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세상사는 이야기

몰디브전에서 배우자

Geotopia 2004. 4. 4. 07:09

  코엘류 감독은 이런 주문을 했다고 한다. "월드컵 4강은 빨리 잊어라". 그리고 덧붙인 이야기는 게임에 대한 집중력, 즉 약팀을 얕보는 정신력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그렇다면 선수들에게 문제가 있는 것인가? 축구협회는 코엘류 감독을 경질하지는 않겠다는 의사를 표명하였다. 도대체 우리나라 축구의 문제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월드컵 4강의 신화는 아마 다시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 온 국민을 한뜻으로 묶었던 그것은 우리축구의 질적 성장이라는 측면도 물론 있겠지만 투지와 팀웍의 승리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러므로 몰디브전의 실패는 감독의 지적대로 '정신력의 부족'이 원인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엉뚱하지만 근본적인 문제를 제기해 보자. '축구를 잘해야만 하는가?' 우리 사회에 뿌리깊은 병폐는 순위 컴플렉스가 아닌가 한다. 모든 것을 1등해야하는 팔방미인, 또는 슈퍼맨을 요구하는 것이 우리사회이다. 개인적으로는 공부도 잘해야하고, 운동도 잘해야하고, 악기도 하나쯤은 다룰줄 알아야하고, 영어회화에 능통해야하며, 상식이 풍부해야하고, 한자도 좀 알아야한다. 이쯤이면 '슈퍼, 울트라, 캡숑, 짱맨'이 아니면 도저히 불가능하다.
  이제 우리 사회로 이것을 확대해보자. 축구는 월드컵 4강 정도, 야구는 적어도 메이저리그급은 되어야하고, 올림픽에서는 최소한 10등안에는 들어야한다(올림픽은 국가 총 순위를 내지 않는데도...). 기업은 세계 100대 기업안에 몇개나 들어가는가가 관심사항이며, 자동차, 전자, 제철, 선박 등등 웬만한 공업분야에서는 세계적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 노벨상도 몇명쯤은 타야하고, 프로골프, 음악, 미술 등등...
  작년 세계 최대의 부호는 스웨덴의 '이케아'라는 가구회사의 회장이라고 한다. 마이크로 소프트의 빌 게이츠를 제쳤으니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는데, 그렇다면 스웨덴이란 나라는 어떤 나라인가? 인구가 겨우 900만명 정도이며, 철광석을 좀 가지고 있을 뿐 경지도 적고, 기후환경도 썩 좋지 않은 북유럽에 자리잡은 나라이다. 더구나 그는 덩치큰 자동차, 석유화학, 제철, 조선같은 공업이 아닌 가구회사의 회장이라니... 스웨덴은 기후, 지형적 특징상 다른 온대지방 국가에 비해 삼림이 발달한 나라이다. 몰론 열대림보다는 가구용재로서의 가치는 떨어지겠지만 아마 오래전부터 나무를 활용하는 일이 많았을 것이고 이것이 현대적으로 발전한 것이 가구공업이 아닐까 생각된다. 바이킹의 후손인 노르웨이 사람들이 세계적인 해운국가를 이룬것 처럼.
  무언가 집중점이 있다는 것, 자기 적성과 현실에 맞는 것에 집중한다는 것은 다른 면으로보면 다른 사람이 쉽게 따라올 수 없는 분야를 앞서가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따라서 모든 것을 잘하기 위한 시도는 거꾸로 모든 것에서 최고에 자리에 오를 수 없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 김덕수는 누가 뭐래도 세계최고의 장구 연주가가 아닌가? 순위 컴플렉스와 모든 것에 대한 집착은 스포츠에서도 '엘리트 체육'이라는 문제점을 일으켰다. 올림픽 선수중에는 다양한 직업을 가진 아마추어 선수들이 출전한다는 것은 중계방송을 열심히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는 사실이다. 자신에 맞는 운동을 열심히 하다가 어느 수준에 올라 올림픽에도 나오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못하다면 또 다른 길을 가면 그만이다. 죽으나 사나 초등학교때부터 한가지 운동에만 전력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현실과는 매우 동떨어진 사실이다. 열심히해서 그나마 프로 세계에서 대접을 받으면 성공한 인생이지만, 성공한 인생의 이면에 있는 수많은 중도탈락자들의 인생은 어떻게 되는가?
  엘리트 체육의 수혜자라고 볼 수 있는 국가대표급 선수들은 어쩌면 많은 기득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볼 수 있다. 이미 프로세계에서 그만한 대접을 받고있다. 돈으로 평가되는 세계에 젖어있는 사람들에게 팀웍을 요구하는 것은 어쩌면 무리한 요구인지도 모른다. 천민자본주의적 속성을 고스란히 가지고있는 것이 프로스포츠의 세계이다. 거창하게 말하면 '자본을 민족을 초월한다'고 했던가? 이런 속성을 너무나 많이 정확하게 지니고 있는 선수들에게 국가의 명예를 위한 팀웍에 몸을 바치라는 얘기는 '삶은 호박이 이빨도 안들어가는 소리'일지도 모른다. 몰디브와 경기는 어쩌면 예정된 결과물일 수도 있다.
  좋아서 하는 운동, 그래서 어떤 상황에서도 최선을 다하는 모습, 비단 축구에만 국한된 이야기는 아니라는 생각이다. 순위라는 결과물보다는 적성과 흥미를 바탕으로 최선을 다하는 '과정'에 주목할 수 있는 모습은 개인의 각성을 통해서가 아니라 우리사회 전반의 변화, 발전을 통해서 가능한 일일 수밖에 없다. 몰디브 전에서 배웠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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