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과 사람들/삶과 지리

도시의 숨통, 공원을 만들자

Geotopia 2021. 12. 21. 19:04

 

  ▶택지 개발: 스프롤(sprawl) 방지인가, 이윤 추구인가

  '택지 개발'

  성장하는 도시에서는 꼭 필요하다. 개인의 손에 맡겨두면 난(亂)개발이 일어날 수 있기 때문에 이를 막으려면 계획과 통제를 피할 수 없다. 급성장하는 도시에서는 특별할 것도 없는 흔한 풍경이다. '철거-평탄화 및 구획 짓기-도로와 택지 만들기'가 똑같이 진행된다. 잘만하면, 사실 웬만한 도시에서는 어지간만 하면, 많은 이윤을 남기는 황금 알을 낳는 거위다. 부산 해운대 엘시티 사업은 사업 이익이 1조가 넘는다는 설까지 있을 정도이니 이익의 크기가 상상을 초월한다.

 

  도시가 계속 커지고 있는 천안·아산에서는 특히 흔한 풍경이다. 판판하게 고른 넓은 땅에 반듯반듯하게 구획이 만들어지고 그 사이사이로 길이 놓이면 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다. 그런데 막상 건물이 들어서면 반대로 그렇게 답답할 수가 없다. 같은 곳이라고 생각이 되지 않을 정도다. 대부분 이면 도로가 2차선인데다 주차 공간이 절대 부족해서 길 양쪽을 불법 주차한 차들이 점령하고 있다. 2차선 도로 중에 남은 공간이 한 개 차선이나 될까 싶다. 똑같은 문제가 계속 되풀이 되는데도 천편일률 똑같이 반복되는 것을 보노라면 택지개발이 도시의 무질서한 확대(sprawl)를 방지하는 '공공성 추구' 보다는 최소의 투자로 최대의 이익을 도모하는 자본주의적 '이윤추구'에 더 큰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의심을 지울 수가 없다.

  ▶엄청난 땅이 몇 년째 놀고 있는 월천지구

  배방읍 월천지구, 구획정리가 끝난지 벌써 사오년이 지났다. 건물들이 시나브로 들어서고 있지만 가장 넓은 땅이 그대로 남아있다. 모양과 넓이로 보면 아파트용 땅이다. 동서270m, 남북200m으로 평으로 계산하면 16,400평이나 된다. 이 땅이 몇 년째 내버려져있다. 그 복잡한 속내를 모르긴 하지만 문외한의 거친 눈으로 보면 수지가 맞지 않기 때문으로 보인다. '천정부지'로 표현되는 아파트 값이 우리가 풀지 못하는 가장 큰 사회 문제인데 멀쩡한 아파트 부지가 놀고 있다면 뭔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수요 예측이 제대로 되지 않은 무리한 택지 개발의 결과인 셈이다.

  ▶내버려 두면 제자리로 돌아간다

  그런데,

  몇 년 사이에 이땅이 자연 상태로 돌아가고 있다. 숲이나 농지도 아니고 개발을 위해 깊이 파헤쳐서 생땅이 드러난 곳인데도 불과 몇 년 사이에 생태계가 살아나다니(파헤친 땅이므로 '살아났다'보다는 '새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이 맞겠다) 볼때마다 놀랍다.

  첫해에는 듬성듬성 풀이 자라 볼품이 없었다. 하지만 이듬해에는 점차 무성해져서 풀이 주인이 되더니, 그 다음해부터 나무가 풀을 제치고 조금씩 머리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요즘에는 제법 큼직한 나무들이 여기저기 우뚝 서있다. 배수장으로 쓰려고 만들어 놓은 저수지는 물고기만 없을 뿐 기가 막힌 천연습지가 되었다. 가끔씩 오리가 날아와서 헤엄을 친다. 이대로 조금 더 시간이 지나면 물고기도 생길 것만 같다. 지날 때마다 자연의 힘에 감탄을 하게 된다. 앙코르왓이나 마추피추가 숲으로 뒤덮여 사라졌었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감탄만 하다가 이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겨우 2~3년 만에 나무가 제법 자랐다

 

배수장으로 날아온 오리들

 

  '여기를 공원으로 만들면 어떨까?'

  ▶공원을 만들어야 하는 이유

  눈앞의 경제적 잣대로만 따지면 황당무계한 얘기 같지만 긴 안목으로 본다면 생각해볼 만한 얘기다. 공원을 만들면 좋은 점은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생태적 차원이나 시민의 권리 차원 뿐만 아니라 경제적 가치 면에서도 손해볼 일만은 아니다. '좋은 것', 또는 '유리한 것'를 넘어서서 공원을 만드는 것은 장차 ' 필요성' 차원일 수도 있다.

  * 도시의 숨통, 공원

  첫째, 도시는 숨을 쉬어야 한다. 인구밀도가 높고 온통 아스팔트와 콘크리트로 덮여 있는 우리나라 도시는 숨을 쉴 수가 없다. 특히 천안·아산은 어디에도 제대로 된 공원이 없다. 단지 천안·아산만의 문제는 아니다. 효율성을 맨 앞에 내세운 도시 개발 관행 때문에 우리나라 거의 대부분의 도시는 공원이 터무니 없이 적다.

  공원은 우선 시민의 휴식 공간이지만 더 중요한 것은 콘크리트 숲인 도시를 숨쉬게 하는 '숨통'과 같다. 열섬을 막아주고, 도시에 수분과 산소를 공급하는 역할을 하며, 지하수를 채울 뿐만 아니라, 폭우가 내릴 때는 강수 충격을 흡수하는 생태계의 숨구멍과 같다. 도시 중간 중간에 적절하게 숨구멍을 만들어 놓지 않으면 장차 도시는 질식사하고 말 것이다.

월천지구 뿐만 아니라 배방읍 일대는 공원이 절대 부족하다. 택지 사이사이에 겨우 '흉내만 낸' 공원이 빽빽한 건물들과 좁은 길을 비집고 안타깝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이곳마저 건물로 채워지고 만다면 숨쉴 곳은 아예 없어지고 말 것이다.

  * 환경을 고려하지 않은 택지 개발은 위험하다

  둘째, 자연환경을 제대로 고려하지 못한 반환경적 택지 개발이다.

  이 일대는 택지 개발 전까지는 모두 논이었다. 심지어 더 옛날로 거슬러 올라가 일제강점기까지 가면 곡교천이 지나는 냇물이었다.

 

1914년과 1963년 월천지구 일대 *조선총독부 **국립건설연구소

 

  지도를 보면 일제강점기까지 월천지구는 일부는 하천이 지나갔고, 하천 주변은 황무지이거나 논으로 쓰였다. 1963년에는 하천 흐름이 약간 바뀌어 논으로 쓰이는 곳이 늘었지만 곡교천 본류와 월천지구에서 빠져 나가는 개천이 합류하는 지점 일대는 경지로 쓰이지 못했다.

  그곳을 메워서 택지로 만든 것이다.

2021년 11월 현재 월천지구 일대 *자료: 카카오맵

 

 

  * 생태적 가치를 잃은 복개 하천이 21세기에!

  게다가 하천이 모두 복개되었다. 배방산에서 시작된 개천은 북수리 창터마을을 지나서 월천지구를 가로질러 곡교천으로 흘러든다.

  그런데?

  월천지구 초입에서 개천이 자취를 감춘다. 위 지도를 보면 하천이 그려져 있기는 하지만 실제로는 모두 복개되어 있어서 그 자취를 찾을 수가 없다. 지도에 표시되어 있기로는 월천지구를 가로질러 아파트(더샵센트로) 공사장을 관통한다. 그러나 아파트 공사장 뿐만 아니라 월천지구 안에서는 어디에도 겉으로 하천이 드러나는 곳이 단 한 곳도 없다(롯데캐슬 뒷편에 아주 조금 옛 하천의 자취가 남아 있다). 실개천이 시내를 흘러야 하는데 모두 땅 속으로 들어갔으니 생태적 가치를 완전히 잃어 버린 것이다. 서울 청개천을 비롯하여 대전 대전천 등은 복개하천을 복원을 했던 것이 오래전인데 21세기에 복개하천이라니!

  * 과거의 배후습지를 흐르는 하천

  그렇다면 어디로 갔을까? 배수용 수문이 북수로 끝에 있는 것으로 보아 북수로 밑으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북수로 양쪽으로 오수관이 지나가는 것을 봐도 그런 추측에 무게가 실린다. 또한 원래 물길의 끝(롯데캐슬 뒷쪽)에도 배수문이 설치되어 있는데 수문이 작고 흘러나오는 물의 양도 작은 반면, 북수로 끝의 수문은 크기도 크고 비가 내릴 대 흘러 나오는 양도 많다.

북수로 아래로 흘러 나오는 하천. 오른쪽은 원래 물길이었던 롯대캐슬 뒤편 수문.

 
 
 

  북수로가 설치된 해는 2007년~2012년 사이이다(월천지구 개발 계획이 검토된 때는 2007년 8월이며, 지형도에 처음 북수로가 등재된 것은 2012년이다). 이 기간에 택지가 만들어졌고 이때 하천 유로가 바뀌었다고 추정할 수 있다.

  위의 일제강점기 지도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일대는 배후습지에 해당하여 지대가 낮다. 고층 아파트를 짓기 위해 파놓은 깊이가 북수로 옆으로 흐르는 오수관보다 훨씬 낮다. 하천이 북수로 아래로 흐른다면 그 바닥의 높이는 아마 오수관과 비슷하거나 약간 낮을 것이다. 하천이 아파트 부지와 비슷한 높이에 있는 셈이다. 고층 건물을 짓기 위해서는 더욱 바닥을 깊이 파야 하는데 이 일대의 지형구조로 보면 지하수면 아래까지 팔 수밖에 없다.

  토목 기술이 발달하여 어지간한 자연적 장벽은 뛰어넘는 것이 오늘날이다. 그러나 자연재해가 임계치를 넘어서는 상황이 되면 기술은 자연을 이기지 못한다. 예를 들어 임계치를 넘어가는 폭우가 내릴 때 통제 불능 상태가 올 수 있다. 최근 연이어 일어나고 있는 KTX천안·아산역 일대 침수 사건을 보면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콘크리트와 아스팔트로 덮인 도시는 비가 내리면 고스란히 빗물을 하천으로 쏟아 붓는다. 그런데다 이곳은 하천이 땅 속으로 흐르도록 표면을 덮어 버려서 더욱 강수 충격을 흡수하기 어렵다.

▶천안-아산역의 슬픔: 아무리 바꿔도 '제자리'의 속성을 벗어나기는 어렵다.

 

 

 

천안 물 난리와 토지 공개념

▣ 하늘 아래 편안한 땅 '天安, 하늘 아래 편안한 땅' 예로부터 '천안'을 그렇게 불러왔다. 어떤 지명이든 살펴 보면 근거가 없는 이름은 없다. 천안도 마찬가지인데, 여러 지리 환경들을 살펴보

blog.daum.net

 

  * 아파트 건설이 지지부진하다

  내부 사정은 알 수 없지만 몇 년째 아파트 건설이 지지부진하다. 모르긴 모르지만 수지계산을 했을 때 맞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즉, 이곳이 과연 비싼 땅값에 걸맞을 만큼 아파트로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다.

  대한민국의 인구는 이미 정점을 찍었다. 아산의 인구는 늘고 있지만 충남에서 유일하다. 천안의 인구도 정점을 찍은 조짐이 보이고 있다. 이대로 가면 장차 대형 건물, 특히 아파트는 큰 사회 문제가 될 것이다.

그렇다면 찬스가 아닐까? 무리한 주택건설로 환경을 파괴하는 것 보다는 환경도 살리고 도시도 살리는 것이 훨씬 미래지향적이라는 생각이다.

  * 인구 지지 기반이 충분하다

  주변의 인구 크기를 생각해보면 만약 이곳이 공원이 된다면 효율성은 매우 클 것이다. 자이1차, 자이2차, 롯데캐슬, 중앙하이츠, 금호어울림, 그리고 지금 짓고 있는 충남행복주택, 더샵센트로와 계획 중인 배방중학교 앞쪽 아파트 등 무려 여덟 개의 대규모 아파트가 주변에 있다. 뿐만 아니라 수많은 다세대 주택들이 있고 지금도 계속 들어서고 있다. 멀리 곡교천으로 나가거나 배방산으로 가기 전에는 이곳 주민들의 휴식 공간은 사실상 없다고 봐야 한다.

▶즐거운 상상

이곳이 아름다운 공원이 되는 즐거운 상상

 

  배방의 숨통, 자연에 가까운 습지 생태계, 자연재해를 예방하는 완충지, 운동공간, 문화공간, 휴식공간…

  무엇보다 이것이 주거지에 아주 가까이 있다는 사실! 도시 외곽에 어쩔 수 없이 만들어 놓은 공원이 아니라 공원은 도시의 중심부에 있어야 진정한 의미가 있다. 천안 도솔공원 같은 생태계의 보물창고가 도시 외곽에 있어서 더 큰 의미를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을 보면 이곳은 엄청난 보물창고가 될 것이 분명하다.

 

  일장춘몽이겠지만 지나면서 살아나고 있는 생태계를 보는 놀라움에 상상을 얹는 것은 의외로 즐겁다. 하지만 머지않아 흔적도 없이 사라질 운명이라는 생각이 짧은 즐거움 뒤편에 묵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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