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때마다 어떤 느낌이 있기는 하지만 막상 사진을 찍어보면 그저그런 장면이 있다. 도로 포장 등 인공적 장벽을 뚫고 머리를 내밀어 끝내 꽃까지 피운 그런 꽃들을 보면 그렇다. 볼 때마다 찍었던 사진이 여러 장인 것 같은데 어디에 들어있는지 기억이 나는 것이 별로 없다.
추석을 맞아 외가에 갔다가 마당에서 또 그런 장면을 만났다. 외가는 마당을 몽땅 시멘트 콘크리트로 덮었다. 자동차가 수시로 드나들어야 하는 양계장이었기 때문에 오래전부터 맨땅이 드러나 있지 않은 포장상태였다. 콘크리트 틈으로 사루비아를 비롯한 작은 꽃들이 고개를 내밀었다. 외삼촌 내외분이 굳이 뽑지 않고 내버려둬서 어엿하게 꽃까지 피웠다. 장하다.
<2015.9.27>
'잡초'란 무엇일까? '사람이 먹지 않는 雜多한 풀(草)'을 뜻한다. 사람을 기준으로 '잡'이니 '純'이니를 구별한 것이니 풀의 입장에서는 매우 화가 나는 일일 것이다. 사람이 먹거나 관상용으로 기르는 것을 제외하고는 몽땅 '잡초'의 범주에 넣어버렸으니 말이다. 그래서 지구상의 대부분의 풀들은 당당하게 생태계의 일원임에도 불구하고 억울하게도 '잡초'가 되고 말았다.
그 잡초 중에도 급이 있다. 그중 상급은 사람이 먹는 주요 작물들과 경쟁하는 풀들이다. 그 대표쯤 될만한 것이 피가 아닐까 싶다. '피농', '피죽도 못 먹었다' 등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피는 우리나라의 생활 가까운 곳에서 사람의 욕을 먹는 대표 잡초로 부족함이 없다. 이런 대표 잡초일수록 생명력이 강하다. 땅 주인의 일방적인 편역을 견디고 '순초'와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비책이 필요하다. 재빠르게 뿌리 내리기, 생육기간을 줄여서 순초보다 먼저 꽃을 피우고 열매 만들기, 재빠르게 씨 떨어뜨리기 등등.
<피는 이렇게 벼보다 키가 크고 열매를 빨리 만드는 방법으로 종족을 유지한다. 사람이 피를 먹었더라면 좋았을 것을…>
봉강천 산책로를 걷다가 다리의 배수 홈통에 뿌리를 내린 피를 만났다. 뿌리를 내린 정도가 아니라 사방으로 번성하였고, 끝내 열매까지 근사하게 만든 대단한 녀석이다. 비가 내릴 때만 다리 위에서 물이 홈통으로 흘러 들어올 텐데 그걸 이용해서 열매까지 만들다니 놀라울 뿐이다. 물 뿐만이 아니라 흙도 있어야 할테니 홈통 꺾어지는 부분에 미세하게 쌓인 흙이 기초가 되었으리라. 자신의 특기인 재빠르게 뿌리 내리기를 최대한 활용한 것이다. 뿌리가 번성하면서 물의 흐름을 방해했을 것이고, 그로 인해 좀 더 많은 흙이 쌓였을 것이다. 인간의 입장에서는 어느 모로 봐도 쓸모는 커녕 방해만 되는 존재이다. 그래도 장하기만 하다. 상식적으로는 불가능한 극한 상황에서 한 세대를 거뜬히 마무리해 가고 있는 봉강천 '호서교'의 피에게 몰래 박수를 보낸다.
<봉강천 호서교 홈통에서 번성하고 있는 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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