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사는 이야기/세상사는 이야기

頓悟頓修, 같이 늙어 좋다.

Geotopia 2016. 7. 9. 20:57

  아침에 산행을 하다가 보니 스틱 꽃잎이 한 개가 떨어져 나갔다(그것을 뭐라고 부르는지 알 수가 없어 꽃잎이라고 불렀다). 등산용 스틱 땅에 닿는 부분에서 5~6cm위쪽에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둥그런 부품이 있는데 내것은 꽃잎이 다섯 장 달려있는 것처럼 생겼기 때문이다.

   지난주던가, 한쪽에 똑같은 일이 일어났었다. 그럭저럭 10여년을 썼으니 크게 아쉬울 것은 없는데 그래도 짝짝이를 들고 다니는 느낌이 들었었다.

   그게 단 며칠만에 양쪽이 똑같아진거다. 10여 년 동안 이상이 없다가 약속이라도 한듯 2주 안쪽으로 똑같이 망가지다니…  신기했다. 일주일 이상 짝짝이를 들고 다니다가 둘이 같아지니까 짝이 맞는 것 같아 안도감 같은 것이 생겼다.

 

  頓悟頓修! 이래서 같이 늙는 것이 좋구나!

 

  친구들 생각이 났다. 나이가 들수록 친구가 좋은 이유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가끔 만나도 여전히 생각과 체력이 엇비슷하니 항상 처음 만난 스무살적같은 착각이 든다. '구구팔팔일이삼!'이라는 욕심스런(?) 건배사를 했던 후배도 있지만 잘 늙는 것이 큰 복이란 생각이 드는 아침이었다. 


<이렇게 똑같았던 녀석이>



<이렇게 똑같아졌다>


  또다른 한 가지 생각이 꼬리를 문다.

  튼튼하게 잘 만든 것이 좋은 물건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쉽게 부서지거나, 내구 연한 이내에 까닭없이 작동을 멈추는 물건은 거의 없다. 그만큼 만드는 기술이 좋아졌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제 잘 만드는 것보다 잘 고장나도록 만드는 것이 기술이 아닐까? 아무리 좋은 물건도 때가 되면 질리기 마련이다. 고장이 나지 않았으므로 그냥 버리기 아까워서 지겹게 쓰는 것도 행복한 일은 아니다. 예를 들면 10여 년을 입어도 멀쩡해서 그냥 버리기 아까운 옷이 꽤 많다. 멀쩡하지만 대부분 유행이 너무 지나버려 입기 어렵다. 적당한 시기에 단추가 떨어진다거나, 실밥이 살짝 터져서 버려도 아깝지 않게 망가진다면? 

  전자제품류는 더하다. 고장이 잘 안 날뿐만 아니라 제품의 수명주기가 짧아져서 계속 쓸래야 쓸 수가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우리집에는 10여 년도 넘은 비디오플레이어가 한 대 있다. 이사를 하면서 몇 번 째 버리지 못하고 들고 다니고 있는 녀석이다. 결혼식 때 촬영한 영상이 비디오테잎에 담겨 있어서 그걸 볼 기회가 있을까봐 못 버리고 들고 다닌다. 플레이어가 고장이 났다면 벌써 비디오테잎을 동영상 파일로 변환했을 텐데 플레이어만 믿고 그냥 차일피일 하고 있다.

 

  가장 행복한 순간에 아름다운 이별을 할 수 있도록 물건을 만드는 기술이 미래사회에 필요한 기술이 아닐까? 사람들의 건강이 좋아지면서 '오래 사는 것' 보다 '잘 늙는 것'이 더 중요해진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