면 합판이 저절로 움직이는 것 같다]


  루클라의 중심부는 대부분 롯지와 기념품 가게들이다. 이른 시각이어서 그런지 가게에 관광객이 거의 보이지 않는데 아마도 트래킹을 끝내고 내려온 사람들이 기념품을 찾을 것이다. 주인들도 트래커들의 경로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막 트래킹을 시작해서 올라가는 사람들에게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루클라 중심부. 롯지와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있다]



[커다란 바위에 '옴마니반메훔'을 새겨놓았다]



[연료로 가스를 많이 쓰는 모양이다. 아마도 비행기로 공수해왔을 것이다]



[가운데로 통과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초르텐. 안에는 양쪽으로 마니차가 설치되어 있다]



[짐을 지고 가다가 쉬고 있는 사람]


▶ 6천m는 되어야 이름을 얻는다


  루클라 공항에 내리자 마자 엄청난 높이의 산이 나를 압도한다. 머리에 겨우 눈을 얹고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 히말라야에서는 그다지 높은 산은 아닐 것 같다. 하지만 멀리 떨어진 (걸어서 이틀이나 걸리는) 그 산을 보기 위해서는 고개를 일부러 들어야 할 정도다. 

  내일쯤이면 시시해질 풍경인줄 뻔히 알면서도 험준한 설산을 카메라에 담는다. 루클라에서 앞쪽(서북쪽)으로 보이는 설산은 콩데리(Kongde Ri)라는 산으로 최고봉이 6110m 정도되는 산이다. 루클라에서는 이 산의 남쪽 부분이 보이는데 나중에 보니 남체바자르까지 이 산이 내내 우리를 따라 다녔다. 콩데리 줄기 너머로도 커다란 설산이 머리를 드러내고 있다. 이 산은 높이가 6470m 정도인데도 특별한 이름이 없다. 뒤쪽(동쪽)으로 보이는 설산도 이름이 없다. 뒷산은 높이가 약 5770m다. 동네 사람들이 부르는 이름은 혹시 있는지 모르지만 지도에는 이름이 나와있지 않다. 이곳에서 산 이름을 얻으려면 이처럼 보통 6천m는 넘어야 한다고 한다.


[루클라 공항에서 바라본 콩데리(오른쪽 설산)와 6470m나 되는 이름없는 산]


[루클라 주변 지형 *Google지도]


▶ 히말라야의 라마교 경관 : 룽다와 타루초


  가파른 뒷산 자락에는 사방으로 줄을 띄운 타루초(經文旗)가 펄럭인다. 룽다(風馬)와 타루초는 라마교의 상징이다. 불교는 인도에서 시작되어 퍼져나갔지만 그 일파인 라마교는 티벳에서 정립되어 다시 이곳으로 넘어왔다. 카트만두에서도 물론 볼 수 있었지만 이곳 쿰부히말에서는 타루초와 룽다가 특히 부각되어 보인다. 티벳 사람들이 이주한 곳에서는 모두 이러한 경관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즉, 쿰부 일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티벳에서 히말라야를 넘어온 사람들이다. 사람들과 함께 라마교도 전래되어 이 일대에서는 룽다와 타루초 뿐만이 아니라 마니차, 옴마니반메훔을 새긴 바위 등 라마교 경관을 아주 많이 볼 수 있다. 몇 걸음만 걸어도 또 다른 라마교 경관이 보일 지경이다. 왜 이렇게 종교 경관이 많은 것일까? 신앙심이 이토록 깊은 이유는 무엇일까? 첫날에는 그냥 '많구나' 정도의 느낌이었지만 히말라야에 머물면서 조금씩 느낌이 왔다. 그 느낌은 나중에 다시 쓰도록 하겠다.


[설산을 배경으로 타루초가 펄럭인다]



[인도 델리에 있는 티벳 난민 마을인 티벳콜로니. 어지럽게 펄럭이던 빛바랜 룽다와 타루초가 바랜 빛과는 반대로 기억에 선명하다. 티벳콜로니에서 봤던 타루초는 독립을 염원하는 '아픈 마음'으로 느껴졌는데 히말라야의 타루초는 느낌이 좀 다르다]


▶ 파바티와 타루초가 함께 있는 곳


  펄럭이는 타루초를 따라 무엇에 끌리기라도 하듯 계단을 올랐다. 가파른 계단 끝에 타루초의 꼭지점이 있고 그 곳에 어떤 구조물이 있었다. 멀리서 보기에 작은 사원이다. 약간 숨이 찰 만큼 높이의 계단을 올라가 보니 높직한 단 위에 神像이 모셔져 있다. 그런데 신상의 모습이 특이하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불상이 아니다. 온몸의 색깔은 진한 녹색인데다 가슴을 드러낸 여인의 모습이다. 타루초의 정점에 있는 신상이라면 당연히 불상이어야 하는 거 아닌가?

  이 모습은 힌두교의 여신 파바티, 즉 파괴의 신인 시바의 부인이다. 파바티와 라마교 간에는 어떤 상관 관계가 있겠지만 나는 아는 바가 없다. 어쨌든 히말라야 초입에서 만나는 파바티상은 상당히 이채롭다. 라마교와 힌두교가 결합되어 있는 경관으로 읽힌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라마교에서 가장 신성하게 여기는 산은 카일라시(Kailash, 6714m)산인데 이 산은 라마교의 성지이면서 시바의 옥좌라고 한다. 시바와 파바티가 1만년에 걸쳐 사랑을 나눈 곳이 바로 이 산에 있는 궁전이었고 그 이야기가 후에 카마수트라(Kamasutra, 愛經)가 되었다고 한다.

  그렇게 엮으면 이해가 될 수 있는 경관이 되나? 상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닌데 뭔가 시원하지는 않다. 인도 문화가 그렇다. 역사적 뿌리가 깊어서 수많은 신화와 역사가 복잡하게 얽혀있다. 재미는 있지만 파고들기는 엄두가 나질 않는다.

 

[라마교 경관인 타루초와 마니차, 그리고 힌두신 파바티가 함께 있다]


[파바티상 앞에서 내려다 본 루클라 공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