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적인 명당은 생산성을 배경으로 한 입지이다. 농업경제하에서는 한 마을을 부양할 수 있는 농경지가 절대적으로 필요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명당은 생산기반을 갖추어야만 가능하며, 배산임수(背山臨水)를 경제적 관점으로 해석해보면 '臨水'는 하천유역 평야를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튼튼한 생산기반은 마을을 번성하게 하고, 번성한 마을에서 인물이 많이 나오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도참적 명성은 장소에 권위를 더욱 부여한다.
좋은 입지에는 경쟁이 따르기 마련이다. 실제로 세도가가 기존에 정착한 가문을 누르고 마을을 장악하는 사례가 종종 있다. 그러므로 명당은 단순한 자연적 입지를 넘어 권력관계를 배경으로 깔고 있는 것이다.
충남 예산군 신양면 귀곡리는 창녕 성(昌寧 成)씨 종족촌락이다. 이 마을은 무한천 상류 신양천 유역에 발달한 평야를 배경으로 자리를 잡았다. 앞쪽으로는 차령산지 본 줄기가 지나간다. 1620년대에 입향하여 약 15대째 후손이 살고 있다. 원래는 중종반정 4등공신이었던 성희옹의 부인 담양전씨의 친가가 있던 마을이었다. 광해군 재위 시절에 성희옹의 증손 성흔이 난정을 피해 낙향을 하면서 종족촌락이 발달하기 시작하였다. 입향 후에는 승지를 지낸 성정진 등 많은 관료를 조선 후기까지 꾸준히 배출하였다. 성희안의 부조묘, 진주강씨의 열녀비, 양주조씨 열행비 등 전형적인 종족촌락 경관을 지금까지 보존하고 있다.
사진은 가묘에서 바라본 신양천변 농지이다. 조선시대 중기 이후 발달하기 시작한 종족촌락은 당시 가장 중요한 경제적 기반이었던 농토를 배경으로 하지 않으면 발달할 수가 없었다. 창녕성씨는 사진의 넓은 들을 바탕으로 가문이 번성하여 하천 건너편 마을까지 영역을 확대하였다. 논 가운데에 있는 작은 동산은 농토를 개간하는 과정에서 남은 공간이다. 농지로 개간되기 전에는 대부분 숲이었음을 보여주는 경관이다.
'인문지리 > 문화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딴산 (0) | 2012.10.29 |
---|---|
제주 돗통시 (0) | 2012.09.18 |
한성 주산(主山)에서 바라본 주작대로 (0) | 2012.07.08 |
타이완의 사찰 (0) | 2012.02.07 |
예천 초간정사(草澗精舍) (0) | 2004.07.0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