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지리 시사자료

독도 문제, 일본에게 배우자(?)

Geotopia 2012. 8. 17. 22:28

<동아시아 분쟁지도: 한겨레신문 2012.8.17>

 

  1945년 8월 15일, 일본은 무조건 항복을 선언했고 우리는 해방이 되었다. 우리나라 뿐만 아니라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나라들에게 8월15일은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그로부터 67년이 지난 2012년 바로 이날, 동아시아 3국은 비슷한 원인으로, 그러나 약간씩 다른 양상으로 시끄럽다. 홍콩의 활동가들은 다오위다오(일본명 센카쿠열도)에 상륙하여 중국 국기를 꽂았다. 이에 앞서 우리 대통령은 독도를 '기습 방문'했었다.

  얼핏 일본이 한·중의 양면 공격을 받아서 샌드위치가 되고 있는 형국이다. 

 

  그렇다면 협공을 당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일본은 어떤 전략을 취하고 있을까? 한 마디로 정반대의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독도에 대해서는 연일 공식, 비공식 통로를 통해 크게 반발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는 반면에 센카쿠 열도에 대해서는 의외로 매우 담담한 반응을 보이고 있다. 왜 그럴까?

 

  독도 문제와 다오위다오 문제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일본의 입장에서 보면 사실은 본질이 매우 다른 문제이다. 한 쪽은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곳이고, 다른 한 쪽은 그 반대인 곳, 즉, 분쟁지역화를 도모하고 있는 곳이다. 

 

  그렇다면 분쟁지역화를 도모하고 있을 때의 전략과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을 때의 전략은 어떻게 다른 것일까? 물론 정답은 없다.

  먼저 분쟁지역화를 도모할 경우를 생각해 보자. 적어도 분쟁지역화를 도모하고 있는 지역에 대한 전략은 중국과 일본의 정책에서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일본과 중국의 정책이 똑같기 때문이다. 즉, 일본과 중국 모두 끊임없이 선제적으로 문제를 제기하고 있다. 잊을 만 하면 일본은 독도 문제를 들고 나온다. 중국 또한 다오위다오 주변에서 끊임없이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문제가 확대될수록 유리하기 때문이다. 선제적으로 문제를 일으켜 분쟁지역화에 성공하면 설혹 국제사법재판소에 가서 진다고 해도 손해볼 일이 전혀 없다. 한 마디로 '밑져야 본전'인 것이다. 그런 면에서 중국인들의 무리한 다오위다오 상륙은 그곳을 분쟁지역화 해야만 유리한 중국의 입장을 잘 보여주는 것이다. 결국 일본이 독도에 대하여 취하고 있는 정책과 중국이 다오위다오에 대하여 취하고 있는 정책은 본질적으로 같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곳에 대해서는 어떤 정책이 유리한 것일까? 당연히 정답은 없지만 두 문제를 동시에 안고 있는 일본에게서 역설적으로 힌트를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경우에는 문제를 키워서 이익을 볼 일이 전혀 없다. 문제를 키우는 일은 상대국에 유리한 결과만을 가져올 것이 뻔하기 때문이다. 실제 일본은 센카쿠열도에 대하여 매우 유화적인 대응으로 일관하고 있다. 하지만 동시에 민간단체를 내세워 지속적으로 실효적 지배를 강화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이번에도 중국인들이 일본의 저지를 무릅쓰고 상륙했으며, 게다가 중국 국기까지 꽂는 엄청난 일을 벌였음에도 불구하고 (겉으로는 강경한 목소리를 내는 것 같았지만) 의외로 담담하게 대응하고 있다. 체포한 중국인들을 조만간에 송환할 것이라는 관측이 우세하다. 참 놀라운 일이다. 

 

  독도에 이러한 상황을 적용해 보자. 실효적 지배를 하고 있는 지역에 난데없이 국가 원수가 방문을 했다. 정말 '난데 없다'는 말이 맞다. 국내 언론에 엠바고(보도 유예)를 요청하고 우리 대통령은 국민을 상태로 깜짝쇼를 단행했다. 일부는 '우리 땅인데 왜 못가느냐'고 말한다. '후련하다'는 반응도 있다. 일면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 시기에 왜 갔을까? 어떤 실효적 효과를 노리고 갔을까? 라고 의문을 제기해 보면 쉽게 마땅한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이미 우리 땅인데 굳이 국가 원수가 가서 '우리 땅임'을 강조하는 것은 논리적 자가당착이 아닐까? 청와대에서 '서울은 우리 땅'이라고 강력하게 주장하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그동안 '못 간 것'이 아니라 '안 간 것'은 아닐까? 센카쿠에 일본 수상이 갑자기 방문한 경우를 상상해 보면 그 답이 좀 더 쉽게 나온다.

 

  반대로 일본의 입장으로 이번 문제를 바라보자. 우선 어떤 경로로 정보가 유출되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청와대의 엠바고 요청에도 불구하고 이미 일본에서는 10시간 전에 대통령의 독도 방문 예정 사실이 보도 되었다고 한다(우리 국민은 어이없게도 일본 사람들보다 10시간이나 늦게 대통령의 독도 방문 사실을 그야말로 깜짝 뉴스로 들어야만 했다). 어쨌든 끊임없이 분쟁지역화를 도모하고 있는 지역에 생각지도 않게 상대국의 국가 원수가 공식적인 방문을 했다. 뜻하지 않은 '횡재'를 한 것이다. 일본이 그간 독도에 대해 취했던 어떤 행동보다 가장 강력하게 외교적인 문제제기를 하고 나서는 것을 보면 돌아서서 미소를 짓고 있는 그들의 모습이 쉽게 상상이 간다. 상식적으로 자기들 스스로 일을 저지르고 국제사법재판소에 제소를 하는 것은 모양이 전혀 맞지 않는다. 그런데 이번엔 상대국이 공식적으로, 그것도 국가 원수가, 대대적인 언론플레이를 동반하면서 방문을 한 것이다. '횡재'란 말 이외에 무슨 말로 이 상황을 표현하랴.

 

<한겨레그림판, 2012.8.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