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문지리/인구&가옥&취락

산지촌 : 전북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

Geotopia 2012. 9. 24. 15:05

  전북 남원시 산내면 중황리는 지리산지 북부에 자리 잡은 산간분지에 자리를 잡은 산지촌락이다. 이 분지는 남쪽 지리산 자락의 삼정산(1,182m)을 필두로 바래봉(1,167m)-덕두산(1,150m)-삼봉산(1186.7m)-백운산(902.7m)으로 이어지는 산으로 둘러싸여 있다. 분지의 한가운데로는 람천이 흐르고 있으며 산내면 소재지와 실상사가 분지 중심에 자리를 잡고 있다.

 

<중황리의 위치  *지도: Daum지도(편집)>

 

  중황리는 분지의 중심에서 북동쪽으로 2~3km 정도 떨어져 있으며 삼봉산의 남록, 해발 350m~600m 사이에 위치한다. 사면 경사가 심하여 평지가 적기 때문에 마을이 발달하기에 적당한 조건은 아니지만 편마암 산지 특유의 비교적 풍부한 수자원을 바탕으로 일찍부터 마을이 발달했다.

  중황리가 본격적으로 마을로 성장한 시기는 조선 중기 임진왜란 이후이다. 파평윤씨(坡平尹氏)家가 전란을 피해 처음 정착한 이래 계곡 주변의 산지를 지속적으로 개간하면서 마을을 확대해 왔다. 정착 초기에는 오랫동안 화전이 중심이었으나 19세기 후반부터 점차 정착 농경지(熟田)로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정착 농경지화가 시작되었을 무렵에는 밭이 중심이었지만 이 중에서 조건이 좋은 곳들이 논으로 전환되기 시작하여 지금은 꽤 많은 논들이 계곡 주변에 자리를 잡고 있다.

 

<함양군 휴천면 창원리로 넘어가는 등구재에서 바라본 중황리. 개울이 가운데로 흐르고 양쪽에 계단식으로 개간된 논이 있다>

 

  경사가 심한 땅이기 때문에 논은 계단식이 불가피했다. 땅을 일구는 과정에서 나오는 돌과 주변 산지에서 운반해온 돌로 둑을 쌓고 그 안쪽을 자갈과 흙으로 메워 논을 만들었다. 그러나 워낙 경사도가 커서 논의 규모는 상당히 작을 수 밖에 없었다. 지금은 제법 큰 규모의 논이 대부분인데 이런 논들이 등장한 것은 기계를 이용하는 것이 가능해진 1960년대 이후의 일이다. 작은 규모의 논을 합쳐서 만들었는데 이를 위해서는 둑을 훨씬 높고 튼튼하게 만들어야만 했기 때문이다.

 

<높고 튼튼한 둑을 쌓는 것이 가능해지면서 논의 규모가 확대되었다>

  경지율이 낮고 따라서 인구부양력이 낮기 때문에 가옥의 밀집도가 높은 대규모 집촌으로 성장하기는 어려운 조건이었다. 또한 가옥 주변에 충분한 경지를 확보하기 어려웠으므로 경지와의 거리도 평균적으로 멀 수 밖에 없었다. 정착 이후 가구 수가 증가 하면서 점차 개간지가 불규칙하게 확대되었기 때문에 이런 현상은 더욱 심해졌다.

 

<산지촌락임에도 비교적 가옥의 밀집도가 높은 집촌을 이루고 있다>

 

  전통적인 농업 형태는 1980년대 이후 상품작물 재배가 확대되면서 많은 변화가 일어났다. 우리나라 전체적인 사회-경제적 변화와도 맞물리지만 특히 88올림픽고속도로가 인근으로 지나가게 된 것이 마을 성격 변화의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2008년 지리산길이 개통되면서 마을의 성격은 더욱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하였다. 마을을 통과하는 관광객이 증가하면서 상업기능이 확대되기 시작한 것이다. 아직은 대규모 시설 보다는 원래의 모습을 유지한 채로 주로 민박과 식당 중심의 기능 변화를 경험하고 있다.

<등구재 아래의 식당과 민박>

<개울을 넘는 친환경적인 다리>

<토속적인 맛이 일품인 중황리식 식단>

 

<등구령 고개 아래의 식당>

 

<산에서 채취한 다양한 약초로 담근 술>

<주인의 센스와 토속적인 멋이 어우러진 뒷간>

<재래식 뒷간이지만 신기하게도 냄새가 거의 나지 않는다. 비결은 앞의 마대와 뒷편 스티로폼 통에 담긴 왕겨인 듯>

<중황리에서 함양으로 넘어가는 등구령>

 

  만약 이보다 더한 변화가 일어난다면 마을의 성격은 더욱 급속하게 변화하게 될 것이다. 예를 들면 대자본이 침투하여 대규모 시설 투자가 이루어지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런 현상은 급격하게 관광지화가 진행된 지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예로 지역의 성격 변화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우가 많다.

  남한의 육지부에서 가장 높은 산인 지리산은 산을 좋아하는 모든 사람들의 로망이다. 그 둘레를 도는 지리산길은 당연히 상품성이 높은 관광자원이다. '지속 가능한 개발'을 들먹이지 않더라도 지리산길이 영원히 남는 방법은 '지리산 다움'을 잘 유지하는 것이다. 대규모 시설투자와 이에 따른 급격한 경관 및 지역 성격의 변화는 아니란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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