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차동고개~수리치골 성지

산딸기가 지천인 금북 능선: 수리치골성지~차동고개[Ⅱ]

Geotopia 2016. 3. 28. 23:10

▶ 산행일: 2016.3.26(토)

▶ 함께하신 분들: 월광

▶ 경로: 수리치골 성지(공주시 신풍면 봉갑리) - 십자가 봉우리 - 국사봉 - 사점미고개 - 서반봉 - 야광고개 - 천종산 - 점심(천종산 표지판이 서 있는 봉우리) - 성황당고개 - (장학산) - 차동고개 / 총 12.2km, 지도상 거리 11.24km

* 이 글은 빨간 글씨 구간입니다.




▶ 딱따구리 식탁: 사람의 탐욕을 일깨워 준다


  능선 한 가운데에 죽은 나무가 한 그루 서 있는데 마치 자귀나 도끼로 찍어낸 듯 나무 부스러기가 나무 주변에 흩어져 있다. 말할 것도 없이 딱따구리 작품이다. 아무리 죽은 나무라지만 나무는 나무다. 손톱으로 찔러보고 일부를 떼어보려 했지만 어림도 없다. 이렇게 단단한 나무를 딱따구리는 연장으로 찍어 내듯이 쪼아 놓았으니 녀석의 주둥이는 얼추 쇠와 다름없게 단단한 모양이다. 그러니까 여러 가지 먹이를 얻는 방법 중에 딱따구리가 구사하는 방법은 매우 독창적인 블루오션이다.


<딱따구리의 삶의 투쟁 현장>


  그런데 녀석이 나무를 쪼으면 몇 번 정도 쪼아야 먹이를 만날 수 있을까? 나무 속에 벌레가 들어있는지를 쪼지 않고 알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아무리 생각해 봐도 우연히 먹이가 나올 때까지 그저 쪼는 방법 밖에는 다른 방법이 없을 것 같다. 그러고 보면 무척 고단한 방법이다. 분야로 보면 특화된 블루오션이지만 실제로는 엄청나게 고단한 블러드오션과 다를 바 없다. 그러니 딱따구리는 살이 찔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겠다. 야생의 동식물은 사실 모두 비슷하다. 하루 종일 뛰어 다녀야 살찌는 것은 커녕 겨우 겨우 제 목숨을 부지하는 것이다.

  회장님께서 옛날 사냥을 했던 경험을 말씀하신다. 발달된 장비인 총을 가지고도 하루 종일 산들을 헤매고 다녀봤자 겨우 토끼 한 마리 잡기가 어렵단다. 그러니 맨몸으로 먹이를 구하는 동물은 어떻겠는가? 하루 종일 먹이를 찾아 산과 들을 헤매고 다니는 것이 이들의 운명이다. 혹시 운이 좋아서 먹이를 왕창 구했다 하더라도 이들은 먹을 만큼만 취할 뿐이다. 그리고 배가 부르면 배가 고플 때까지 잠을 자거나 그냥 논다. 환경의 일부로 환경과 공존하는 가장 좋은 방법이다.


<벌목지는 시야가 트여서 좋기는 하다>


▶ 누구의 짓일까? 


  벌목지대가 가끔 눈에 띈다. 금북 능선까지 나무를 몽땅 잘라 놓았는데 건물을 짓거나 길을 내기 위한 것은 아닌 것 같고 수종을 갱신하려고 하는 모양이다. 한 때 '경제수종'이 구호였던 적도 있었지만 이 일대에서는 무슨 나무를 심으려는 것일까? 공주나 천안 인근이면 밤나무나 호두나무라고 추측을 하겠는데 이 구간에서는 인공으로 조림한 숲을 아직 보질 못했다.

 

<족제비의 사냥터?>


  벌목지대를 지나다 보니 등산로 옆으로 어린애 머리통 하나 들락날락할 정도의 구멍을 종종 볼 수 있다. 어떤 짐승이 파 놓은 구멍인데 어떤 것은 등산 스틱 3/4은 족히 들어간다. 바닥이 반들반들하지 않고 그냥 흙을 파 놓은 상태인 것을 보면 집은 아니다. 아마도 쥐같은 사냥감들을 잡기 위해 땅을 판 것이 아닌가 싶다. 이 정도 크기에 육식 동물이라면 오소리나 너구리, 아니면 족제비 정도가 아닐까 싶다.

  인터넷을 뒤져보니 아무래도 족제비인 것 같다. 왜냐하면 족제비는 주로 쥐구멍을 파헤치고 들어가 쥐를 사냥하기 때문이다. 구멍의 크기도 너구리나 오소리가 드나들기에는 작아 보인다. 족제비는 생김새도 좀 얍삽하게 생겼는데 농촌에서는 악명이 높다. 옛날부터 닭장을 습격해서 여러 마리 닭을 죽여 놓는 녀석으로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대부분 동물들이 한끼 식사 거리만 사냥을 하는데 비해 족제비는 여러 마리를 죽여놓는 고얀 습성을 가지고 있다. 오리 농법으로 유명한 홍성의 홍동에서도 족제비가 큰 골치덩어리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한 번 침입을 하면 오리를 여러 마리 살생하기 때문이다.

  족제비의 입장에서는 기회가 될 때 사냥을 해서 먹고 남은 사냥감은 감춰두는 지혜를 발휘하는 것이다. 기회가 있으면 축적을 해놓는 것은 사람과 상당히 닮은 습성으로 앞에서 만난 딱따구리와는 완전히 반대가 되는 습성이다. 실제로 족제비는 남은 먹이를 감춰두고 상당히 정확히 찾아낸다고 한다. 이러한 전략은 특히 먹이가 부족하고, 또 잘 부패하지 않는 겨울철에 유효한 전략인데 그것이 항상 합리적이지는 않다는데 문제가 있다.

▶ 산딸기가 지천이다!


  서반봉 못 미쳐서 운곡면 추광리(양지말)와 신풍면 조평리 사이의 능선 주변은 엄청난 산딸기밭이다. 깊은 산중인데다 사람이 들어갈 수 없을 만큼 무성하고 무질서하게 자란 것으로 보아 일부러 키우는 것은 아닌 것이 분명하다.


<능선 아래에 펼쳐진 산딸기밭>


  "여름 산딸기 철에 차동고개에서 올라오면 되겠네"

  "예~, 안주 챙길 것 없이 술 병만 몇 개 들고 오면 되겠어요^^"


  말만 들어도 군침이 돈다. 산딸기 안주로 소주를 들이키면 몸에 들어가서 몽땅 복분자술이 되는 것이 아닌가? 가다 보니 이 일대는 산 아래까지 산딸기밭이 널리 퍼져있다. 산새들이 열매를 따 먹고 씨를 옮겼을 것이다. 산행이 아니고 산딸기 만을 목적으로 한다면 굳이 차동에서 올라오지 않아도 추광리나 조평리에서 들어와도 될 만큼 산 아래까지 산딸기가 지천이다.


<편마암 암괴를 종종 볼 수 있다>


▶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이 있다



  서반봉에 올라서서 건너편 봉우리를 바라보던 고니가 양쪽 봉우리에 줄을 매고 건너갔으면 좋겠단다. 이제 조금씩 어젯밤의 알콜이 빠져나가고 있겠지만 그래도 몸이 무거우니 내려가는 길도 반갑지 않은 것이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도 있다'는 속담이 있지만 산행에서는 '내리막이 있으면 오르막도 있다'로 바꿔야 한다. 목적지는 아직 멀었다는 것이 분명한데 자꾸 내려가기만 하면 다시 올라갈 일이 걱정이 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이건 근부샘의 전매특허다. 내리막에서,


  "아이고~, 왜 자꾸 내려가는 것이여~" 하시는 말씀을 들어야 산행하는 맛이 난다.

  "금북 베테랑이 왜 그러셔유, 아마추어 같이^^" 농담인줄 알면서도 항상 내가 던지는 멋없는 '공자님 말씀'이다.


<서반봉>


<서반봉 북쪽 내리막에서 바라본 조평리>


  동쪽으로 아스라이 신풍면 조평리 긴 협곡이 보인다. 건너편에 묵직하게 보이는 덩치가 큰 산은 무성산(613.8m)인 것 같다. 조평리 역시 은거, 정착에 유리한 좁고 긴 협곡에 발달한 마을인데 김해김씨(양지뜸), 만경노씨, 전주이씨(신촌) 등이 17세기 이후 입향하여 세거했다고 한다.

  서반봉과 천종산 사이에는 야광고개가 있다. 아까 만났던 금북꾼들이 이 고개에서 올라왔다고 했었다. 이 고개도 역시 운곡면 추광리에서 신풍면 조평리로 넘어가는 고개인데 추광리에 야광이라는 마을이 있어서 이런 이름이 붙었다. 커다란 나무 하나가 넘어져서 그 고개를 가로질러 누워있다. 지금은 사람의 통행이 거의 없기 때문에 치워지지도 않고 마치 다리처럼 걸려있다.


<야광고개에 가로 놓인 나무>


  "다리 아픈데 여기라도 건너가라~"


  농담인지, 아닌지 구별이 안 되는 임팩트가 없는 말인줄 알면서도 아까 앞 봉우리를 바라보며 고니가 독백을 했던 말에 대한 대답이다.


▶ 독특한 모양의 블록스트림


  천종산을 향해 경사면을 오르다 보니 산 아래로 독특한 모양의 블록스트림이 발달한다. 보통은 계곡을 따라 발달하는데 여기는 계곡이 아닌 보통 경사면에 발달한다. 경사도는 상당히 높아서 동파로 떨어져 나온 바위 부스러기가 충분히 아래쪽으로 이동할 만한 조건은 되는데 문제는 계곡이 아니라서 돌들이 좌우로 흩어질 수 있는 조건이라는 점이다. (☞암괴류 http://blog.daum.net/lovegeo/6779843) 그럼에도 불구하고 돌 부스러기가 일렬로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아마도 주변의 암석과는 풍화속성이 다른 암석이 직선상으로 관입한 다음 노출되면서 풍화된 것이 아닌가 싶다. 가보고 싶은데 어렵겠다. 시간도 그렇고 경사도도 그렇고…


<천종산 아래쪽에 바위 부스러기가 일렬로 쌓여 있다>


▶ 헷갈리는 천종산


  야광고개에서 언덕길을 다시 오르면 천종산에 도달한다. 그런데 천종산은 좀 맥이 빠진다. 표지판이 서있는 자리가 높지 않기 때문이다. 남쪽으로 약간 높아 보이는 봉우리가 있어서 잠깐 올라가 봤더니 표지판도 없고 막상 와서 보니 그다지 높아 보이지 않는다. 능선의 한 도막이 몽땅 천종산인가? 지도에는 표지판이 서있는 곳보다 약간(100m 정도) 북쪽에 천종산이 표시되어 있고 표지판 위치보다 약 10m 정도 해발고도가 더 높다.


<야광고개에서 천종산을 향하여 올라가는 길>


<천종산 표지판>


<표지판 남쪽이 약간 높다>


<산악오토바이가 파 놓은 바퀴자국과 부품 파편>


<이 고사리는 뭘까? 새싹도 아니고 벌써 이만큼 자랐다는 것은 겨울에도 살아있었다는 뜻인가?>


<멧돼지 똥>


  천종산을 지나 작은 고개 하나를 넘으니 봉우리 하나가 나온다. 주변에 산이 없는 톡 튀어나온 독립된 봉우리인데다 동쪽은 모두 벌목을 해서(산불도 났다) 시야가 좋다.


<가짜 천종산 남쪽에서 바라본 유구읍 노동리. 산불에 탄 나무 사이로 보인다>


<산허리를 자른 독특한 길이 보인다. 노동리 가루골에서 머리골로 넘어가는 길인데 계속 나가면 녹천리를 지나 차동고개 아래에서 32번 국도와 만난다>



<밑에서 바라본 가짜 천종산>


<가짜 천종산 위에 버려진 나무>


  그런데, 이 봉우리에 천종산 표지판이 또 서있는 것이 아닌가! 아까 지나온 표지판보다 훨씬 크고 화려하다. 아까는 길안내 표지와 함께 붙어있는 것이었는데 여기는 크기도 훨씬 크지만 길안내 표시와 겸용이 아닌 독립 안내판이다. 이건 분명히 문제가 있다. 두 개가 있으니 하나는 분명히 잘못된 것인데 어느 것이 과연 맞을까? 지도상에서 보면 점심 먹은 봉우리는 높이가 375m 정도이다. 천종산의 공식 높이는 409m이므로 이곳이 틀렸을 가능성이 99%이다.

  GPS상의 위치로 봐도 옳지 않다. 이 산은 내 GPS에 입력을 하지 않았는데 이유는 대략 이곳을 지나는 능선의 높이가 360m는 넘고 380m는 안 되기 때문에 1:5만지형도(내 GPS 기본도의 축척이다)에서는 굴곡차가 표시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어쨌든 1:2만5천 지형도로 비교해 보면 이 산은 웨이포인트 14번과 13번 사이(13번과 거의 일치)에 있는데 이 위치는 지도상에 표시되어 있는 천종산의 위치와는 분명히 다른 위치다.


<375m에 세워진 409m 천종산 표지판>


▶ 점심은 즐거워


  천종산 부근에서 시간이 오후로 접어들어 한 시를 넘었다. 아까 간식을 든든하게 해서 배가 고프지는 않지만 맛난 저녁을 위해서는 이때쯤 점심을 먹어줘야 한다.


  "따뜻한 곳 잡아서 점심 먹고 가요~"

  "벌써? 아직 배가 안 고픈데!"

  "이따 저녁 맛있게 먹으려면 얼른 먹어야 해요~~"


  이게 말이 되는 것인가? 딱따구리처럼 살려면 배가 고프기 전까지는 먹지 말아야 옳다. 하지만 점심도, 저녁도 모두 포기할 수 없는 나는 점심과 저녁 사이에 적당한 인터벌을 확보하여 맛난 저녁을 먹고 싶은 것이다. 점심을 건너 뛰거나, 저녁을 가볍게 먹을 수도 있지만 내 배는 생물학적 필요로 작동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을 보고 작동하는 묘한 시스템이다.


  "밥 먹자"

  "배 안 고픈데?"

  "그래도 때가 됐으니 먹어야지"


  아내와 휴일날 가끔 나누는 대화다. 아내는 그 때마다 이해가 안 된단다. 어떻게 시계를 보고 밥을 먹자고 하느냐는 거다. 그게 왜 이상한가? 나는 12시 넘은 것을 확인하는 순간 자연스럽게 아밀라아제가 분비된다.


<천종산의 점심>


<회장님 내외분 초상권 침해>


  메뉴라고 해봐야 산행때마다 먹는 김밥이 전부지만 식사 시간을 즐겁다. 그래도 3월말이 되니 날씨가 풀려서 언 김밥을 먹지 않아서 좋다. 겨우내 차갑게 언 김밥을 먹느라 고생이 많았었다. 차가운 물에 차가운 김밥을 먹노라면 갑자기 감기가 올 것 같은 걱정이 밀려 왔었다. 걸음을 멈추면서 체온도 떨어지기 때문에 더욱 그랬었다.

  고니가 챙겨오는 봉삼주는 이제 당연히 나와야만 하는 것이 되었다. 이제 안 가져오면 야단 맞게 생겼다. 거푸 세 잔을 들이켰더니 기분이 삼삼하다. 새벽까지 마시고, 겨우 아침에 일어났다가 다시 깜박 잠이 들었고, 그 찰나에 인도로 떠나보낸 딸래미 꿈을 꾸다가 늦잠을 자고 말았지만 그 와중에도 챙길 것은 다 챙겨왔다. 해장용 아로니아 쥬스, 산행의 활력소 봉삼주, 그리고 안주로 오렌지까지. 천하장사다!



<근부샘께서 밤새 다려오신 벌나무차>


  근부샘은 정말 부지런하시다. 벌나무차를 끓여오셨다. 진한 갈색의 차가 담겨있는 물통을 꺼내시면서, '그 벌나무차여~' 하시는데 '엥? 그 벌나무차? 낯 익은 이름이긴 한데 그게 뭐였더라? 어디서 마셔봤더라…' 한참 생각을 했다. 아하! 지난번 숯가마에서 매끼니 마다 소주를 두 병씩 마신다는 주인이 이 차로 버틴다고 했었다. 헛개나무의 '천 배(과장이겠지만)'나 효과가 좋다고 했었다. 나는 원래 그런 얘기를 들어도 일단 반신반의 하는데다 구미가 당겨도 동작이 느리고 귀찮아서 대개 그냥 잊어 버리고 만다. 하지만 근부샘은 그걸 새겨 들으셨다가 인터넷에서 찾아내어 사다가(그것도 경매로 사셨단다)밤새 고아서 차를 끓여 오신 것이다. 마셔보니 맛이 담백해서 질리지 않고 먹을 수 있겠다. 오늘은 술을 아무리 먹어도 괜찮은건가?


<고니의 써비스: 길을 막고 있는 휘어진 나무를 들고 있다>


<이것이 자꾸 눈에 띈다. 성황당고개로 내려가는 길을 파 놓은 오토바이 바퀴자국>


<주변의 나무를 잘라내서 성황당고개의 성황나무가 눈에 띈다>


▶ 성황당고개


  성황당고개에는 참나무 두 그루가 서 있다. 각흘고개에서 봉수산 올라가는 길에 있는 그 신령스런 참나무에 비하면 아직 크기가 훨씬 작지만 모양은 범상치 않다. 특이한 점은 두 그루라는 점이다. 고개 주변은 모두 벌목을 해서 성황나무가 눈에 확 띈다. 지금은 양쪽 마을에서 고개를 넘나드는 사람보다는 아마도 금북을 종주하느라 고개를 통과하는 사람이 훨씬 많을 것 같다.


<성황당고개에 쌓인 돌무더기와 한 쌍의 성황수>




<성황당고개에 있는 신령스런 성황나무>


[Ⅲ]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