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식적으로 알려져 있기로는 '홍주'와 당시 충남도청 소재지였던 '공주(公州)'가 일본어 발음(こうしゅう)이 같아서 혼란을 피하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이는 당시 일제의 주장으로 그로 인해 '洪州'의 '洪'과 '結城'의 '城'이 합쳐져 '洪城'이 되었다. 일제가 이런 식으로 이름을 바꾼 예는 꽤 많지만 대부분 마을 단위의 이름이고 군 단위에서는 그 예를 찾기가 어렵다. 새로운 이름으로 바뀐 사례(부산, 군산, 대전 등)는 일부 있지만 옛 군현 이름에서 한 글자씩을 따서 조합한 사례는 없다.
충남을 예로 들어보면 대부분 지역이 통폐합 과정에서 조선시대 해당 지역의 목·군·현 이름 중에 한 가지를 선택하였다. 충남 14개 군 가운데 옛 이름을 잃은 곳은 세 지역인데, 홍성을 비롯하여 논산, 대전이다. 특히 위계가 높았던 '목(牧)'이 이름을 잃은 경우는 '홍주'를 빼고는 전국적으로 한 군데도 없었다. 새 이름을 지은 예도 흔치 않지만, '牧'이 이름을 잃은 유일한 예라는 사실은 홍성이 아주 특이한 사례라는 뜻이다.
결성 주민들이 이름을 잃는 것을 강력하게 반대하여 이런 이름이 지어졌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당시 일제의 강압적 식민지 정책에 비춰보면 타당성이 크지 않은 주장이다.
그렇다면 왜 바꿨을까?
한말 이후로 가열차게 계속된 홍주 의병과 관련이 있다는 의견이 제기된다. 을미사변(1985) 이후 홍주의병을 이끈 인물은 지산 김복한이다. 김복한은 홍주 조휘곡(지금의 홍성읍 소향리) 태생으로 이종사촌 이설, 제자 임승주·임한주 형제(청양), 안병찬(청양), 민종식(정산) 등과 함께 홍주 의병을 이끌었다. 그의 항일사상은 이후 김좌진, 한용운으로 이어졌으며 인근의 윤봉길(덕산), 이남규(예산) 등에게도 영향을 미쳤다.
김복한과 이설의 항일 사상은 호론(湖論)의 학맥을 이은 남당 한원진(1682년 숙종 8∼1751년 영조 27)에 뿌리를 두고 있다. 결성현에 살았던 한원진은 송시열-권상하로 이어지는 노론 학맥의 적통으로 인물성이론(人物性異論)으로 낙론(洛論)과 대립하였다. 배타적 노론 독재를 주장했던 남당의 사상은 송시열, 권상하의 反淸사상을 확고하게 이었으며, 개화기에는 반외세 사상으로 이어져 정통파 보수주의의 뿌리가 되었다.
이처럼 한말 홍주, 결성 일대는 항일운동의 중심지였으며 그 사상적 뿌리는 남당의 호론에 있다. 그런데 충남에서 홍성 외에 옛 이름을 잃은 두 지역(대전, 논산)은 기호 서인의 뿌리라고 할 수 있는 사계 김장생과 우암 송시열의 고향이다. 대전은 조선시대 회덕과 진잠, 그리고 공주의 일부가 합쳐져 만들어졌고, 논산은 은진, 연산, 노성이 협쳐져 만들어졌다. 그렇지만 두 지역 모두 조선시대 군현 이름을 따지 않았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들 지역은 홍주와 결성에서 각각 한 자씩을 따 온 홍성보다 더 많이 이름을 잃었다. 조선시대 군현의 이름을 완전히 잃었기 때문이다.
대전(大田)은 '큰 밭', 또는 '넓은 들'로 해석할 수 있으므로 너른 지형을 보고 이름을 붙였음직하다. 논산은 '논 가운데 있는 산(논뫼)' 에서 비롯된 이름으로 추정되는데 1872지방지도에는 산 이름과 마을 이름으로 '論山'이 실려 있다. 두 지역 모두 굳이 이름을 바꿀 이유는 없어 보인다.
일제가 행정구역 개편 과정에서 유서깊은 옛 이름을 버리고 대전과 논산이라는 이름을 붙일 납득할 만한 이유는 없어 보인다. 회덕은 우암 송시열의 고향이며, 연산은 사계 김장생의 고향이고, 노성은 명재 윤증의 고향이다. 이들은 모두 기호학파의 거물들이다. 송시열과 윤증은 후에 정치적 견해차로 노론과 소론으로 대립하지만, 그 뿌리는 모두 김장생과 연결된다. 대전과 논산까지 확대하는 것은 논리적 비약이라 하더라도 적어도 일제가 홍주를 홍성으로 이름을 바꾼 이유가 호론, 나아가 기호학맥에 뿌리를 둔 항일운동, 독립운동과 관련이 있다는 주장이 근거없는 억측만은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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