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코니에 '이름 모를 꽃'이 있었다. 엄연히 이름을 갖고 있는 꽃에게 '이름 모를 꽃'이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이 무책임한 말인 줄은 잘 알지만 내 관심 밖이니 어쩔 수가 없었다. 아내가 가끔 이름을 불러줬지만 왼쪽 귀로 들어왔다가 오른쪽 귀로 새어 나갈 뿐이다.
그 꽃이 '있었던' 이유는 우리가 이 집에 이사를 올 때부터 있었기 때문이다. 전 주인이었던 처형이 키우던 꽃을 기증하고 가셨던 것이다. 내가 하는 일은 그 가지를 잘라주는 것이었다. 줄기가 중구난방으로 길게 뻗는데 가시까지 달려있어서 여간 성가신 것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꽃 이름도 모르는 주제에 전지 기술이 있을리가 없다. 그냥 튀어나오는 놈을 잘라주니까 아내가 잔소리를 한다. 하도 싹둑싹둑 잘라 버려서 집이 가난하단다. 어쨌든 이 녀석이 우리와 동고동락을 한 지가 얼추 십 여 년이 되었지만 곁가지만 나올 뿐 본 줄기는 그대로다. 관목의 일종으로 다 컸으려니 했다. 삐죽하게 줄기가 뻗어 나오면 그 끝에 몇 개 꽃이 피는데 그래도 그 꽃은 볼 만 했다.
어느날 아내가 우연히 어느 꽃집에서 이 꽃을 봤는데 우리집 녀석과는 비교도 안 되게 크고 소담스러웠다는 것이다. 그건 다른 품종이라고 일축을 했지만 아내가 자꾸 화분을 큰 것으로 바꿔보자고 졸랐다. 녀석이 크거나 말거나 솔직히 관심이 전혀 없었지만 가정의 평화를 위해 큰 화분에 옮겨보기로 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마치 식물이 뻥튀기 되는 느낌?
거짓말 좀 보태면, 커가는 속도가 보일 정도로 녀석이 광속으로 몸집을 불리는 것이 아닌가! 십 여 년 동안 그대로이던 녀석이 마치 그 동안 억눌려 있던 한을 풀어 내듯이… 아내가 철물점에 가서 쇠로 만든 지줏대(고추밭에서 쓰는)를 사다가 사방으로 네 개나 꽂아 주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놀라운 일이 또 하나가 벌어졌다.
몸집을 불리자 마자 이내 꽃을 피우기 시작하는 것이다. 수 십 배 커진 덩지에서 꽃을 피우기 시작하니 발코니가 온통 빨간 색이다. 꽃이 많아진 것 뿐만이 아니라 꽃의 크기도 예전보다 더 크고 색깔도 진하다. 아내는 '바로 이것!'이라며 의기양양 난리가 났다.
이 즈음에 겨우 녀석의 이름이 왼쪽 귀로 들어와서 머리 중간에 머물기 시작했다. 이름하여 '부겐베리아'. 나중에 싱가포르 여행을 갔다가 이 녀석이 열대성 식물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싱가포르에 도착해서 공항에서 시내로 이동하는 길 가에 잔뜩 피어있는 녀석들을 아내는 금세 알아봤다. 센토사섬이라는 곳에서는 엄청 키가 큰 녀석을 만났는데 그 때마다 아내는 집에 두고 온 아들이라도 만난 것처럼 반가워 했다.
'사람을 가르치는 일이 우리집 부겐베리아와 같구나!'
그릇을 크게 해 줄 일이다. 큰 그릇에 두면 큰 것이 되고, 작은 그릇에 우겨 넣으면 작은 것이 된다.
<작은 화분에 있을 때는 이랬다>
<큰 화분에서 꽃을 피운 모습>
<싱가폴 센토사섬의 부겐베리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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