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아산의 지리환경/산지(천안)

태조산-편마암과 돌탑들

Geotopia 2013. 10. 6. 21:23

▶언제: 2013년 10월 6일(일)

 

  우연치 않게 각원사 좌불상에 가보게 되었다. 1977년에 조성되었으므로 올해로 서른일곱 해 째이니 우리나라의 다른 불상에 비하면 유서가 깊은 불상은 아니다. 그렇지만 그 규모가 엄청나게 커서 천안의 표상 중 하나가 되었다. 불자가 아니니 기도할 일도 없는데 불상을 찬찬히 뜯어보게 된 것은 사진을 찍기 위해서였다. 표정이 전체적으로 근엄한데 눈 끝이 날카롭게 처리되어 약간 무섭게도 느껴진다. 최근에 조성되는 불상들은 대체로 이런 모습들을 하고 있는 것 같다. 불상의 모습도 시대적 상황을 반영하는 것이라면 오늘날의 지도자들의 이미지는 '근엄' 쪽인 모양이다.

 

 

  사람들이 심심치 않을 만큼 계속해서 올라오는데 여늬 절과 다른 점이라면 나처럼 그냥 구경하는 부류는 거의 없고 대부분 절을 하거나 불상 주변을 탑돌이 하듯이 도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는 것이다. 절들이 대부분 유서 깊은 관광지이기 때문에 참배객 보다는 관광객이 많은 것에 비해 이 절은 조성 연대가 길지 않아 관광지 보다는 기도처로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인 것 같다. 이 불상의 정식 이름은 '통일기원청동대불'인데 통일을 기원하는 사람들이 이렇게 많단 말인가? 어쩌면 개인의 소원 중에는 통일이라는 대업이 완수되면 보다 쉽게 해결이 될 수 있는 것도 있을 것이다.

 

<각원사 뒷편에는 등산로를 따라 기도처가 조성되어 있다>

 

  '무아에 동산'

  칠성전 뒷편으로 나 있는 등산로(좌불상 뒷쪽으로 나 있는 등산로와도 만난다)를 따라 올라가다 보면 이런 기념비가 서 있다. 아마도 기금을 낸 사람들의 명단인 것 같은데 재미있는 것은 비문의 전부가 그 이름들이고 비문의 건립 취지는 비의 기단에 써있다는 점이다. 글귀를 보아하니 기도하는 등산로인 셈인데 제목이 '무아에동산'이다. 불교 관련 지식이 부족해서 '무아에'가 불교 용어인지, 아니면 '무아의'의 오기인지는 알 수가 없다.

 

 <등산로가 시작되는 곳-돌탑들이 줄을 서 있다>

 

  등산로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면서 바로 돌탑들이 서 있다. 오른쪽의 돌탑들은 아마도 누군가에 의해 무너진 것 같다. 무너진 돌탑은 주위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데 절의 경내와 거의 맞닿아 있는 이곳에서도 무너진 자취를 보니 불자는 아니지만 기분이 씁쓸하다.

 

<중턱에 이르면 크고 작은 돌탑들이 즐비하다>

 

  올라가면서 점점 돌탑들이 많아진다. 마이산 돌탑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오솔길을 따라 서있는 돌탑들은 나름 독특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내 관심사는 돌의 종류이다. 대부분 모양도 거칠고 편리구조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볼 때 편마암질의 바위인 것 같다. 태조산의 서쪽 부분은 당연히 화강암질일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내 생각이 틀렸던 것 같다. 사실 암석의 경계선을 칼로 자르듯 정확히 긋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각원사 주변의 지질구조: PCEs 운모편암, PCEbgn 호상흑운모편마암, btgn 천안편마암, Jlgr 우백질화강암 *자료: 한국지질자원연구원>

 

<너럭바위 위의 불상은 머리와 팔 접합수술을 받았다>

 

  너럭바위 위에 작은 불상이 서 있는데 돌탑들과는 달리 인공적인 느낌이 들어서 그런지 이 곳과는 잘 안 어울리는 느낌이 든다. 그런데 하얀 빛깔의 불상에 이끼가 끼었다. 불상의 전체적인 퇴색 정도로 보면 조성된지 얼마되지 않은 것 같은데 벌써 이끼가? 가까이 가보니, 왠걸! 그것은 이끼가 아니고 거무튀튀한 접착제였던 것이었던 것이었다… 헐~

  사연을 알 수는 없으나 불상의 목과 오른쪽 팔을 접합수술을 한 것이다.

 

<태조산은 편마암질 암석과 화강암질 암석이 경계를 이루는 곳이다. 이 일대는 편마암질의 암석이 대부분이다>

 

  불상이 안치된 너럭바위는 전형적인 편마암의 모습을 띠고 있다. 화강암질로 이루어진 지역은 자잘한 암설이 잘 만들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돌탑을 조성하기가 어렵다. 그러니까 이 일대의 돌탑들은 지질구조와 연결시킨다면 편마암의 산물이라고 볼 수 있다.

 

<각이지고 크기가 다양한 편마암질 암편들이 돌탑의 재료로 쓰였다>

 

<숲 속 곳곳에 크고 작은 돌탑들이 자리를 잡고 있다>

 

  올라가다 보니 어떤 사람이 돌탑들 앞에서 양 손을 모으고 기도를 하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길이 그 사람의 앞으로 나 있지만 왠지 기도를 방해할 것 같아 뒷편으로 돌아서 올라갔다. 기도의 대상이 무엇이든 간절한 마음은 본질적으로 똑같다는 것이 내 생각이다. 즉, 기도의 대상이 기도하는 사람의 간절한 바램을 들어준다기 보다는 기도를 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신뢰감과 자신감이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관음보살 왼쪽의 불상은 삼지창 같은 것을 들고 있다>

 

  만만치 않은 급경사면이 이어지는데 정상 능선 바로 아래쪽에 커다란 암벽이 나타난다. 암석을 살펴볼 생각으로 올라갔는데 암벽에는 마애불이 새겨져 있다. 가운데 관음보살상을 중심으로 양쪽에 사천왕상 비슷한 조상이 돋을새김으로 새겨져 있다. 그런데 암벽이 편마암질이기 때문에 마애불을 만들기에는 적당하지 않아 보인다. 표면이 고르지 못하고 색깔도 일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는 순간 선운산 마애불이 떠오른다. 갑오농민전쟁 당시 배꼽에 비기(秘記)를 숨겨두었었다는 그 불상은 크기가 엄청나지만 정교하지는 않다. 바위가 중생대 화산암질이기 때문에 표면이 고르지 않고 무늬가 많이 들어있어서 깔끔한 모습을 만들어 낼 수가 없기 때문이다.

  또 한 가지 비슷한 점은 양쪽의 불상이 칼, 또는 삼지창 같은 것을 들고 있고 약간 무서운 모습을 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선운산 마애불은 후삼국시대 때 조성된 불상으로 당시 각 지역에 할거하던 호족들이 자신의 권위를 강조할 목적으로 크면서도 약간 무서운 모습의 불상을 조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이 불상도 그때 쯤에 조성된 것일까?

 

<관음보살상> 

 

  반면에 가운데의 관음보살상은 서산마애삼존불상을 닮았다. 백제의 미소로 일컬어지는 서산마애삼존불은 인자한 미소가 일품이다. 이 불상들은 대체 언제쯤 조성된 것일까? 만약 백제시대나 후삼국 시대에 조성되었다면 국보는 아니어도 적어도 보물 정도는 되어야 상식적으로 옳다. 마침 기도를 마치고 산에 오르려고 하는 사람이 있어서 혹시 언제 만들어졌는지 아느냐고 물었더니 각원사를 세우기 이전부터 있었다는 스님의 말씀을 들었노라는 기대 이상의 대답이 돌아온다.

  하지만 집에 돌아와서 인터넷 검색을 해보니 마애불은 1987년에 조성되었고 좌우의 신장상은 그 이후에 조성되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그 등산객이 알려준 정보와는 달리 각원사가 세워진 후 10여 년이나 지난 다음에 조성된 불상인 것이다. 주인공은 가운데의 관음보살이고 좌우의 무서운 모습의 조상은 일반 사찰의 입구에 있는 금강역사인 것이었다. 최근에 조성한 불상치고는 기법이 상당히 고풍(?)스럽다 보니 혼자서 한 편의 소설을 쓴 것이다.

 

<인공으로 굴착한 것으로 보이는 굴안에 물이 고여있다> 

 

  관음보살상 아래에는 제법 깊은 굴이 있는데 물이 가득 고여있고 맑은 물 속에는 조그만 올챙이들이 헤엄을 치고 있다. 일반 올챙이에 비해 크기가 훨씬 작은 이 올챙이들은 이 가을까지 올챙이를 못 벗어나고 있으니 언제 개구리가 된단 말인가?

 

<절리면>

 

   왼쪽 나한상의 왼쪽으로는 끝이 날카로운 능선을 이루고 있는 절리면을 관찰할 수 있다. 나침반을 가지고 오지 않아서 정확한 방향을 알 수는 없지만 전체적인 방향은 남-북 방향이다. 전형적인 방향인 북동-남서 방향인지는 다음 번에 확인해 봐야겠다.

 

<마애불상에서 바라본 안서동 단국대학교 일대>

 

  마애불상의 반대쪽으로 돌아서면 숲 사이로 안서호 일대가 보인다. 숲에 가려 산 아래가 보이지 않는 것이 보통인데 이곳은 용케 구멍이 뚫려서 산 아래 경관이 잘 보이는 것이다. 날씨가 좋지 않아서 경치는 별로다.

 

<이런 굴들이 여러 개가 있다. 천연동굴은 아닌 것 같다>

 

  마애불상의 위쪽으로 하늘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마애불의 위치는 정상 능선의 바로 아래쯤인데 조금 더 올라가다 보니 또 굴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제법 깊은데 안에 날파리 같은 벌레들이 많아서 들어가 볼 엄두는 나지 않는다. 전에 만일사 계곡쪽으로 내려올 때도 이런 모양의 굴들을 본 적이 있다. 어떤 이유로 굴착을 한 굴인 것 같은데 확인을 해보지는 못했지만 일설에 의하면 금을 캐기 위해 일제강점기에 판 굴이라고 한다.

 

<다람쥐 먹이로 적당한 쥐밤>

 

  능선에 올라서 보니 등산로 안내 표지판이 서 있는데 왼쪽으로는 성거산, 오른쪽으로는 태조산이다. 성거산을 갈 때 지나쳤던 표지판인데 갑자기 마주치니까 낯설다. 왼쪽 성거산으로 가볼까, 오른쪽 태조산으로 가볼까 잠깐 망설이다가 태조산으로 방향을 잡았다. 컨디션이 약간 좋지 않은 느낌이 들어서 무의식중에 조금 쉬운 쪽을 선택한 것 같다.

  태조산을 향해 가다보니 길에 작은 쥐밤이 떨어져 있다. 인공이 전혀 개입되지 않은 자연산이 분명하지만 크기가 워낙 작다보니 어떤 등산객도 눈길을 주지 않았던 것 같다. 다행스럽다. 사람의 눈길을 끌었다면 어떻게 이렇게 멀쩡하게 남아 있을 수가 있었겠는가? 사진을 한 장 찍고 다람쥐 먹이로 돌려주었다.

  막걸리를 파는 태조산 갈림길(구름다리에서 올라오는 길과 태조산 방면, 성거산 방면 길이 만나는 삼거리)까지 갔는데 왠지 더 가기가 싫다. 아내가 그만 가자고 했던 것이 직접적인 이유였지만 나도 사실은 태조산 정상까지 가고 싶은 생각이 들지 않았다. 태조산은 항상 그렇다. 정상에 나무가 많아서 정상에 올라간 맛이 나질 않는 것이 나에겐 큰 원인이다. 시간이 일러서 막걸리도 별로다. 그냥 되돌아 가기로 한다.

 

<능선에서 벗어나 마애관음상으로 내려 가다보면 이런 화강암질 편마암이 나타난다>

 

  아까 능선에 올라섰던 곳 바로 앞에 내려가는 길이 또 있다. 등산로 옆에 넙적한 바위에 '마애불상'이라는 거친 글씨가 흰색 락카로 써 있기 때문에 알 수 있는 길이다. 마애불상에서 왼쪽으로 나가면 아까 올라왔던 곳이 나오고, 오른쪽으로 올라가면 이곳이 나오는 것이다.

  경사면이 시작되는 곳에 표면이 풍화되어 썩은 돌(석비레)이 된 바위가 서 있다. 편리구조가 잘 나타나는 편마암인데 풍화물의 입자가 굵고 검은색과 황토색, 흰색 등이 마구 섞여 있는 겉 모양은 화강암을 닮았다.

 

<마애관음불상 옆에도 제법 깊은 동굴이 있다>

 

  급경사면을 지나 다시 마애불상까지 내려왔다. 마애불상 앞에는 두 명의 중년 여인이 기도를 올리고 있다. 자꾸 보니까 이젠 특이하기 보다는 일상적인 풍경으로 느껴진다. 마애불상이 보이는 곳 쯤에 또 굴이 있다. 크기는 앞에 봤던 굴들보다 훨씬 크다.

 

<이 바위에 3기의 마애불이 조성되어 있다>

 

<마애불상 위쪽에도 작은 동굴이 있고 산신에 치성을 드리는 공간이 있다>

 

  좀 전에 지나간 곳인데도 다시 보니 또 다른 것이 있다. 왼쪽 나한상과 가운데 관음보살상 사이에 작은 굴이 또 있는 것이다. 올라가기 어려운 위치인데 가만보니 거칠지만 계단이 만들어져 있다. 그렇다면 뭔가가 또 있다는 얘기다. 올라가 보니 산신을 모시는 곳이다. 인터넷 자료를 뒤지다 보니 불상을 조성할 당시 산신이 석공의 꿈에 나타났던 일이 있었고 그 때 산신에게 제를 올렸다고 하는데 그곳이 아닌가 싶다.

 

<편마암질 암편들로 만들어진 돌탑들>

 

<누군가는 이런 동자상도 돌탑 위에 안치해 놓았는데 자연물 속의 인공물은 좀 생뚱맞은 느낌이 든다>

 

<편리구조와 휘어진 지층이 잘 드러난다>

 

<편리구조를 보이는 편마암>

 

<너럭바위 위에 자리잡은 탑 역시 돌탑과는 달리 자연과 잘 어울리지 않는 느낌이 든다>

 

<각원사 칠성전의 일곱 신선상>

 

  대웅전 옆에 칠성전이 있다. 산신각이나 칠성각 등은 우리나라 절에만 있는 독특한 공간으로 대개는 절의 뒷쪽에 절과는 약간 떨어진 곳에 있는 것이 보통이다. 하지만 각원사의 칠성전은 대웅전과 바로 붙어 있다. 안에는 칠성을 상징하는 듯한 일곱 신선상이 있다. 본래 칠성은 북두칠성에서 온 것이다.

 

 

<칠성전과 칠성을 그린 그림>

 

 

<각원사 대웅전 앞에서>

 

  각원사의 대웅전은 그 크기가 매우 크다. 안내문에는 불국사 다음으로 크다고 되어 있는데 내가 보기에는 더 큰 것 같다. 원래 큰 절이기도 했겠지만 경주 문화권이 국가적으로 개발이 되던 시기에 불국사는 엄청난 성장을 했다. 대웅전 뿐만 아니라 불국사에는 비로전, 관음전, 극락전, 나한전 등 절에서 볼 수 있는 모든 전각과 부처가 모두 있기 때문에 더욱 크게 느껴진다. 하지만 단일 전각의 크기로는 각원사 대웅전이 더 크지 않을까 싶은 것이 내 느낌이다. 오래된 절들은 건축 기법 상 기둥이 없는 큰 공간을 만들어 내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에 대웅전의 크기에 제한이 있었던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이 문외한인 내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