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곡두재~각흘고개

눈 덮인 초행길의 설레임

Geotopia 2012. 12. 19. 18:25

 ▶ 답사경로: 곡두재 주차장(14:20)-곡두재(14:32)-553봉(15:25)-630봉(15:50)-휴식-646봉(16:24)-갈재 갈림길-태화산(16:29)-갈재 갈림길(16:35)-갈재(17:04)-광덕사 앞(18:05)

 

 

<곡두고개~각흘고개 구간 지형도 *원도: Daum지도(편집)>

 

 

▶ 내용

  - 동물과 사람의 판단은 같다

  -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의 비밀은?

  - 동물적 감각=가장 합리적인

  - 진보한 사회의 조건

  - 오늘 젖을까, 말까?

 

 

▶ 동물과 사람의 판단은 같다

 

  다시 갈림길로 되돌아 와서 하산길에 접어 들었다. 갈림길의 얕으막한 봉우리부터는 발자욱이 전혀 없는 새하얀 눈길이어서 가슴을 더욱 설레이게 한다. 능선에서 나무들 사이로 갈재가 보였기 때문에 처음 가는 길이지만 길을 잃을 염려는 없어 보인다. 새하얀 눈길에 첫걸음을 내딛는 기분을 동영상으로 담아 보았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인줄만 알았더니 먼저 간 선답자가 있다. 바로 야생동물들이다. 재미있는 점은 동물들도 사람들이 통행하는 능선을 따라 이동한다는 사실이다. 능선을 넘어 계곡에서 계곡으로 건너갈 때도 녀석들은 사람과 똑같이 능선 중에서 가장 낮은 안부를 이용하여 능선을 넘는다. 가다보니 고라니인지, 토끼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발자욱을 따라가는 모습이 된다. 발길에 채인 눈 덩어리가 앞으로 굴러 떨어지는 모습도 꽤나 이채로운데 날씨가 추워서 눈이 거의 녹지 않았기 때문에 눈 덩어리가 구르면서 저절로 커지는 현상은 일어나지 않는다.

 

<태화산 쪽에서 바라본 갈재로 내려가는 갈림길의 작은 봉우리>

 

<갈재로 내려가는 길에 쌓인 눈>

 

<갈재로 내려가는 길>

 

▶ 태풍에 쓰러진 나무들의 비밀은?

 

  급경사면을 내려갈 때 스키를 타듯 미끄럼을 타는 신기술을 대석형이 선보인다. 대석형은 아이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아주 잘 미끄러지고 해원이도 발바닥 가운데에만 스파이크가 있는 작은 아이젠을 했기 때문에 미끄럼을 잘 탄다. 나도 흉내를 내 보았더니 온통 스파이크 투성이인 아이젠 덕분에 다소 방해가 되기는 했지만 급경사면에서는 제법 잘 미끄러진다. 대석형의 말씀에 따르면 눈 표면이 살짝 녹았다가 굳으면 더 잘 미끄러진다는데 오늘은 그런 경험을 할 수는 없을 것 같다.

  내려가다 보니 나무가 일정한 방향으로 쓰러져 있는 계곡이 나타난다. 지난 12월8일날 임도 산행 때 봤던 나무들의 무덤이 있던 계곡과 연결되는 계곡이 확실해 보인다. 즉, 강한 바람이 이 계곡으로 몰아쳐서 많은 나무들이 같은 방향으로 쓰러졌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커다란 나무가 쓰러질 정도라면 지난 여름에 우리나라를 습격했던 태풍 볼라벤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하지만 나무가 쓰러진 방향이 약간 이해가 되질 않는다. 계곡의 방향이 북동-남서 방향인데 나무들이 모두 계곡의 방향으로 쓰러진 것이다. 태풍의 눈이 서해바다로 통과했으므로 육지부는 대부분 남서풍, 또는 남동풍이 불어야 하고 태풍의 최전선이라고 해도 동풍 정도까지는 가능하지만 북동풍은 어려웠던 것이 볼라벤의 진로였다. 정확한 원인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는 없지만 동풍계열의 바람이 광덕사 쪽으로 불어왔을 때 서쪽으로 발달한 갈재방향으로 강한 바람이 몰렸을 것이고 지형적 원인으로 이 계곡을 따라 수렴되어 이런 현상이 일어난 것이 아닌가 추측해 볼 뿐이다. 미기후는 지형적 조건의 영향을 많이 받기 때문에 거시적인 기후특성과는 상당히 다른 현상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북동-남서방향의 계곡과 같은 방향으로 쓰러진 나무들>

 

<반대쪽에서 바라본 나무들의 무덤>

 

▶ 동물적 감각=가장 합리적인

 

  쓰러진 나무가 길을 막으면 동물들도 기가 막히게 막힌 곳을 우회한 다음 다시 원래 길을 찾아서 이동을 했다. '동물적 감각'이라는 말은 그러니까 '가장 합리적인'과 같은 뜻이 된다. 자연과의 상호작용에서는 이건 틀림없는 진리이다. 인간사회도 넓은 범주에서 자연환경 가운데 하나라고 본다면 동물들의 생태에서 많은 교훈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사실 몰라서 못하는 것이 아닌 경우가 상당하다. 알면서도, 아니 알기 때문에 인간의 욕심은 이성과 합리성을 넘어서고, 무시하는 방향으로 진화해 왔다.

  아래쪽으로 내려가다 보니 멧돼지 발자욱인 듯 크기가 상당히 큰 발자욱도 있다. 이 녀석들도 사람과 같은 길을 선택하는 것은 예외가 아니다. 우리와 시간이 달랐기 망정이지 같은 시간대에 만났더라면 상당히 불편한 관계가 되었을 것이다.

  드디어 임도가 눈에 보이기 시작한다. 진행 방향의 왼쪽, 그러니까 공주시 유구읍 쪽에 두 개의 건물이 보인다.지난 번에 갈재에서 넋티재를 종주할 때 갈재까지 차를 몰고 가면서 지나쳤던 건물인데 위에서 보니 느낌이 확 다르다. 산 중턱을 깎아서 만든 집터에 지은 집들은 전원주택이라고 하기도 그렇고 창고라고 하기에도 그렇다. 겉모양이 창고처럼 단순하지만 재료가 나무 재질에 창문까지 있기 때문이다. 위치상으로 보면 사람들이 찾아오기가 쉽지 않은 곳이기 때문에 팬션의 위치로도 썩 좋은 곳은 아닌 것 같다.

 

<갈재에서 유구읍 쪽을 항하여>

 

  갈재 바로 위쪽에서는 그 정체불명(?)의 건물이 잘 보이는데 나무를 모두 잘라 시야가 아주 좋기 때문이다. 나무를 자른 것은 아마도 어떤 '개발'을 위한 준비일 가능성이 크다. 멀쩡한 산 길의 나무를 아무런 이유 없이 자를 수는 없기 때문이다. 나무 대신 무엇이 이 자리를 차지할까?

 

<갈재 위쪽 개활지>

 

▶ 진보한 사회의 조건

 

  개활지를 벗어나면 바로 갈재가 나온다. 갈재로 내려 오면서 보니 '등산로 폐쇄' 현수막이 붙어 있다. 지난 12월8일의 등산에 이어 두번째로 '입산금지'를 통과한 산행이다. 하지만 두 번 다 반대쪽에서 오면서 '입산금지' 표지를 한 번도 보지 못했으므로 우린 할 말이 있다. 우린 '入山'한 것이 아니라 '出山'했기 때문에…

  어쨌든 한 가지 아쉬움은 있다. 정말 산불방지를 위해 입산을 통제해야 한다면 철저하게 입산을 통제해야 한다. 이걸 붙인 관료들도 형식적으로 작은 현수막 하나 붙여 놓은 다음에 등산객들이 자발적으로 입산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이러한 형식주의와 전시행정은 탈법을 낳고, 나아가서는 탈법을 정당화 한다. 탈법이 묵인되고, 심지어는 정당화 되는 사회는 결코 선진국이 될 수 없다. 보다 철저하게 조사, 검증을 해서 입산통제 구간을 선정하고, 선정된 구간은 철저하게 감독할 필요가 있다. 반대로 크게 통제가 필요하지 않다면 굳이 이런 무의미한 '규제표지'를 해서는 안된다. 권장사항이라면 '등산로 폐쇄' 같은 실현 불가능하면서도 강제의 의미가 강한 관료적 표현 보다는 '입산을 자제해 주세요' 식의 설득형이 합리적인 것이다. 명령과 통제가 불러 일으키는 반발심보다는 권유와 선택의 여지가 유발하는 책임감이 보다 진보한 사회의 판단기준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마나한(?) 입산 금지 현수막>

 

▶ 오늘 젖을까, 말까?

 

  드디어 갈재에 도착했다. 공사차량이 치웠는지 갈재를 통과하는 618번 지방도는 눈이 모두 치워져 있고 12월 8일날 우리가 지나갔던 임도로는 자동차 바퀴자욱이 나 있다. 우리의 1차 목표점에는 도달을 했지만 산행을 마치기 위해서는 자동차가 있는 곳까지 내려가야만 하는데 그 거리가 만만치 않다. 갈재에서 과일, 음료와 함께 짧은 휴식 시간을 가진 다음에 바로 618번 지방도를 타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려가다 보니 눈이 거의 치워져 있어서 차를 너무 아래에 놓고 온 것이 후회스럽다.

  능선길에 비해 임도는 거리가 상당히 먼데 618번 지방도도 만만치 않다. 중간에 있는 자홍사라는 작은 절은 전에 큰 아들 건이와 광덕산맥 서쪽 줄기를 종주하다가 중간에 내려왔던 곳이라서 눈에 익다. 자홍사에서 조금 더 내려오면 12월8일날 임도에서 타고 내려왔던 능선의 끝부분이 끝을 맺는 갈재교가 있다.

  '차를 더 높은 곳까지 가져왔어도 될껄…' 하는 아쉬움은 아래로 내려가면서 '안 가져오길 잘했구나'로 바뀐다. 아랫쪽은 더 눈이 많이 내렸는지 도로도, 산기슭도 모두 두껍게 눈으로 덮여 있다.

  뿌듯한 성취감을 뒷풀이로 고양시켜볼까? 생각하고 있는데 귀신같이 술냄새를 맡은 정록이가 정확한 타이밍에 전화를 한다. 오늘은 젖을까, 말까?

 

<눈으로 덮여 있는 618번 지방도의 아래쪽>

'금북정맥 > 곡두재~각흘고개' 카테고리의 다른 글

곡두재~각흘고개(두번 째)  (0) 2015.06.14
태화산은 646m  (0) 2012.12.17
가지 않은 길은 아쉽다  (0) 2012.12.15
갈재~임도~해사동~광덕사 주차장  (0) 2012.12.10
각흘고개-갈재  (0) 2012.12.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