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북정맥/선낭고개~금강하구

선낭고개~봉남IC교: 전국에서 유일한 하천 분수계

Geotopia 2024. 2. 3. 23:11

▣ 무려 7년만이다!

  묵은 사진을 꺼내어 파일 정보를 보고서야 햇수로 7년 전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세월이 화살같다'는 말이 실감난다. 금북으로 간 세월은 '흐르는 물(流水)'로 말하기에는 어림도 없다. 정말 엊그제 같은데 벌써 7년 전이라니··· 금강하구로 가는 코스와 안흥진 코스를 번갈아 가면서 그럭저럭 잘 타다가 2018년에 무릎 수술을 하면서 금북을 멀리했었다. 서천군에 들어섰지만 하루에 주파하기에는 어려울 만큼 남겨두었던 터라 1박2일을 해야 한다는 생각에 마땅한 날을 못잡고 차일피일 하다가 이 지경이 된 것이다.

이틀 동안 걸은 거리 27.8km

  만시지탄이지만  뒤늦게라도 마무리를 할 엄두를 내었으니 그나마 다행이다. 오랫만에 지도를 띄우고 코스를 찍어보니 예상거리가 약 18km가 나온다. 이것도 오랫만에 하는 일이라서 그랬는지 끝내고 나서 GPS 데이타를 보니 무려 10km 차이가 났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계획이 어디 있단 말인가! 어딘가에서 실수를 했을텐데 다시 점검해볼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니. 총기 좋으신 근부쌤께서 '28km 남았다고 했었다'는 말씀을 여러 번 하셨지만 한 달 전쯤에 지도에서 계산해본 18km만이 화강암 덩어리에 박힌 차돌마냥 움직일 줄을 모른다. 이게 치매가 아니고 뭐란 말인가 ··· 옛 기억은 휘발되어 흔적도 없고 며칠 전에 찾아본 18km만을 굳게 믿고 고집을 부렸으니;; 

  그래도 산이 높지 않아서 그랬는지 그 말도 안 되는 거리 차이를 크게 느끼지 못했다. 둘째날 오후에 약간 지치는 느낌이 없지 않았지만. 어쨌든 첫째 날에 최대한 멀리까지 가야 한다는 생각에 최소한 남산은 넘어가는 것으로 일정을 잡았다. 그 덕분에 첫날은 무려 17.3km를 강행군했다. 신기하게도 금북정맥 종주 중 이 거리는 처음이었는데도, 심지어 금북이라고는 생전 처음인 아내조차도(마지막 남산 구간부터는 힘들어 하기는 했지만) 큰 무리없이 완주를 했다.

원수리 작은 동산을 종점으로

  금북의 종점은 금강의 하구 끝에 있는 전망산(56m)이 상징적으로 옳겠지만 장항읍 내부는 분수계가 모호해서 뚜렷하게 분수계를 알아볼 수 있는 원수리 작은 봉우리를 종점으로 잡았다. 금강 하구 연안에 붙어 있는 이 봉우리에서 전망산까지는 4km 정도 떨어져 있는데 마지막에 지친 몸을 이끌고 시내 구간 4km를 더 가는 것이 엄두가 안 났을뿐만 아니라 분수계를 찾아내기가 사실상 어려울 것 같아 전망산은 차로 가보기로 마음 먹었다.

*카카오맵

 

▣ 첫째날 2024.1.29(월) 선낭고개(서천읍 화성리)~장항산단북로(마서면 옥산리). 17.3km

▶경로

선낭고개(서천읍 화성리 188-3) - 태봉산 - 서해안고속도로 - 태봉산(지도에는 서해안고속도로를 사이에 두고 태봉산이 두 개가 표시되어 있다) - 자전거도로 - 오석산(127.2m) - 도로(사곡로) - 서천읍성 -  서천성당 - 도로(충절로/서천오거리 동쪽) - 4번국도(대백제로) - 남산(146.9m/동쪽에서 서쪽으로 종주) - 장항산단북로(생태통로) - 봉남IC교(마서면 옥산리)

파란색 선이 실제 경로이고 빨간색 선이 원래 금북정맥이다. 정맥을 놓친 구간이 여럿인데 실제 이동 거리는 원래 금북 경로보다 더 멀었다.

▶선낭고개 출발(09:30) 출발하자 마자 길이 보이질 않는다.

서천읍 화성2리 노인회관에 주차를 하고 출발. 이 길은 '화석로'라고 하는데 고갯마루에서 남동쪽으로 우리가 주차를 하고 걸어 올라온 화성2리 노인회관이 있다. 사진의 왼쪽에서 내려오는 작은 길로 7년전에 내려왔을 것이다. 하지만 이 일대는 완전히 처음 보는 풍경이다. 총기를 다량으로 휴대하신 근부쌤만이 '여기로 내려와서 공동체비전고등학교로 갔던 것 같다'고 말씀하신다. '중간을 빼먹은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마음 한 구석에 웅크리고 있어서 내심 불안했는데 그 말씀을 들으니 안심이 된다.
고갯마루에서 북서쪽 방향. 이 길은 4번국도를 거쳐 서해안고속도로 서천IC로 이어진다. 우리는 이 길을 타고 왔다.
출발 전 인증샷. 지난 번 이 고개를 내려왔을 때보다 한 명이 늘었다. 화면에 지도를 띄워 놓고 경로를 살피던 내 옆에서 곁눈질을 하다가 경로가 만만해 보였던지 아내가 가겠다고 나섰기 때문이다.
서쪽으로 출발. 앞에 보이는 산으로 올라가야 하는데 출발부터 길이 안 보인다. 산이 낮아서 오르기가 어렵지 않은 반면에 길을 찾기가 높은 산에 비해 훨씬 어렵다. 야산을 등산하는 사람들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더욱이 금강의 북쪽(錦北)을 흐르는 이 경로가 아닌 백월산에서 안흥진으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금북정맥'으로 알려지면서 '금북꾼'들이 이 산줄기를 찾지 않기 때문이다.

▶태봉산을 지나 서해안고속도로까지: 서해안고속도로 앞에서 길을 잃었다.

잡목 숲을 헤치고 동산 마루(지도에는 태봉산이라고 표시되어 있다. 이 산 밑으로 장항선 철도가 터널로 지나간다)를 넘어섰더니 서쪽으로 이런 풍경이 보인다. 4번 국도가 들판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그 너머로 이 일대에서 가장 높은 산인 희리산(326.2m) 줄기가 보인다.
태봉산 남쪽 산허리는 나무를 몽땅 베었다.
이런 소나무는 100살은 되었을 것 같다.
나무가 베어진 자리에 이런 어린 나무가 자리를 잡았다. 밤나무인가, 호두나무인가
석영질이 섞여있는 바위. 바위를 보기가 어렵다.
사람일까, 짐승일까? 사람이 많이 지나가는 곳이 아닌데 나무 둘레가 반들반들하다.
서해안고속도로가 보인다. 이 부근에서 처음으로 길을 잃었다.
귀한(?) 차돌 덩어리를 지나서
이 일대는 모두 선캄브리아기 편마암류
저 앞에 보이는 산줄기로 갔어야 하는데
이렇게 내려오고 말았다. 하지만 제대로 내려왔어도 서해안고속도로를 건너려면 사진에 보이는 길을 따라 내려와서 지하 통로를 이용해야만 했다.
서해안고속도로로 금북정맥이 끊어진 부분(서천읍 오석리 2-2)

▶서해안고속도로를 지나서 다른 태봉산에서 또 길을 잃었다

태봉산(서해안고속도로 남쪽에도 같은 이름의 태봉산이 카카오맵에는 표시되어 있다)으로 올라가는 길. 오랫만에 비표가 붙어있어서 반갑다. 안흥진으로 가는 경로(우리는 이 경로를 '가짜 금북'이라고 한다)에는 비표가 너무 많아서 짜증이 날 지경인데 이 '진짜 금북'에는 비표를 만나기가 어렵다. 우리도 리본을 만들어서 붙이고 다녀야 하나?
두번째로 길을 잃었다. 태봉산 정상에서 곧바로 서남쪽으로 내려갔어야 하는데(가운데 계곡 건너 산줄기) 우린 긴 능선을 따라 남남동쪽으로 내려왔다. 서천읍 화금리. 산이 낮아서 좋은 점은 길을 잃어도 되돌아 가지 않아도 된다는 점이다. 산이 낮아서 사람들이 많이 찾지 않고, 그래서 길이 없고, 그래서 길을 잃기 쉬운데, 그래서 되돌아 가지 않아도 된다.
마을길을 거슬러 올라서 원래 경로로 되돌아왔다. 화금리와 오석리를 잇는 산책로(자전거길)이 금북을 또 잘랐다. 양쪽 모두 경사가 급해서 길을 잃지 않고 제대로 왔더라도 내려오고(사진 오른쪽), 다시 올라가기가 만만치 않았겠다. 이런 곳이야말로 생태터널이 있으면 좋겠다. 더구나 올라가야할 길(사진 왼쪽)은 북사면이어서 눈도 녹지 않았다.

▶오석리에서 서천읍으로: 길을 잃어도 금북으로 다시 올라서기가 쉽다.

눈덮인 경사로를 조심조심 기어서 올랐다. 스틱도 없는(스틱질 조차 불편한 대왕초보 금북꾼)마누라님 간수하기가 신경이 쓰인다. 겨우 기어 올랐더니 또 길이 없는데 그 와중에 호랑가시나무가 눈길을 끈다. 서천이 남쪽이긴한가 보다.
11:45. 출발한지 두 시간이 지났다. 배가 많이 고프지는 않았지만 따뜻한 곳을 만난 김에 가볍게 요기를 했다. 겨울에는 김밥(우린 산행 중엔 김밥을 즐겨 먹는다)이 좋지 않았던(너무 차가워서) 기억이 있어서 오늘은 빵을 사왔다. 빵과 사과즙, 감말랭이로 빵빵하게 요기를 했다.
서천역(화금리/사진 가운데)이 보인다. 멀리 논 가운데 딴산은 고살매라고 한다.
오른쪽으로 가면 오석산(127.2m)이 나온다. 금북은 이정표의 서천여자정보고 방향으로 가야한다.
그런데 이 부근에서 또 길을 잃었다. 좀더 남쪽으로 능선을 따라 내려가야 하는데 바로 내려왔기 때문이다. 밭을 둘러싼 그물(고라니가 극성을 부려서 그물을 쳐놓은 밭이 많다)을 넘다가 천규쌤이 부상을 입는 불상사도 있었다.
사곡로가 또 한번 금북을 자른다. 서쪽(서천고등학교 앞) 방향.
동쪽(서천군청) 방향

▶서천칼국수를 찾다가 국수 체인점에서 점심을 먹었다

서천칼국수를 찾다가 이런 체인점을 고르고 말았다.

▶학교가 둘이나 들어서 있는 서천읍성

점심을 먹고 다시 출발. 서천읍성 해자를 지나 읍성 북쪽 성벽을 오른다.
서천여고. 테니스의 도시(예전에 유명했던 국가대표 유진선이 서천 출신이다)답게 테니스코트가 깔끔하다.
서천읍성 동문
동문에서 바라본 향교앞 마을
서천읍성 동문
서천읍성 동문 안내판 앞에서 열심히 공부중인 회장님
서천읍성 남쪽 성벽. 복원이 한창이다. 충청도 서해안에는 읍성이 많은데 서천에서 태안까지 모든 해안 군현에는 읍성이 있었다.

▶하천이 분수계라니! : 길산천과 판교천은 이어져 있다.

사실상 금북정맥은 이곳에서 끝이 난다. 서천읍 남쪽을 가로지르는 이 하천이 동쪽의 길산천과 서쪽의 판교천을 잇고 있기 때문이다. 분수계는 서천오거리 동쪽(서천읍성 동문에서 서천성당을 지나 한신더휴아파트(예정)로 이어지는 산줄기가 내려오는 곳)이어서 서천읍 시가지 일대의 물은 대부분 판교천(서쪽)으로 흐른다. 사진은 서천중학교 앞 근처이다.
<동여도>(19세기 중반)에는 서천읍치 남쪽을 큰 하천이 가르는 것으로 표시되어 있다. <동여도>는 <대동여지도>의 원도격인 지도이므로 <대동여지도> 역시 똑같이 표시되어 있다. 읍치의 남쪽인 지금의 장항읍 일대는 엄밀하게 말하면 백두대간과 끊어진 섬과 같다. 150여 년 전까지도 하천이 이어졌다는 것은 후빙기 퇴적으로 장항읍 일대의 수많은 섬들이 연결이 되어 육지가 되었지만 이 부근은 채 메워지지 못했다는 뜻이다. 자연 상태로 놔두면 언젠가는 메워지겠지만 이미 농경지를 만들고 인공 물길을 만들었기 때문에 앞으로 메워질 가능성은 없다. 두 하천(판교천과 길산천)의 분수계는 산줄기가 아니고 하천인 아주 희귀한(내가 알기로는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볼 수 없다) 사례이다.
이 부근이 분수계이다. 두 하천을 잇는 이 물길을 넓직한 인공수로로 고치고 있다. 생태도시 서천에 이런 '반 생태적'인 물길이 만들어지고 있다니 놀랍다. 지형 구조상 수해에 취약할 수밖에 없는 상황은 이해가 가지만 이런 하천 절벽은 뱀이나 개구리같은 파충류 뿐만 아니라 덩치 큰 고라니 같은 짐승들도 뛰어넘기 어렵다.
이 부근이 분수계이다. 뒷쪽 가장 높은 봉우리는 향교 뒷산이다. 하천 정비 공사중인 관계자에게 물이 어느쪽으로 흐르는지 물었더니 '양쪽으로 다 흘러요'라는 기대했던 답이 돌아왔다.

▶남산을 지나서

옛 장항선이 지나던 산책로에서 본 분수계 일대. 오른쪽 큰 건물은 서천군청이다.
남산 오르기 시작하면서 서천읍 방향으로 바라본 장면. 앞에 보이는 논은 후빙기 초반에는 모두 바다였을 것이다. 퇴적으로 메워졌고 지금은 경지로 개간되었다. 그래서 이 일대는 해발고도가 매우 낮아서 비가 많이 오면 물이 잘 빠지지 않는다.
화강암 덩어리를 처음 만났다.
남산 일대 지질구조
남산에서 바라본 장항읍
남산 정상(146.9m)에서 인증샷(장항읍 방향)
남산정상 서천읍 방향
남산에는 서천남산성이 있다. 서천읍치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석성이 남아있는 것이 독특하다.

 

 

서천 남산성(舒川 南山城)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encykorea.aks.ac.kr

 

남산에는 곳곳에 멧돼지 흔적이 있다. 파헤친 흙이 마르지 않은 것으로 보아 얼마 전에 지나갔음을 알 수 있다.

▶군산 중국음식점에서 저녁을 먹었다

월요일이어서 군산복집도, 장항온정집도 모두 문을 닫았다. 검색을 해보니 짬뽕이 맛있는 집으로 여기가 나왔다. 대북경. 동백대교를 건너 꽤 먼 거리를 가야했지만 모두들 맛나게 저녁을 먹었다. 잠은 장항 금강변의 럭셔리한 모텔에서 잤다.
걷쥬 기록은 16.5km. 초보 금북꾼의 대단한 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