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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 해간도Ⅰ

Geotopia 2014. 1. 12. 17:08

  정말 우연히 통영의 해간도라는 작은 섬에 가보게 되었다. 가보기 전까지는 들어보지도 못했던 섬이다. 오랜 동지들인 테니스 동호회원들과 통영으로 전지훈련을 가게 되었는데 그 장소가 통영시 용남면 원평리에 있는 통영생활체육공원이었다. 라켓을 놓은지가 벌써 수 삼 년, 운동은 못하지만 마음만이라도 함께하려고 따라나섰던 터였다. 도착하고 보니 코트가 거제대교 바로 옆에 있다. 대회가 끝날 때까지 거제도라도 건너갔다올까 했는데 지도를 보니 남쪽으로 돌출된 반도를 따라 내려가면 해간도라는 조그마한 섬이 나온다. 통영시 용남면 장평리에 속한 섬이고 연육교가 있어 걸어서 건너갈 수가 있다. 그러면 거기를 다녀오자! 대회 시간은 어림잡아 세 시간, 그렇다면 시간이 대충 맞을 것도 같다. '혹시 못 맞추면 전세버스를 오라고 해야지!' 하는 음험한 계략까지 세워놓고 출발~

 

<트래킹 경로. 지도상 거리 약5km. 총 경유 시간 약 2시간45분>

 

  코트 관리사무소 문이 잠겨서 해간도 가는 길을 묻지 못했다. 시내에서 떨어진 한적한 길이라서 행인이 없는데 다행스럽게도 지나가는 사람이 한 사람 있어서 길을 물었더니 남쪽으로 내려가면 된다고는 하는데 꽤 멀다고 한다. 지도상으로 봤을 때는 그리 먼 거리는 아니므로 대충 흘려 들었다. 아마도 그 길을 걸어 가본 경험은 없을 것이므로 멀다고 느낄 수 있을 것 같다. 자동차 도로는 없고 농로만 있는데다 내가 가고자 하는 바닷가로는 길이 없으므로 당연한 반응일 것 같다. 어쨌든 방향에 대한 정보만 맞으면 되니까 소기의 목적은 달성을 했다.

  용남면 원평리는 통영시에서 거제도로 넘어가기 직전 남쪽으로 뻗어있는 반도인데 지도에서는 반도의 이름을 찾을 수가 없다. 아마 특별한 이름이 없는 모양이다. 이 반도의 동쪽에 거제도가 있고 그 사이의 해협이 바로 그 유명한 견내량(見乃梁)이다. 이순신장군이 학익진으로 일본 수군을 대파했던 엄청난 역사의 현장이다. 그리고 서쪽으로는 만이 발달하고 있다. 장평리 반도와 통영시 용남면 삼화리, 동달리 사이에 있는 이 만 역시 특별한 이름이 없다.

  코트 주변으로는 산책로가 조성되어 있지만 테니스코트는 체육공원의 가장 남쪽 끝에 있기 때문에 산책로는 테니스 코트를 종점으로 돌아 올라가도록 되어 있다. 체육공원 진입로인 포장도로 역시 테니스코트 남쪽에서 바로 끝이난다. 포장도로 끝부분부터는 시멘트 포장의 농로가 이어진다. 농로를 따라 가면 산을 넘어서 반도의 동쪽, 즉 견내량 해안을 만날 것 같다. 시멘트 길을 포기하고 해안을 따라 난 비포장길을 선택했다. 이 길은 보아하니 작은 만을 막아 농경지를 만들기 위해 조성한 방조제이다. 만약 길이 없다면 썰물이므로  해안을 따라 내려갈 생각이었다.

 

<푸른 채소가 자란다>

 

  방조제를 넘어가니 남부지역 겨울 채소의 대표 선수라고 할 수 있는 시금치 밭이 있고 마늘밭도 있다. 이곳도 고라니들이 극성을 부리는지 시금치밭에는 그물망이 둘러쳐져 있다. 그런데 길이 거기서 끝이 난다. 오른쪽으로 만의 중간을 막은 방조제 비슷한 것이 있는데 돌과 콘크리트로 쌓은 이 방조제는 바다를 완전히 막은 것이 아니라 중간이 뚫려 있다. 5~6m 정도의 넓이여서 작은 배는 드나들 수 있을 정도 인 것 같은데 이 방조제의 용도는 짐작이 잘 가지 않는다. 이 만의 바깥쪽 바다와 만나는 부분에는 이런 방조제가 하나 더 있다. 바깥쪽 방조제는 뚫려 있는 수로의 폭이 40여m에 이르고 항구(동암항)가 있어서 파도를 막아 항구로 쓰기 위한 용도임을 짐작할 수 있다.

 

<안쪽 방조제와 건너편(용남면 동달리 삼봉산)>

 

<장평리 해안에서 볼 수 있는 북북서-남남동 방향의 절리면>

 

  안타깝게도 길이 없다. 하지만 다행스럽게도 해안으로 내려서 보니 바닥이 빠지는 뻘이 아니라서 걸을 만 하다. 산 모퉁이를 돌아서니 노출된 암괴가 보이는 딱딱한 해안이라서 역시 걷는데는 큰 지장이 없다. 연안에는 갈대가 자란다. 노출된 암괴에서는 북북서-남남동 방향의 절리면을 관찰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절리면의 방향과는 다른 방향이다.

 

<퇴적암 형상을 하고 있는 해안의 암석 노두>

 

  인기척에 놀란 고라니 한 마리가 갈대숲 속에서 튀어나가는 바람에 내가 더 깜짝 놀랐다. 사진을 찍을 새도 없이 부리나케 도망을 간다. 항상 카메라를 꺼내서 들고 다녀도 이런 찬스를 잡을까 말까한데 갈대 밭은 헤매느라 그나마 가방에 넣어두었으니 그 빠른 녀석을 어떻게 담을 수 있겠는가…

  파도에 침식되어 드러난 암석 노두는 얼핏보기에 퇴적암 모양을 하고 있다. 경상계 퇴적층인가? 그런데 걸어가면서 만나는 암석들은 모양이 각양각색이다. 그다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은데도 이렇게 다양한 형태를 띠는 것은 무슨 연유일까? 지질자원연구원 자료에 의하면 이 일대는 모두 중생대 백악기에 형성된 땅인데 가장 많은 암석은 화산활동의 휴식기에 만들어진 응회암질의 역암이나 사암류들이다. 유천층군 장평리층으로 통칭이 되지만 상당히 복잡한 지질구조를 하고 있는 지역이다.

 

<*Kjpe 유천층군 장평리층 / 대표암석: 주로 암회색셰일, 담회색사암, 회록색응회질사암 및 응회질역암. *지질자원연구원>

 

<굴이 유명한 지역답게 해안에는 굴껍질이 상당히 많다>

 

<어딜가도 볼 수 있는 쓰레기들. 썪지 않는 어구들이 버려지면 이렇게 해안을 따라 쓰레기 더미가 만들어진다>

 

<층리가 없고 표면이 거친 암석이 있는 곳도 있다. 전형적인 화강암 계열은 아니지만 화성암 계열의 암석이다>

 

<습지로 변해가고 있는 작은 간척지>

 

  혹시 빠지지 않을까 걱정이 되는 뻘이 나타나기도 했지만 조심조심 들어가 보니 지나갈만 하다. 작은 개천이 유입한 갯골의 상류쪽에는 석축을 쌓아 만든 작은 간척지가 있다. 한 때는 어엿한 논으로 주민들에게 소중한 식량을 제공해주었던 것이 틀림없는 논인데 지금은 키가 큰 잡초들이 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수분이 풍부하고 땅이 좋으니 풀이 얼마나 마음껏 자랐겠는가. 과거에는 이런 소규모의 간척지들을 조성하여 땅을 확보했었지만 지금은 버려진 땅이 되었다. 염생습지였던 이 땅들은 간척후에 방치되면서 자연스럽게 담수 습지로 변해가고 있다. 여름이라면 엄두가 안났겠지만 풀이 마르고 뱀이나 곤충이 없는 겨울철이라서 억새풀이 빽빽하게 자라고 있는 습지에 들어가 볼 수 있다.

  풀숲을 헤치고 언덕에 올라 보니 각각 한 마리와 두 마리의 새끼를 낳은 어미 염소 두 마리가 마른 풀을 뜯고 있다가 깜짝 놀라 달아난다. 안타까운 것은 줄이 매어 있어서 멀리 도망을 갈래야 갈 수가 없다. 새끼를 거느린 어미로서의 경계의 눈빛을 읽을 수 있는데 철부지 새끼들을 두고는 줄이 풀려 있다고 해도 그냥 갈 수가 없다는 표정이다. 자유로운 새끼들도 제 어미가 도망을 못가니 그 주변을 맴돌뿐이다. 만약 내가 포식자라면 저 어미는 얼마나 가슴이 아플까? 줄에 묶여 새끼를 데리고 도망을 갈 수도 없고 새끼를 보호할 힘도 없으니… 자본에 묶여 사는 우리네를 보는 것 같아 가슴이 아프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 속에서 새끼들에게 그 굴레를 넘겨줘야 하는 나나 저 어미 염소나 무엇이 다를까? '걱정마라 난 너를 잡아갈 포식자가 아니란다' 최대한 빠르게 녀석들의 영토를 벗어난다.

 

<두번째 방조제에서. 양식장인 듯 배가 천천히 흘러 가면서 작업을 한다>

 

  길이 없는 갯벌이 얼마나 이어질까 조금 걱정이 되긴 했었는데 의외로 쉽게 포장도로에 올라설 수가 있다. 두번째 방조제를 만나면서 30여분 만에 갯가를 벗어날 수 있게 된 것이다. 두번째 방조제 건너편에는 작은 항구가 있고 방조제 밖의 잔잔한 바다에서는 어선 한 척이 바닷물의 흐름에 몸을 맡긴 채 작업을 하고 있다.

 

<방조제와 건너편 마을 용남면 동달리>

 

<방조제를 따라 해조류 잔해가 많이 쌓여 있다>

 

  김이나 미역 종류는 아닌 것 같은데 누런색으로 변한 해조류가 방조제를 따라 해안에 잔뜩 쌓여 있다. 폭풍이 부는 계절이 아닌데도 왜 해조류가 떠밀려 나온 것일까? 음력으로 10일이니까 조금때를 약간 지난 시기라서 조수는 약한 시기이다. 쌓인 높이와 해초의 색깔로 보면 아마도 사리때였던 그뭄때 떠밀려 나온 모양이다.

  더불어 문명의 이기의 부산물들도 쓰레기로 떠밀려 나와 있다. 이건 정말 어떻게 해야할까? 썪지 않는 이런 쓰레기들은 버리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는 것일까, 아니면 만드는 사람에게 책임이 있는 것일까? 버리지 않아야 옳겠지만 무조건 만들어 팔아버리고 나면 모든 책임에서 벗어나는 것도 분명 문제이다. 썪는 용기들을 만드는 노력이라든가, 아니면 적어도 쓰레기를 수거하기 위한 기금을 의무적으로 납부하는 제도 같은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지구의 다섯 개 대양의 한 가운데가 모두 쓰레기 섬으로 변해가고 있는 안타까운 현실을 앞에 두고도 그것이 주인이 없는 바다이므로 누구도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지 않는다. 문제를 단순화시켜보면 원인을 제공한 자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방조제 끝부분의 암석은 표면이 고운 화성암질이다>

 

<응회암질에 가까운 노두>

 

  멀리 해간도 연육교가 보인다. 주황색과 흰색으로 전형적인 통영의 색을 하고 있다. 흰색의 벽과 붉은 계열의 지붕은 통영의 색이다. 강제한 적은 없지만 일종의 지역 이미지 메이킹이 자발적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다리도 그런 색깔로 장식을 하니 푸른 바다와 어울려 나름 분위기가 있다.

  길 옆으로는 아담한 팬션이 자리를 잡고 있는데 은은한 음악이 들려온다. 천안은 춥고 눈까지 내린다는 소식을 아내에게 들었는데 여긴 양지바른 담벼락 밑에 앉아서 한가롭게 지나가는 이방인을 바라보는 노인도 있다. 적어도 몇 달 전에 버려졌음을 의미하는 덩쿨식물이 기계의 절반을 감싸고 있는 상태로 오토바이가 길 옆에 버려져 있다. 덩지큰 농기계가 농토 한 구석에 버려져 있는 풍경은 여러번 봤지만 오토바이가, 그것도 대로변에 버려진 것은 처음보는 것 같다. 주인이 분명히 있을테고 크기도 크지 않은데 어떻게 저 지경이 되었을까? 사진을 한 장 찍으려다 담벼락 아래 노인과 눈이 마주쳐 참는다.

 

<주황색과 흰색으로 장식된 해간도 연육교>

 

  해간도 연육교는 의외로 높이도 높지 않고 현수교도 아니다. 바다의 깊이가 얕아서 아마도 큰 배들은 그 아래를 지날 일이 없기 때문에 굳이 교각을 높게 만들지 않은 것 같다. 물 때를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내가 지나는 시각에는 견내량쪽으로 물이 흘러나가는데 얕은 여울을 지나는 강물같은 느낌이 든다.

 

<견내량쪽으로 빠져나가는 조류>

 

<해간도 연육교에서 바라본 거제대교와 견내량>

 

<해간도 연육교에서 바라본 통영쪽>

 

<굴껍질로 덮여 있는 해간도 북서쪽 해안>

 

  다리를 건너자마자 오른쪽으로 해변에 진입했다. 파도가 약한 육지쪽 해안인 이곳에는 백사장이 발달한다. 그런데 백사장의 가장 윗부분에는 굴껍질이 두껍게 쌓여있다. 시간이 지나 이것들이 부서져서 미립질로 변하면 패각사(貝殼沙)가 될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많은 양이 쌓여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항상 이렇게 공급되는 것이 아니라 최근에 급격하게 많이 공급되었다는 의미 아닐까? 등산화를 신고 있으므로 걷는데 불편이 없지만 여름까지 이 상태가 계속된다면 해수욕장으로는 활용이 불가능하겠다.

  해안의 퇴적물들은 보통 육상에서 공급되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산호해안처럼 바다에서 물질이 공급되는 경우도 있다. 이곳의 경우도 바다에서 물질이 공급이 된 예라고 볼 수 있다. 자연현상엔 항상 예외가 있어서 한 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경우가 많다. 그러므로 '해안 퇴적물질은 육상에서 공급된다'고 함부로 정의해서는 안된다. 아이들은 간명한 정의를 요구하지만 실제로 그렇게 간명하게 정의되지 않는 것이 의외로 많다. 교과서의 함정인 것이다. 그래서 교사는 교과서에 집착하다가 스스로 지식을 한정하면서 자신을 교과서에 맞춰가는 오류를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범하고 마는 경우가 많다.

 

<백사장의 안쪽에도 많은 바다 쓰레기가 쌓여 있어서 가슴이 답답하다>

 

<파도에 의해 무너진 축대>

 

  해안에 쌓은 돌축대가 무너진 곳이 두어 군데 있다. 좀 더 해안을 넓게 이용할 욕심으로 축대를 쌓았을테지만 자연은 간섭하지 않으면 이렇게 스스로 복원을 한다. 머지않아 주민들은 다시 축대를 보강하겠지만 목책 등 다른 대안을 강구해볼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응회암층>

 

  백사장의 끝부분 곧부리에 드러난 암석노두는 응회암으로 보인다. 층구조가 뚜렷하고 입자의 크기가 불규칙한 화산쇄설물처럼 보인다. 이 좁은 지역에서 어떻게 이렇게 다양한 종류의 암석이 나타난단 말인가?

 

 <굴껍질과 함께 해조류가 일정한 간격으로 띠를 이루며 쌓여있다>

 

  멀리서 봤을 때 한적하고 평화로와 보였던 백사장이 가까이에서 보니 정말 정신이 없다. 쓰레기에, 조개껍질에, 무너지 축대에, 그리고 띠를 이루고 쌓여 있는 해조류까지… 공부할 꺼리가 참 많은 해안이다.

 

<북쪽 백사장에서 바라본 연육교. 파란 바다와 주황색, 흰색이 어울려 독특한 분위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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