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차동고개~수리치골 성지

이야기 거리가 별로 없는 후반부: 수리치골성지~차동고개[Ⅲ]

Geotopia 2016. 3. 29. 21:59

▶ 산행일: 2016.3.26(토)

▶ 함께하신 분들: 월광

▶ 경로: 수리치골 성지(공주시 신풍면 봉갑리) - 십자가 봉우리 - 국사봉 - 사점미고개 - 서반봉 - 야광고개 - 천종산 - 점심(천종산 표지판이 서 있는 봉우리) - 성황당고개 - (장학산) - 차동고개 / 총 12.2km, 지도상 거리 11.24km

* 이 글은 빨간 글씨 구간입니다.




▶ 이야기 거리가 별로 없는 후반부


  성황당고개 이후로도 코스는 계속되지만 이상하게 에피소드가 없다. 눈에 띄는 경관이 없다고 할 수도 있지만 위치를 알려주는 표지판이 없는 것도 큰 원인인 것 같다. 성황당고개와 장학산 사이로 청양군과 예산군의 경계가 지난다. 금북을 기준으로 동쪽은 계속 공주시이다. 수리치골성지에서 성황당고개까지 세워져 있던 표지판들은 모두 청양군에서 세운 것이었다. 청양을 상징하는 고추(구기자 같기도 하고?) 모양의 표지판들이 성황당고개를 끝으로 끝이 난다. 그러니까 3개 시군 가운데 금북정맥에 관심을 갖고 있는 곳은 청양뿐인 셈이다.

  예산에 접어들자 마자 첫번째 만나는 산이 장학산이다. 장학산은 정맥 상에 있지는 않고 정맥에서 예산군 신양면 여래미리 쪽으로 들어가 있다. 분명 생각을 하면서 갔지만 장학산을 놓치고 말았다. 눈에 띄는 표지판이 없었으므로 우리 모두 별 생각없이 지나치고 만 것이다.


<생강나무가 꽃을 피웠다>


<지난번 폭설에 부러진 소나무. 간벌을 하지 않아 키만 컸기 때문에 쉽게 부러진다. 유구읍 노동리 가는골 마을이고 반대쪽은 예산군 신양면 여래미리이다. 장학산은 이 사진의 반대쪽 어디쯤에 있다>


<외눈박이 나무도깨비가 산행을 똑바로 하라고 지켜보고 있다>


<바닥에 떨어진 녀석을 많이 봤지만 이렇게 달려 있는 것은 많이 보지 못한 것 같다>


<얼핏 보기에 진달래 숲인줄 알았는데 아니다. 빽빽한 이 숲은 여름이면 통과가 불가능할 것 같다>


<인적이 드문 길이어서 새가 이렇게 낮게 집을 지었다>


<지금도 이러니 여름에는 커다란 환도가 없으면 가기 어렵겠다>


<잡목숲 능선에서 바라본 신양면 여래미리>


<봉우리 아래로 내려서면 또다시 잡목숲이다. 웨이포인트 8번과 7번 사이에는 잡목이 무성하다. 사람들 발길이 적어서 여름철에는 지나가는 것이 거의 불가능해 보인다. 자잘한 나무들을 헤치며 가다보니 진달래 꽃망울이 내 발길에 채여서 뚜둑 부러진다. 이제 막 붉은 빛을 띄기 시작한 꽃망울인데… 미안하다>


<그래도 봄은 온다. 올괴불나무꽃>


<간벌이 필요한 숲. 너무 빽빽하게 자라서 들어갈 수 조차 없다>


<산도깨비 2>


▶ 짝사랑도 아름답다: 벽소령 순정


  햇수로는 무려 3년 전이다. 2013년 10월 13일날 칠장사에서 우리가 금북을 시작한 것이. 만으로는 거의 2년 반이 되었다. 그날 칠장산에서 금북팀 하나를 만났었다. 우리가 약간 먼저 출발을 했는데 칠현산에서 우리를 추월해서 바람같이 달려가던 그 팀이 바로 벽소령산악회였다. 그날 물어본 바로는 배티고개까지 거의 24km 이상을 간다고 했었다. 얼추 우리의 두 배 속도로 가는데다 거의 매주 갔던 모양이다. 반면에 우린 원래 계획했던 한 달에 한 번도 제대로 못했다. 모두 30개월 동안 이런저런 이유로 15번 밖에 실행을 못했다. 오늘 15번 만(한 번은 코스를 점프해서 공덕고개까지 갔지만)에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가는 길에는 언제나 '벽소령산악회' 노란 리본이 붙어 있다.

  사실 정복하듯 바람처럼 달려가는 모습이나, 덕지덕지 붙여 놓은 리본 무더기에 하나를 보태는 것은 내 구미에는 맞지 않는다. 한 번은 그 리본 덕분에 길을 잃기도 했었다(전의면 비로봉 갈림길). 하지만 근부샘은 이 노란 리본을 만날 때 마다 마치 첫사랑을 만난 것처럼 그렇게 반가워 하실 수가 없다.


  "우리 부회장님의 벽소령 짝사랑을 그 사람들은 알까 몰라요?"

  "그러게, 상이라도 드려야 하는데^^"


  노란 리본을 보고 반가워 하실 때 마다 우리가 나누는 이야기이다. 분명히 기쁨과 슬픔이 함께 있지만 첫사랑의 기억은 아름답게 남는 법인 모양이다.


<우리와 같은 날 출발했던 벽소령팀은 이미 종주를 마쳤다>


<벌목을 하고 작은 나무를 새로 심었다>


<고니가 가고 있는 저 길은 금북 능선이 아니다. 이 돌무더기에서 왼쪽으로 가야만 한다. 하지만 알고 보니 임도로 금북과 연결이 되어 있다>


<돌무더기 아래로 이어지는 금북 능선>


<아래쪽에서 바라본 돌무더기 쪽>


<이렇게 맥없이 쓰러진 거목들을 자주 볼 수 있다. 몇 해 전 태풍 때문인가?>


<임도를 내느라 능선을 파서 암반이 드러나 있다. 암반의 틈 사이로 소나무 뿌리가 파고들어 생물적 풍화가 진행되고 있다. 땅을 파보지 않으면 소나무는 정상적인 흙 위에서 자라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임도 공사로 무너져 내린 경사면에 나무를 심었다. 근부샘께서 들려주셨던 '아들의 소원을 들어주기 위해 중국의 어떤 엄마가 사막에 나무를 심어서 숲을 만드는 기적을 이루었다'는 그 이야기가 생각난다>


<벌목 후에 남은 몇 그루의 소나무가 멋진 그림을 만들어준다>


▶ 공동의 목표는 조직을 건강하게 한다


  "정맥을 타니 양쪽을 다볼 수 있어서 좋아"


  우리는 똑같이 금북정맥을 타고 있지만 조금씩은 다른 의미를 부여하며 정맥을 타고 있다. 천규샘처럼 능선의 양쪽을 조망하는 것을 즐길 수도 있고, 나처럼 종주 과정에서 만나는 지리적 사물에 의미를 부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든 금북정맥 종주에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우리 모두의 공통점이다. 다양성을 통합할 수 있는 공동의 목표는 조직을 통합하고 건강하게 한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구성원 하나하나 다양한 특성을 가지고 있지만 광덕산과, 금북을 통해서 이질성을 잘 용해시키고 있는 것이다.

  학급을 운영하는 것은 어떨까? 학급은 진학, 취업 등이 목표인 조직이다. 하지만 이런 목표는 조직을 통합할 수 있는 공동의 목표라고 볼 수 없다. 외형은 '진학', '취업'이라는 같은 낱말을 쓰고 있지만 각자의 구체적 목표는 매우 이질적이다. 동질적인 외형 속에 다양한, 결코 통합될 수 없는 이질성을 포함하고 있는 것이다. 학급을 금북 종주팀처럼 운영할 수 있다면? 다양한 이질성들을 용해시킬 수 있는 공동의 목표를 제시할 수 있다면 구성원 모두가 행복할 수 있을 것이다. 모든 조직이 그렇다.


<멀리 32번국도가 보인다. 유구읍 녹천리의 녹천2교차로이다. 차동고개에서 옛길을 따라 내려가다가 32번국도에 올라서는 곳은 녹천1교차로로 여기보다 3백미터 정도 위쪽(사진의 왼쪽)에 있다>


<오토바이 바퀴자국. 예전에 이걸 따라 가다가 길을 잃었던 아픈 기억이 있는데 이 구간에서 다시 만났다>


<이런 대로(?)가 정맥 구간에 있다. 정확한 정맥은 이 길의 오른쪽이다>


<정맥에서 이 정도면 고속도로급이다>


<말벌집>


<이건 형성 원인을 고민할 필요가 없는 냉전의 유산, 방공호의 자취이다>


<능선을 따라 발달한 숲길>



<또 만나는 오토바이 바퀴 자국>


<성질 급한 진달래가 먼저 피었다>


<재미있는 난간 밧줄. 대개는 경사가 심한 곳에 잡고 올라 가는 용도로 만들어 놓는데 여기는 떨어지지 말라고 만들어 놨나??>


<주인을 잃은지 한참 된 무덤. '잡초'가 무성한 차원을 넘어 '잡목'이 무성하다>


▶ 드디어 차동고개가 보인다


  숲 사이로 멀리 차동고개가 내려다 보이는 마지막 봉우리에서 간식을 먹었다. 바리바리 싸 가지고 오신 것들이 많아서 먹을 것이 풍성하다. 이번엔 천규샘 사모님께서 준비해 주신 빵이다. 커피와 귤을 곁들여 떨이를 하고 마지막 내리막을 내려간다. 도로가 아직 멀리 있어서 숲 사이로 언뜻언뜻보이는데도 자동차가 달리는 소리는 굉장히 크게 들린다. 갑자기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저렇게 큰 소리를 내는데 우리가 차에 타고 있으면 이렇게 크게 들리지 않으니 방음이 잘 된다는 뜻인가? 의외로 멀리까지 가는 소리의 파장이 있다. 밴드의 북소리처럼. 아마도 자동차 바퀴가 내는 소리가 그렇지 않나 싶다. 그러니 길 옆에 사는 것은 참 힘든 일이다. 실제로 이사하기 전 쌍용동에 살 때는 한밤중을 제외하고는 항상 차소리가 들렸었다. 대로에 비해 통행이 적은 이면도로였는데도.


<차동고개는 중요한 '목'이다. 국도32번, 대전-당진고속도로, 국도32번 옛길이 지난다>


  한때는 교통의 요충이었던 차동고개의 휴게소는 이제 건물마저 철거를 한 폐허가 되었다. 해발 215m의 차동을 지나가다 보면 자연스럽게 휴게소에 들르게 되는 목이 좋은 자리였다. 하지만 터널이 뚫리면서 한 방에 폐허가 되어 버렸다. 교통로 때문에 만들어진 기능이므로 새로운 교통로가 생기면 기능을 잃어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국도(32번) 뿐만이 아니라 대전-당진 간 고속도로도 차동고개를 통과한다. 이곳은 예로부터 중요한 길목이었기 때문이다. 유구에서 아산 송악으로 넘어가는 길에 인터체인지가 있어서 나는 고속도로는 이보다 더 북쪽으로 지나가나보다 생각했었다. 지도로 확인해 보니 고속도로는 거의 직선으로 뻗어 있고 국도가 남쪽으로 구부러져 있는데 유구읍이 차동고개보다 훨씬 남쪽에 있기 때문이다. 지리를 공부했기 망정이지 그나마도 안 했다면 완전 길치가 될 뻔 했다.

  아무리 터널을 뚫어서 산을 넘는다고 해도 얕은 고개 아래를 뚫는 것이 유리하다. 고개가 얕다는 것은 고개의 양쪽을 파고 들어온 계곡도 깊다는 뜻이므로 아무데나 뚫는 것보다는 얕은 고개 아래를 뚫는 것이 백번 유리하다.


<냉전의 유산을 하나 더 찍어본다. 커다란 나무가 들어섰다>


<마침내 차동고개>


<도착 인증샷>


<GPS에 기록된 총 주행거리는 12.2km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