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홍성

결성(結城) 답사

Geotopia 2023. 11. 2. 16:19

▣ 답사 경로

결성향교 출발(09:30) - (성남 중리를 지나서) - 홍성호(모산도&석당산 조망점 10:00) - (한원진 묘 지나서) - (임득의 묘 지나서) -  용호장터/김창룡옛집 터(11:00) - (김좌진 생가 지나서) - 점심(11:30 갈산) - 주교마을(13:00) - (형산 지나서) - (한용운생가) - 신금성터(13:30) - 고산사(14:00) - 역촌(14:30) -  (결성농요농사박물관) - (해동마을 앞으로) - 해창교(15:00) - 결성읍성(형장청, 동헌, 책실, 객사터, 전망대, 옛 동헌터, 남문 15:30)

▣ 답사 주제 및 답사지

▶ 지리적 위치: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는 적환지

   -관련된 곳: 모산만 · 결성읍성(전망대) · 해창 · 신금성 · 주교마을(형산리) · 용호장터

   -답사할 곳: 홍성호(모산도&석당산 조망점) · 주교마을(형산리)

▶ 풍수

   -관련된 곳: 청룡산 · 衡山(저울산) · 신금성

   -답사할 곳: 결성초등학교(청룡산 · 형산 조망점) · 신금성 터

▶ 고대: 농업 생산에 기초한 고대국가(眞蕃國 · 古卑離國) 

   -관련된 곳: 신금성 터 · 결성농요농사박물관

   -답사할 곳: 신금성 터

▶ 통일신라~고려시대: 성곽 중심의 교통 · 농업 · 군사 · 행정 요충

   -관련된 곳: 신금성 · 고산사

   -답사할 곳: 고산사

▶ 조선시대: 방어형 지방 행정 단위 ·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던 결절점

   -관련된 곳: 결성읍성(동헌 · 형장청 · 책실 등)  · 결성향교(교촌) · 해창 · 역말 · 최선달생가터(성남리)&묘(금곡리 해동/성남리 중리마을에서 2014년 이장) ·임득의 묘 · 한원진 묘 · 김창룡 옛집 터

   -답사할 곳: 결성읍성 · 해창 ·역말 · (임득의 묘)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성지 · 면단위 농촌 중심지 

   -관련된 곳: 한용운생가 · 결성읍성(객사) · (김좌진 생가) · 용호장터 · 머내장터 · 김창룡 옛집 터

   -답사할 곳: 용호장터 · (김창룡 옛집 터)

▶ 해방 후: 인구가 줄어드는 면단위 농촌 중심지

   -관련된 곳: 결성장터 · 결성중학교(1964년 개교, 2018년 폐교)

   -답사할 곳: 결성장터

 

▣ 결성현의 위치와 자연환경

  ▶지질구조와 지형

  지질구조가 복잡하다. 선캄브리아기 변성암에서부터 고생대 페름기 퇴적암, 중생대 쥐라기 심성암 등 매우 복잡한 지질구조를 보인다. 대체로 구조선 배열은 북북서-남남동으로 한반도의 일반적인 구조선 배열과는 많이 다른 모양이다. 지질구조선은 지형에 반영되어 청룡산·형산 등 주요 산줄기가 지질구조선 방향으로 발달한다. 서해안의 태안층 분포 지역은 해안쪽으로 북동-남서, 또는 동남동-서남서 방향으로 해안으로 흘러든다.

  산줄기는 물줄기에 영향을 미쳐서 금리천의 지류(금리천·금곡천·금국천·판교천)와 와룡천의 지류(구수천·중리천)들은 대체로 남북방향으로 발달한다. 이들은 모두 본류에 이르러 서북-남동 방향으로 크게 방향을 바꿔 천수만으로 흘러든다. 금리천은 성남리 앞에서 서북쪽으로 크게 방향을 바꿔 모산만(홍성호)으로 흘러들며, 감입곡류하는 와룡천은 용호리 앞에서 거의 180도 방향을 바꿔 천수만(서산간척지 간월호)으로 흘러든다. 궁리에서 남당리에 이르는 해안 지역에는 짧은 독립 하천들이 직접 천수만으로 흘러든다.

  결성지역에서 두 하천의 분수계는 형산(209.6m)-청룡산(236m)을 잇는 산줄기이다. 이 산줄기는 호서기맥의 보개산(275m)에서 갈라져서 괴염산(192.5)에서 다시 서쪽으로 형산 줄기와 남쪽으로 지기산(324.5m) 줄기로 나뉜다.

*한국지질자원연구원
음영기복도와 위성영상 *카카오맵 **Google earth

  ▶풍수

  결성읍성 객사터(결성초등학교)에서는 북서쪽으로 청룡산이, 북동쪽으로는 형산이 보인다. 읍성은 결성의 진산인 석당산 동쪽 기슭에 자리를 잡았다. '청총마의 노래'에 따르면 결성은 북쪽을 향해 달리는 준마 형상으로 청룡산과 형산이 그 뼈대를 이룬다. 대대로 주민들이 신성하게 여겨 온 두 산을 혈처(穴處)인 읍성의 객사에서 바라볼 수 있다.

청총마(靑騘馬)의 노래

저울산이 등이 되고 청룡이 배가 되니  / 와룡천 목덜미에 금곡이 둔부로다
북쪽을 향하여 달리는 그 기상 / 하늘을 나는 천마가 되었구나

동서의 산맥이 남으로 달리고 / 남북의 두 내가 평야를 이루었네
산천정기 모두 빼어난 청총마의 그 모습 / 이 지맥 결성인의 기질이라네

  산줄기가 복잡하기 때문에 크고 작은 명당 형국들이 있겠지만 가장 눈의 띄는 곳은 신금성(神衿城)터이다. 신금성을 혈(穴)로 본다면 백호는 청룡산 줄기가 되고 청룡은 형산줄기가 된다. 신금성이 풍수가 대표적인 입지 원리였던 고려시대에 세워졌으므로 풍수적 입지관이 개입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산경도
결성읍성에서 바라본 청룡산(왼쪽 높은 산)과 형산(사진 오른쪽 길게 뻗은 산). 두 산 사이에 뻗은 줄기 끝이 신금성터이다.

 고대: 농업 생산에 기초한 고대국가(眞蕃國 · 古卑離國) 

  결성은 농토가 넓은 지역은 아니다. 자잘한 산이 많아서 너른 들판이 발달하지는 않지만 남쪽의 금리천과 북쪽의 와룡천 유역에 꽤 넓은 범람원이 발달한다. 「세종실록 지리지」에 따르면 墾田은 모두 3,251결인데 논은 1/3에 불과했다. 땅 넓 이는 주변의 다른 군현들과 비교했을 때 비슷한 수준이지만 논은 조금 적은 편이다. 

  고대국가가 자리를 잡았다면 농업 생산이 많았다는 뜻이다. 금리천과 와룡천은 바다에 가까운 하천으로 후빙기 직후에는 상당 부분이 바다였을 것이며 점차 퇴적되어 오늘날과 같은 모습이 되었을 것이다. 충적으로 이루어진 유기물이 풍부한 땅이라는 뜻이다. 「세종실록 지리지」는 '땅이 비옥하다'고 적고 있다. 와룡천 충적지는 영안이들, 금리천 충적지는 우러내들로 불리우며 고대 이래로 결성지역의 훌륭한 생산 기반이 되어왔다.

  두 하천은 하구가 바다로 넓게 열려 있지 않고 좁고 긴 만으로 이어진다. 거친 바닷 바람은 맞는 바닷가가 아니면서도 해산물을 얻고, 바닷길로 나갈 수 있는 위치이다. 이러한 조건들이 고대국가가 들어서는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백제시대에도 결기(結己), 또는 결이(結已)현으로  일찍이 지방행정단위에 포함되어 있었다. 인구가 많았다는 뜻이고, 인구가 많으려면 농업 생산도 많았다는 뜻이다.

 통일신라~고려시대: 성곽 중심의 교통 · 농업 · 군사 · 행정 요충

  신라때는 결성군(潔城郡)으로 이름이 바뀐다. 그렇지만 그 이전에 '성(城)'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백제시대, 신라시대의 유물들이 많이 출토되었기 때문이다. 산성이든, 읍성이든 성이 있었다는 것은 군사적 또는 행정적 중심지였음을 뜻한다. 고려시대에는 신금성이라는 공식적인 이름으로 성이 만들어진다. 1399년에 읍치를 석당산으로 옮겼는데도 「신증동국여지승람」에 흙으로 쌓은 성으로 둘레가 1,350척이라고 기록되어 있으며, <1872지방지도>에는 衡山 밑의 神衿城에 과거 읍치를 성곽으로 표시하였다. 조선후기까지도 잘 알려져 있던 곳이었음을 뜻한다.

  신금성은 구릉에 자리잡은 평지성에 가깝다. 산성과는 달리 평지성은 행정 기능이 강하다. 신금성은 금리천의 지류 사이에 발달한 구릉에 자리를 잡았는데, 이 일대는 이 즈음에는 대부분 감조구간 가까이에 해당하여 너른 평지와 해상교통의 결절점이었을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당시 신금성은 행정기능과 함께 바다를 경계하는 군사적 기능과 교역 기능을 함께 수행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이 일대(원금곡마을)는 해창교 부근에서 불과 1.3km 거리에 있는데,  2001년 홍성방조제가 만들어지기 전까지 해창교 일대는 금리천 감조구간이었던 점을 고려하면 이러한 추정은 옳을 가능성이 크다.

홍성방조제 완공 전 해창교 앞에 밀물이 들어온 장면(1994년 찍음)

  이 시기에 만들어진 절이 있는 것도 이 일대가 중요한 위치였음을 말해준다. 청룡산 동쪽 기슭에 자리잡은 고산사(高山寺)인데, 더욱이 이 절은 통일신라말 도선국사가 세운 것으로 전해 내려온다. 도선국사는 풍수지리의 이론적 토대를 닦은 인물로 당대에는 물론 고려시대까지 국가적·개인적 입지 결정에 큰 영향을 미쳤다. 

 

보물 홍성 고산사 대웅전 (洪城 高山寺 大雄殿) : 국가문화유산포털 - 문화재청

문화재 검색 보물 홍성 고산사 대웅전 (洪城 高山寺 大雄殿) Daeungjeon Hall of Gosansa Temple, Hongseong 해당 문화재의 정보입니다. 분류, 수량/면적, 지정(등록)일, 소재지, 시대, 소유자(소유단체), 관리

www.heritage.go.kr

 

 

도선 -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위키백과, 우리 모두의 백과사전. 도선(道詵, 827년 ~ 898년 3월 10일)은 신라 말기의 승려이며 풍수설의 대가이다. 속성(俗姓)은 김(金)씨이다.[1] 통일 신라 시대 김천 지역의 청암사를 창건한 승려

ko.wikipedia.org

 

▣ 조선시대: 방어형 지방 행정 단위 · 바다와 육지를 연결하던 결절점

  ▶  읍성의 일반적 구조

 

읍성(邑城): 조선시대 계획도시

▣ 읍(邑): 조선시대에 등장한 통치·방어형 취락 ▶ 중앙집권의 상징 인간 생활의 기본 토대가 되는 취락(聚落‧settlement)은 다양한 원인으로 발달한다. 인류 초기에는 수렵이나 농경 등 생존에

lovegeo.tistory.com

 

  ▶ 지방행정단위의 일반적 구조를 잘 보여주는 결성

1872지방지도 결성현(부분) *서울대학교 규장학 한국학연구원

  조선시대 결성현은 오늘날의 결성면, 광천읍, 은하면, 서부면, 구항면(일부)에 해당한다. 비교적 규모가 작은 지역이어서 현(縣) 단위 행정구역의 전체적 구조를 살펴보기에 좋다. 즉, 읍성의 일반적 구조와 함께 군현의 구성요소를 살펴볼 수 있다. 진산인 석당산에 성을 쌓아 읍치를 만들었고 산의 동쪽 사면에 관아를 배치하였다. 좌묘우사의 원칙을 지켜 북쪽에 향교(校村)를 세우고, 오른쪽인 남쪽에 사직단을 배치했다. 읍치에서 북쪽으로 약 5리 떨어진 곳에 역참(海門驛)이 있었고, 읍치 앞(동쪽) 금리천 연안에 창고(海倉)이 설치되었다.

  社壇, 城隍壇, 厲壇의 三壇을 비롯하여 기우제를 지냈던 雩所도 상세히 그려진 점이 특징이다.

  읍치에서 떨어진 곳에는 종족촌락이 형성되었는데 「세종실록지리지」에는 토성(土姓)이 張, 韓, 趙, 래성(來性)은 文, 촌성(村性)은 方으로 기록되어 있다. 조선 중기 이후에는 청주한씨, 안동김씨 등이 종족촌락을 이루었다. 홍주, 덕산, 보령 등으로 이어지는 주요 도로에는 장터(場垈)와 숙식시설(店, 院)이 발달했다.

 

  ▶결성읍성: 해안 방어에 가장 적합한 위치

  결성읍성은 읍성과 산성이 섞인 독특한 형태이다. 치소가 있었던 석당산 대부분을 포함하는 읍성을 쌓았다. 산 정상을 둘러싼 산성이지만 치소가 상주하는 읍성이다. 보통 산성은 비상시에만 썼던 것과 대비가 된다. 1872지방도에는  읍치 성곽에東門 하나만 표시되어 있는데, 이를 통해 방어적 성격이 강한 읍성임을 알 수 있다. 

  결성읍성은 해안 방어에 매우 적합한 곳에 자리를 잡았다. 성에서는 밖(바다 쪽)이 잘 보이지만 바다에서는 성이 잘 보이지 않는다. 해안에 바로 붙어 입지하지 않는 일반적인 입지를 따랐지만 실질적으로는 해안 입지와 비슷한 효과를 볼 수 있는 위치이다.

  그런데, 서해안 방어에 중요한 위치인 것은 틀림이 없지만 실질적으로 외적과 싸운 기록은 전하지 않는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세종1년 5월4일 '결성 지역에 왜선이 나타나다'라는 짤막한 기사 외에는 외침에 대한 기록이 없다. 결성읍성이 실질적인 방어 기능을 한 예가 거의 없다는 뜻이다. 싸우지 않고 이기는 전쟁이 최선이라고 보면 최선의 목적을 달성한 셈이다. 

결성읍성에서 바라본 천수만
<동여도>
*Google earth
홍보방조제에서 바라본 결성. 사진 가운데 가장 높은 산 앞에 있는 산이 석당산이다. 해수면에서 보면 석당산은 잘 보이지 않는다.

  ▶ 교통 발달

  감조구간에 속하여 물길이 편리했고 육로와도 쉽게 이어졌다. 해창과 그보다도 상류에 포구(동산포)가 있었고, 그 상류에 역말(해문역)이 있었다. 海門驛은 1415년(태종 15)에 설치된 것이다. 광천에는 원(廣川院)이 있었다. 1872지방지도에는  주요 도로상에 店들이 다수 그려져 있는 것을 통해 이 시기의 상업 기능을 엿볼 수 있다. 廣川面과 龍川面에 장시가 표시되어 있다. 광천 일대를 흐르는 하천인 광천은 조수의 영향으로 배가 드나들 수 있었는데, 광천원(지금의 광천읍 옹암리)까지 배가 들어 왔다고 한다.

19世紀 初(「林園十六志」) 市場圈과 郡縣 所在地의 人口 *임병조(2008)

  ▶ 소리꾼 최선달과 김창용

  최선달(崔先達, 1726(영조2년)~1805(순조5년))은 홍성군 결성면 성남리 578번지 태생이며, 김창룡(金昌龍, 1872(고종91943)은 홍성군 결성면 용호리 624번지(서천군 장항읍 횡산리 출신인데 42세(1913) 때 용호장 근처로 이사를 왔다는 說도 있음)에 살았다. 

  최선달은 결성농요가 전해지는 데 결정적 영향을 미쳤는데, 이처럼 유명한 소리꾼들이 결성에서 태어났거나 살았던 이유는 단지 우연으로만 볼수는 없다. 그들의 무대였던 장시가 큰 지역, 즉 상업 중심지였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김창룡은 용호장 근처에 살면서 장터에 나가 소리를 하곤 했었다고 전한다.

 

 

김창룡 등 명창 배출한 중고제 판소리의 ‘본향’ - 홍성신문 내포타임즈

필자의 과문한 탓이지만, 얼마 전까지만 해도 판소리는 서편제와 동편제만 있는 줄 알았다. 특히 서편제는 몇 년 전에 영화로 인기를 끌면서 많은 사람들의 기억에 인상 깊게 남아 있기도 하다.

www.hsnews.co.kr

 

홍주 소리와 가락 복원, ‘예향 홍주’ 자긍심 높이는 일

▲ 한성준 묘터. 중고제, 충청·경기지방 판소리… 현재 그 소리 명맥 끊어져 최선달·김창룡·한성준 등 홍주...

blog.naver.com

 

▣ 일제강점기: 독립운동 성지  · 면단위 농촌 중심지 

  ▶ 지명변화: 신구대조지방행정구역

  일제 강점 직후 일제가 시행한 1914년 지방행정구역 개편으로 결성군은 홍성군과 통폐합되어 '홍성군 용천면'으로 위계가 떨어진다. 1917년에 '결성면'으로 옛 이름을 되찾기는 했지만 행정 위계가 떨어짐으로써 이후 세력이 축소되는 길을 걷게 된다.

 

   근대교통의 등장과 결성

  도로와 철도로 대표되는 근대교통수단이 등장하였는데 이들은 모두 홍성 중심으로 설치되었다. 특히 1931년 장항선이 완공됨으로써 결성의 전통 수운이 쇠퇴하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즉, 광천이 군산항으로 연결되는 해로와 장항선 철도를 연결하는 위치를 차지함으로써 식민지 무역의 중심지가 되었고, 조선시대 해운과 육지교통의 결절점이었던 결성을 무력화하게 되었다.

1930년대 內浦의 장시 분포(1938)&nbsp; *임병조(2008)

 

결성면 용호리 덕우마을 - 사람 사는 이야기①

홍성군 청년 마을조사단에서는 마을의 이야기를 기록하고 기억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홍성 지역의 소중...

blog.naver.com

 

해방 후: 인구가 줄어드는 면단위 농촌 중심지

1960년대 결성장 *결성면지(1994)
홍성군 정기시장의 변화 *홍성군지(1993)

  현재 인구는 2,011명(2023년 9월 현재) 홍성군내 11개 읍면 가운데 가장 인구가 적다. 주요 도로와 철도에서 멀리 떨어짐으로써 중심성을 유지하기 어려운 조건을 갖게 되었다. 특히, 장항선 철도가 이 일대의 지역구조에 크게 영향을 미쳐서 홍성, 광천 등 장항선 주변 지역을 중심으로 지역구조가 재편되었다. 결성은 장항선과의 거리가 홍성군내에서 서부면을 제외하고 가장 먼 거리에 있다. 한편, 서부면(인구 3,096명(홍성군내 8위))은 관광과 어업 중심지인 남당리를 끼고 있고, 서산간척지를 거쳐 안면도로 이어지는 큰길(96번 지방도)이 지나간다. 

 

 

포구였던 마을 방조제 생긴 후 바다에서 멀어져 - 홍주일보

홍성군 결성면 성호리는 과거에 서해바다와 직접 면한 어촌이었으나 지금은 한적한 농촌마을이다. 성호리는 후청동과 가곡, 원성호 등 3개의 리로 나눠져 있다. 그 중 원성호는 ‘원래의 성호리

www.hjn24.com

 

'충청남도 > 홍성' 카테고리의 다른 글

[답사 영상] 옛 결성현  (0) 2023.11.05
[영상] 홍주읍성 답사  (0) 2023.10.09
홍주읍성 답사  (0) 2023.09.26
읍성(邑城): 조선시대 계획도시  (0) 2023.09.25
홍주읍성  (0) 2023.0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