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차동고개~수리치골 성지

길이 아니면 만들어 가라: 수리치골성지~차동고개[Ⅰ]

Geotopia 2016. 3. 27. 23:21

▶ 산행일: 2016.3.26(토)

▶ 함께하신 분들: 월광

▶ 경로: 수리치골 성지(공주시 신풍면 봉갑리) - 십자가 봉우리 - 국사봉 - 사점미고개 - 서반봉 - 야광고개 - 천종산 - 점심(천종산 표지판이 서 있는 봉우리) - 성황당고개 - (장학산) - 차동고개 / 총 12.2km, 지도상 거리 11.24km

*이 글의 내용은 빨간 글씨 구간입니다.


<경로 *원도: Google earth>


<산행전에 편집한 GPS 입력 지도. 우리는 '정맥결합지점'이 아닌 25번으로 정맥에 접근했다>


▶ 미워할 수 없는 막내, 고니


  24km 짜리 장거리 코스를 반으로 자른 다음, '별로 힘들지 않다'고 언급한 것이 실수였다. 약속 시간 8:30이 한참 지나서도 고니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어제 4시에 오늘 일정 잘 알았다는 카톡 회신이 왔었지만 그 뒤로 무슨 사달이 난 것이다. '불금'이었으니 안 봐도 비디오다. 전화를 걸어서 확인을 하고 결국 집 앞으로 데리러 갔다. 새벽 네 시까지 마셔댔으니 이 시간에라도 일어난 것이 용하다. 아버님께서 시시때때로 보내주시는 철원 금학산 봉삼 덕이 분명하다.

  '향긋한' 술 냄새와 함께 고니가 차에 오르자,


  "야~ 냄새만 맡아도 취하겠다!"


  근부샘이 한 마디 날리신다. 술을 못하시니 충분히 그럴 것 같다. 하지만 눈 하나 꿈쩍할 고니가 아니다. 그 와중에도 아로니아 주스를 만들어와서 한 잔씩 안긴다.


  "야! 안 먹어!"


  저항을 해보지만 고니가 건네는 아로니아 쥬스로 이미 손을 뻗고 있다. 수확해서 얼려 놓았던 아로니아를 갈아넣고 요구르트에 꿀을 가미해 만들었다는 아로니아 쥬스는 달달한 맛이 일품이다. 술이 확 깰 것 같은데 이럴줄 알았으면 나도 어제 한 잔 마셔둘걸 그랬다.


<출발은 언제나 기대감과 긴장으로 짜릿하다>


<차동고개를 들러서 수리치골로 간다>


▶ 역주행: 수리치골 성지에서 차동고개로


  중간에 자르기가 상당히 어려운 코스라서 고민이 많았다. 차동에서 학당고개까지 한 번에 가려고 지난 번에 이 구간을 빼놓고 점프를 했었다. 날이 좀 길어지기를 기다렸다가 한 방에 가려고 나름 '원대한' 계획을 세웠었지만 우리 대원들은 아직 15km 이상을 주파한 경험이 없다. 회장님이야 한 걸음에 가시겠지만 24km는 충분히 부담스러운 거리다. 그 나마 내가 조금 더 가본 경험이 있지만 시원찮은 무릎 때문에 사실 항상 겁이 난다.

  시간 날 때마다 지도를 뜯어본 결과 수리치골 성지라는 곳을 찾을 수 있었다. 공주시 신풍면 봉갑리에 있는데 이곳에서 금북정맥 능선까지 거리가 넉넉잡아 500m 정도이다. 위성영상으로 확인해 보니 자동차를 주차할 공간도 넉넉하다. 어떻게 해도 똑같은 시간이 필요하지만 산행 시작 시간을 앞당기기 위해 차동에 먼저 들러 차 한 대를 놓고 수리치골 성지로 가서 거꾸로 차동으로 가는 코스를 잡았다.


<수리치골 성지 출발 전 인증샷>


▶ 시작부터 엄청난 고바위길


  10:10, 수리치골 성지를 출발했다. 성지를 중심으로 주변에 순례길이 꾸며져 있다. 천주교 성지들이 최근에 많이 '개발'이 되고 있는 것 같다. 그리고 비슷한 모양으로 치장이 되는 것 같은데 내 느낌은 별로다. 적절한 표현인지는 모르겠지만 모두 낯설다고 할까? 개신교와는 달리 천주교는 본래 종교의 모습을 좀 더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내 선입견 탓일 것이다.


<예수의 고난을 그린 부조가 길을 따라 연달아 세워져 있다>


<산책로 옆의 편마암 암괴>


<이건 무슨 컨셉일까? 편안해 보이기도 하고 코믹스럽기도 하고…>


<십자가 앞에 기도하는 예수상 너머로 금북 능선이 보인다. 우린 십자가 뒷쪽으로 올라갔다>


  어쨌든 아무 생각없이 순례길을 따라가다 보니 원래 계획했던 안부(鞍部)가 아닌 능선을 타고 올라가는 길을 타게 되었다. 순례길의 맨 꼭대기 기도를 올리는 곳 뒤쪽으로 길도 없는 루트를 오르기 시작하였다. 엄청난 고바위 길인데 잘못 들은 줄은 알겠지만 되돌아 가기에는 너무 멀리 올랐다. GPS로 확인해 보니 능선까지의 거리가 200m가 조금 넘는데 조금 힘들어도 그냥 올라갈 만 하지 않을까 싶기도 했다. 참나무잎이 잔뜩 쌓여 미끄럽기까지 해서 상당히 힘이 든다. 혹시 미끄러지기라도 하면 위험한 상황이 생길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은근히 걱정이 된다.


<올려다 보면 엄청난데 사진으로는 잘 표현되지 않는다>


<위에서 내려다 보고 찍으면 좀 실감이 난다>


  아니나 다를까?

  고바위를 오르다가 근부샘이 허리를 삐끗하셨다. 등산로가 없는데다 참나무 잎 때문에 미끄러운 고바위길은 실족의 위험만 있는 것이 아니다. 나무를 잡거나 스틱에 힘을 써야 하기 때문에 여러가지 위험 요소가 도사리고 있다. 불행중 다행인 것은 회장님 사모님께서 바리바리 비상약을 싸가지고 오셔서 진통제, 파스로 응급처치를 할 수 있었다. 초장부터 매우 어려운 난코스였지만 '有事히' 돌파하였다.


<고바위길 정상에 도달한 고니>


  순례길의 맨 꼭대기 기도를 올리는 곳 뒤쪽으로 오르는 불경을 저지른 탓이라고 농담들을 하신다. 들으면서 드는 생각이 역시 '한국적'이다. 우리나라의 많은 천주교 성지에는 우리나라식 무덤이 조성되어 있다. 대부분 봉분과 비석이 세워져 있는데 어떻게든 무덤자리라도 만들어줘야 고인에게 도리라고 생각하는 전통적 사고가 배경에 깔려있다. 이곳은 무덤자리도 아니고 기도처인데도 그 뒤를 오르는 것은 우리식으로는 불경이긴 한 셈이다.

  어쨌든 다음번에는 이 길을 타면 절대로 안 되겠다. 안부에서 성지쪽으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봐야 할 것 같다. 그런데 그렇게 되면 금북의 일부를 빼먹는 셈이 된다. GPS에 입력해둔 루트로는 '웨이포인트 26번(십자가봉 남쪽 안부)'으로 금북에 올라야 하는데 길을 잘못들어 '25번 십자가가 있는 봉우리'에 올랐으니 십자가봉과 그 앞의 안부 사이 구간이 빠지게 되는 것이다. 어쩌나… 사전적 의미의 '완주'에 의미를 둔다면 다음번에는 십자가까지 왔다가 되돌아 가야 한다. 혼자 고민하고 있었는데 회장님께서는 벌써 앞날을 예측하고 결론을 내리신다.


  "다음 번에 여기까지 왔다가 되돌아 가야지?"

  "네~ 그럼요^^"


▶ 십자가봉 


  거대한 십자가는 철골로 만들고 겉을 함석으로 붙여서 햇빛에 반짝이도록 만들었다. 칠레 산티아고에서 봤던 산꼭대기 십자가가 떠오른다. 하지만 산티아고는 지중해성 기후여서 산에 나무가 무성하게 자랄 수가 없다. 그래서 거대한 십자가가 산 아래에서 보면 눈에 확 들어온다( 라틴아메리카의 가톨릭 http://blog.daum.net/lovegeo/6780445). 하지만 산에 나무가 무성하게 자라는데다 겹겹이 산이 많은 우리나라는 산꼭대기의 구조물이 멀리서 눈에 띄기가 어렵다. 이 십자가도 바로 앞에까지 오기 전에는 눈에 잘 띄지 않는다. 아마도 그래서 햇빛에 반짝이도록 고안을 한 것 같다.

  탑 아래에 공사하고 남은 함석판이 버려져 있다. 공사를 위해 들고 올라오기가 무척 힘들었을텐데 쓸모도 없는 남은 것을 다시 가지고 내려가려고 하니 얼마나 까마득했을까? 심정은 이해가 가지만 보기 좋지는 않다. 돈이 되는 것과 무관하게 맡은 것에 책임을 지는 사회가 되어야 진정한 선진국이 될 수 있다. 국민소득이 3만 달러 앞에서 무릎을 꿇고 2015년에는 오히려 줄어들었다는 슬픈 뉴스가 지난 주에 있었다. 그 벽을 넘어가는 것은 효율성이 아니라 원칙이라는 것을 모든 선진국이 보여주고 있는데도 이땅은 자꾸 효율성만을 외친다. 이대로 가다가는 선진국의 문턱에서 무릎을 꿇을 것만 같은 안타까운 생각이 자꾸 든다. Quo Vadis Domine!


<십자가>


<십자가봉 뒷쪽으로 길이 잘 닦여있다. 정맥길은 절대 이럴 수가 없으니 이건 성지 순례길이다>


<국사봉으로 가는 길은 곧고 좁은 능선이다>


▶ 국사봉: 구간 최고봉에서 간식을 먹다


  회장님 사모님은 역시 손이 크시다. 지난 번에는 곶감을 우리가 몇 번씩 집어 먹어도 표도 안 날 만큼 큰 봉지에 담아 메고 오셨더니 이번엔 샌드위치를 세 통이나 만들어 오셨다. 아침부터 정성을 담는 것도 어려운 일이지만 산에서 그걸 지고 다니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다. 온갖 상비약도 한 보따리 메고 오셨으니, 왕진가방에 뷔폐까지 메고 온 셈이다.


<국사봉의 간식. 사모님은 왕진 가방에 뷔폐까지 메고 오셨다>


<국사봉의 간식. 첫 출발이 워낙 쎄서 휴식을 일찍 가졌다>


  국사봉은 489m이다. 1:25,000 지형도의 등고선으로 보면 480m 등고선과 490m 등고선 사이에 있는데 그 중에서 최고치인 셈이다. 나는 이런 경우에 대략 중간치인 485m로 계산을 하는데 지방자치단체에서 세운 표지판들은 거의 대부분 최고치를 써 놓는 경향이 있다. 물론 맞을 수도 있지만…

  어쨌든 국사봉은 오늘 산행 구간에서 가장 높은 봉우리이다. 시작부터 쎈 고바위를 올랐고 바로 최고봉을 올랐으므로 오늘 치러야 할 큰 일은 초장에 일찌감치 해결한 셈이다. 지난번 학당고개에서 공덕고개 구간에서는 중간인 여주재까지는 널럴하다가 여주재 이후부터 높은 산이 나와서 힘이 들었었다. 그 때도 역주행을 했더라면 훨씬 수월할 뻔했나?


<표지판에, 리본에, 어지럽다…>


▶ 국사봉을 만든 석영 덩어리


<국사봉 주변 지질구조 *원도: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이 일대의 지질구조는 대부분 선캄브리아기에 만들어진 화강편마암, 주입편마암, 안구상편마암 등이 주를 이룬다. 겉 모양이 얼핏 화강암과 비슷하게 생겼는데 변성작용 이전의 암석이 대부분 화성암 계열이었다는 뜻이다.  국사봉을 올라가다가 머리통 만한 석영 덩어리가 있어 사진을 한 장 찍었는데 찍고 나서 보니 봉우리 주변에 여기저기 크고 작은 석영 덩어리들이 널려있다. 오랜 세월 풍화가 진행된 상태에서 풍화가 잘 되지 않는 석영 계열의 암석이 풍화에 견디고 남아 떨어져 나온 것이다. 그러니까 구간 최고봉인 국사봉은 오랜 세월 풍화에 견디고 남은 암석층을 기반으로 만들어진 것이라고 볼 수 있다.

  실제로 국사봉에서 북북서쪽으로 80m 정도 진행하면 헬기장이 나오는데 그 가장자리에서 거대한 석영 덩어리를 볼 수 있다. 자잘한 석영 부스러기들은 심심찮게 볼 수 있지만 이런 거대한 석영 암괴는 만나기 어렵다.


<국사봉 북쪽에 있는 헬기장>


<헬기장 가장 자리에 드러나 있는 석영 암괴>


▶ 사점미고개를 향하여 


<헬기장을 지나 내려가는 길. 멀리 여러 겹의 산들이 만들어낸 실루엣이 멋지다>


<운곡면 신대리 가장 안쪽 산기슭까지 시멘트 포장이 되어 있다>


<이 깊은 산중에 이런 와지는 냉전의 유물일까?>


<곳곳에서 노출된 편마암 암괴를 볼 수 있다>


<사점미고개로 내려가는 길은 살짝 구부려 놓아서 매우 운치가 있다>

 

<청양군 운곡면 신대리와 공주시 신풍면 조평리를 잇는 사점미고개. 포장은 안 되어 있지만 차가 올라올 수 있겠다>


<사점미고개를 지나 계단이 있는 오르막에 제비꽃이 피었다>


<편리구조가 뚜렷한 편마암 암괴>


▶ 청양군 운곡면 신대리: 편마암 협곡에 발달한 마을


  사점미고개를 지나 작은 봉우리 하나를 넘으면 서쪽으로 청양군 운곡면 신대리가 아스라이 보인다. 신대리는 편마암 산지 특유의 좁은 협곡을 따라 길게 발달한 마을이다. 맨 안쪽에 있는 집은 계곡 입구(운곡면 소재지)에서 4km나 떨어져 있다. 협곡은 하천 주변에 넓지 않은 경지를 끼고 있어서 오늘날의 기준으로 보면 그다지 생산성이 높은 위치가 아니다. 하지만 인력으로 농사를 지었던 조선시대에는 좋은 위치였다. 수해에 안전하면서 은거에 유리한 위치였기 때문이다.

  이런 마을들이 내포, 특히 금북정맥의 이 구간(예산-청양)에 많이 있는데 대부분 전란이나 당쟁을 피해 들어온 사람들이 여러 대에 걸쳐 세거를 하면서 마을이 만들어졌다. 신대리에도 파평윤씨가 세거를 해왔다고 한다.


<협곡을 이루고 있는 신대리>


<안부와 봉우리가 연속된다>


<편마암 암괴에 자라는 나무들>


<능선에서 바라본 국사봉(왼쪽)과 십자가봉>


▶ 역주행을 하면 금북꾼을 만날 수 있다


  금북을 타다 보면 사람을 만나기가 참 어렵다. 천안 태조산처럼 사람이 많이 찾는 구간도 중간에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은 사람들이 잘 찾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가 3년 전 처음 출발하던 날 만났던 '벽소령산악회'처럼 주력이 좋아 하루 이십몇킬로씩 가는 고수들을 만나서 추월을 당하지 않는 한 대부분 진행 속도가 비슷하기 때문에 서로 만나기가 어려운 것이다. 오늘은 역주행을 하다보니 '금북꾼'을 두 팀이나 만났다. 팀이라야 첫 팀은 두 명, 두번째 팀은 단독팀이었지만 어쨌든 같은 길을 가는 사람을 만나니 반갑다. 사점미고개 쯤이었나? 야광고개에서 올라온다는 두 명의 금북꾼을 만났고 서반봉 못 미쳐서 차동에서 오고 있는 한 사람을 더 만날 수 있었다.


<복수초가 피었다>


<복수초>


<빙하기의 유산인 블록필드>


▶ 신성한 바위


  비범한 모양이나 크기의 자연물은 경외감을 불러 일으킨다. 어떤 산이든 커다란 바위는 도사들이나 무속인들이 기도를 올리는 곳이 되는 경우가 많다. 대개 거대한 바위 덩어리가 노출되어 있는 곳은 계룡산 같은 화강암지역인데 실제로 계룡산은 예로부터 도닦는 사람들이 많기로 유명한 곳이다. 사람들 말로는 기가 세다고 한다. 근처에서 기가 센 곳으로 유명한 곳으로는 흑성산이 있다. 흑성산은 편마암 산지라서 암괴가 드물지만 서쪽에서 올라가는 능선 주변의 큰 바위는 유명한 기도처이다.

  대부분 편마암 산지로 이어져 있는 금북 구간에서는 노출된 암괴를 만나기가 어렵다. 하지만 사점미고개 북쪽 300m~400m 지점에는 거대한 편마암 암괴가 드러나 있는 암봉이 있다. 이곳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이 바로 기도하는 곳이다. 마치 선돌처럼 뾰족하게 솟은 바위 앞에는 주변의 잔돌들을 모아 만든 제단이 꾸며져 있고 치성을 올릴 때 썼던 것으로 보이는 술병이 남아 있다. 아주 최근에 가져다 놓은 것은 아닌 듯 하지만 지금도 기도처로 애용이 되고 있다는 뜻이다.


<단을 꾸미고 치성을 드리는 바위>


<암봉 아래에 와지가 형성되어 있다>


<치성을 드리는 바위 인근의 암봉>


  암봉 앞에 있는 해주오씨 묘는 합장이 아닌 여인 단독 묘인데 상당히 크고 석물 치장이 많다. 내 경험으로는 여인의 묘가 이렇게 큰 경우는 드문 것 같다. 근데 산짐승이 무덤을 팠다. 사자상 석물까지 갖췄는데 겨울을 지나면서 봉분을 둘러싼 돌판이 떨어진 모양이다. 얼었다 녹으면서 떨어진 것 같다. 구조적으로 돌판의 안쪽에서 쇠로 만든 볼트와 너트로 조이도록 되어 있어서 시간이 지나면 녹이 슬 수 밖에 없도록 되어있는 문제점도 있다. 돌판이 떨어져 나온 곳에 어떤 녀석이 집을 지었는지 잔뜩 파헤쳐 놓았다. 깊은 산중이라 후손이 자주 올 수도 없을 텐데 알려줄 방도도 없고… 혹시라도 이글을 읽고 알았으면 좋겠다.


<둘레석이 떨어진 묘>


[Ⅱ편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