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사기&여행기&답사자료/대경도&향일암

금오산 향일암의 화산암

Geotopia 2012. 8. 15. 23:38

둘째 날 돌산도 향일암과 금오산에 다녀왔습니다. 2편에는 이런 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요람같이 포근한 해상 팬션

  -아쉬울 때 떠나자

  -처음 간 곳을 그냥 지나쳐 오다니…

  -차량출입통제 지역을 들어가는 차량은 누구의 것일까?

  -입장권을 파는 사람이 되다

  -동전을 높은 곳에 올려 놓을수록 큰 복을 준다?

  -아픔의 흔적은 사라지겠지만

  -갑작스런 開眼!

  -뼛속에 스민 냉전의 논리

  -갑자기 주상절리가 눈에 들어오다

  -사진을 찍을 가치가 있는 음식이란?  

 

▶ 요람같이 포근한 해상 팬션 

 

  온 식구가 정말 숙면을 취했다. 적당히 시원해서 좋은데다 파도에 따라 조금씩 흔들 거리는 해상 팬션은 큰 아들의 추측에 따르면 요람같은 움직임을 보인단다. 맞는 것 같다. 유람선에서 잠을 자 본 경험이 두 번 있는데 옛날 금강산 가는 설봉호와 부산에서 시모노세끼를 가는 하마유라는 배였다. 두 배 모두 큰 배였지만 파도가 심해서 배가 많이 흔들리면 자다가도 잠을 깨곤 했다. 머리 쪽으로 배가 심하게 기울면 피가 반대로 쏠려서 잠을 깨곤 했던 것 같다. 그런데 이 팬션은 어느 정도 네 귀퉁이가 고정되어 있고 얕은 곳에 있기 때문에 파도의 영향을 많이 받지 않는 것이다. 아내가 갑자기 깔깔 웃으면서 까칠했던 큰 아들의 어린 시절을 떠올린다. 걸핏하면 한 밤중에 잠을 깨는 버릇이 있었는데 그때마다 요람에 뉘어 놓고 흔들어 주다가 너무 피곤하면 요람 옆에 누워서 졸면서 발로 요람을 흔들어 주곤 했다고 한다. 맞다! 내가 그랬지. 그러다가 누가 먼저 잠든지도 모르게 잠들곤 했었지…

 

<팬션의 여명>

 

▶ 아쉬울 때 떠나자

 

  일찍 나가서 향일암에 들렀다 올라 가기로 했으므로 어로 행위는 아침 일찍이나 가능하다. 사실 별 생각이 없는데 아내가 일찌감치 일어나서 깨워댄다. 아내가 낚싯대를 잡으면 나는 일이 두 배가 된다. 미끼 끼워 줘야지, 잡히면 꺼내서 떼어내 줘야지. 자신이 하는 일이라고는 '잡혔다!'고 소리 지르고 자신의 어획고를 셈하는 것 밖에 없다. 마침내 감을 잡았는지 오늘은 작은 아들의 어획량이 가장 좋다.

  덕분에 아침엔 푸짐한(?) 매운탕을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사실 들어간 생선의 양은 많지 않았지만 싱싱하기 때문에 제법 맛이 좋다. 가지고 온 양념을 몽땅 쓸어 넣고 라면도 집어 넣은 그야말로 '전무후무'한 잡탕 매운탕이 탄생했는데 보기와는 달리 얼큰하면서도 시원한 것이 제법 먹을 만 하다. 온 식구가 또 배만 나오고 말았다.

  미끼며 낚시 바늘이 잔뜩 남아서 식사 후에 좀 더 낚시를 즐겨볼까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아침에 양념까지 다 쓸어 먹었으니 대어를 낚은들 무엇하랴! 약간 아쉬움이 남았지만 아쉬울 때 떠나는 것이 여행의 정석이다.

 

▶ 처음 간 곳을 그냥 지나쳐 오다니…

 

  돌아와서 생각하니 '왜 그냥 왔을까?' 생각되는 이해가 안 되는 짓을 하고 말았다. 시간이 촉박한 것도 아니었는데 대경도를 한 바퀴 일주할 생각을 못했던 것이다. 수려한 경치는 만나지 못하더라도 최소한 새로 만들고 있다는 '섬 골프장의 환경훼손 현장'이라도 보고 왔을텐데… 아마도 페리가 작기 때문에 얼른 나가서 배를 기다리는 시간을 줄여야겠다는 생각이 머리에 가득 차 있었기 때문인 것 같다. 우리반 주현이가 얼마전에 택시를 탔는데 기사 아저씨가 메타기 요금보다 400원이나 적게 청구를 하는 바람에 아저씨가 눈치를 채고 제대로 청구를 하기 전에 후다닥 내리느라고 스마트폰을 놓고 내렸던 얘기를 해서 웃음 바다가 된 적이 있었다. 정도 차이는 있지만 사람이 비슷한 것 같다. 한 가지 생각을 하다보면 어이 없게도 더 중요한 것을 잊어버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선착장에 도착했더니 당당 2등이다. 배가 오자마자 탈 수 있게 된 것이다. 보아하니 배는 건너 편에서 아직 출발을 하지 않았다. 잠깐 밖에 나가보니 이곳이 바닷장어(이 일대에서는 하모(ハモ)라고 부른다)에 대한 안내판이 서 있다. 안내판의 내용은 바닷장어를 선전하는 것이 아니고 어족 자원을 보호하기 위해 작은 것(25cm 이하)은 잡지 말 것을 당부하는 내용이다. 어제 낚시점 아저씨가 밤중에는 장어가 물린다고 해서 내심 기대를 했었는데 작아서 방생하는 것은 고사하고 구경 조차도 하지 못했다.

 

▶ 차량출입통제 지역을 들어가는 차량은 누구의 것일까?

 

  대경도를 나와 곧장 향일암으로 향했다. 날씨가 엄청나게 더워서 주차장에서 암자까지 걸어갈 일이 까마득하다. 향일암 아래쪽으로는 넓은 공터가 없어서 주차장을 이곳에 만들 수 밖에 없었겠지만 사실 걷기에는 좀 먼 거리라는 생각이 올 때 마다 든다. 게다가 이렇게 날이 더우니… 하지만 내 생각을 섯불리 드러냈다가는 식솔들의 집단적인 반발로 향일암 문턱에서 되돌아 가는 불상사가 생길지도 모른다. 가 본 적이 한번도 없는 두 아들을 별로 안 멀다고 구슬려서 씩씩하게 앞장을 섰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것은 반 정도는 그늘 아래로 길이 나 있다는 사실이다. 까짓 이 정도 길이야 기꺼이 걸어갈 생각은 항상 가지고 있지만 언제나 이런 상황에서 유유히 차를 가지고 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문제이다. 왜 그럴까, 누구일까? '관계자'라는 지위인지 사람인지 규정하기 어려운 그 무엇이 자주 사람을 헛심빠지게 하는 것이 우리나라이다. 이런 유치한 특권의식은 얼른 버렸으면 좋겠다.

  당연히 아들들도 생각이 같았을 것이다. 식당마다 붙어 있는 '식사 손님 주차장까지 수송'이라는 표시에 매우 민감한 반응을 보이는 것을 보면 녀석들은 벌써 돌아갈 길을 생각하는 것이다. 큰 아들은 특히 '수송'이라는 말에 많은 흥미를 보인다. '수송'이라는 말을 이런 상황에 붙이는 것이 옳은가? 용례를 생각해 보니 '환자 수송', '승객 수송' 등 틀리는 말은 아닌데 왠지 물건 취급을 받는다거나 수동적으로 운반되는 느낌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 입장권 파는 사람이 되다

 

  식솔들이 화장실에 들렀다가 늦게 오는 바람에 먼저 매표소에 올라가서 입장권을 끊고 기다렸다. 그런데 사람들이 자꾸 나한테 와서 표를 달라고 한다. 밀짚모자에 표를 여러 장(4장) 들고 서있으니 내가 표를 파는 사람인줄 알았던 것이다.

  "아~ 저는 표파는 사람이 아니유~~"

  군중 속에 서 있어도 나는 '군계일학!, 뭔가 있어 보이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라는 말도 안되는 착각을 깨닫는 것도 재미 가운데 하나이다.

  아들과 함께 가파른 계단 앞에 서니 갑자기 근거도 없는 객기가 발동을 한다.

  "누가 먼저가나 뛰어 올라갈까?"

  하지만 아들이 고수다. 아무리 아버지 마음이 청춘이라도 같이 뛰면 결과는 뻔할 뻔자인줄 잘 아는 아들이 아비의 쪽팔림을 미연에 방지해 주는 것이다.

  이 계단이 만들어진 때가 언제인지는 명확하지 않지만 아마도 향일암의 아름다운 경치가 조금씩 알려지면서 암자가 커지기 시작한 이후일 것이다. 대학3학년 때 처음 이곳에 왔을 때는 계단은 고사하고 이곳까지 오는 길도 모두 1차선에 비포장길이었다. 시내 버스를 타고 왔던 그 때 이곳은 원주민인 내 친구 갑인이가 있었기 때문에 올 수 있었던 곳이다. 시퍼런 바닷물이 내려다 보이는 좁은 비포장길에서 반대쪽에서 오는 차를 만나면 그 좁은 길을 왔다갔다 해야만 겨우 서로 비킬 수 있었다. 차체가 넓은 버스에 앉아서 보면 마치 내가 공중에 떠있는 것 같은 공포감이 밀려왔다. 왜 그렇게 카오디오는 커다랗게 틀어 놓았던지 지금도 이곳에 오면 현철의 '따옥아~' 어쩌구 하는 간지러운 노래가 생각난다.

 

▶ 동전을 높은 곳에 올려 놓을수록 큰 복을 준다?

 

  언덕 마루에 올라 아내와 큰아들을 한참 동안 기다렸지만 그림자도 보이지 않는다. 카메라를 가지고 있는 큰 아들이 올라와야 사진이라도 한 장 찍을 수가 있지만 한동안 기다려도 오지 않아 두 갈래 길 중에 긴 코스로 먼저 올라가기로 했다. 틀림없이 아내와 큰아들은 짧은 코스를 선택할 것이므로 도착 시간이 엇비슷할 것이다. 긴 바위틈을 지나 모퉁이를 돌면 경사가 급한 절벽면에 동전을 다닥다닥 붙여 놓은 곳이 있다. 참 진풍경이다. 달리 진풍경이 아니라 우리나라 기복신앙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장면이라서 그런 생각이 들었다. 동아시아 종교의 공통적 특징이 바로 이런 개인의 복을 비는 기복신앙이라는 점이다. 우리나라 어디를 가도 기복행위는 흔히 볼 수 있지만 이런 종류의 기복 행위는 처음 보는 것 같다. 누가 맨 먼저 시작한 것일까?

  마침 앞서 올라가던 한 가족이 선진적인(?) 기복 행위를 한다. 바위 옆에 서 있는 나무를 타고 올라가서 바위의 맨 꼭대기 부분에다 동전을 올려 놓는 것이다. 참 신기한 풍경이다. 동전을 바위에 올려 놓음으로써 복을 받을 것이라는 생각도 신기하지만 똑같은 동전을 맨 꼭대기에 올려 놓으면 더 큰 복을, 아니면 남들보다 먼저 복을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는 뜻인가? 그러고 보면 기복행위는 참 이기적인 행위이다. 남보다 더, 또는 남보다 먼저라는 상대적 가치판단 기준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대평가 행위는 아주 어려서 부터 길러진다. '저 몇 등이예요?'라는 질문은 등수가 아무 의미가 없는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에게서도 흔히 듣는 것이다. 그 때 마다 나는 정말 가슴이 아프다. 행복을 절대적 기준으로 느낄 수 없는 우리 아이들 때문에, 그 불합리한 틀을 어쩌지 못하고 매몰되어 살고 있는 나 때문에 가슴이 아프다.

 

▶ 아픔의 흔적은 사라졌지만…

 

  향일암 원통보전 앞 마당에 올라서니 아내와 큰아들이 예상을 깨고 우릴 기다리고 있다. 동전 올려 놓는 것 구경하느라고 시간을 좀 놓쳤나보다. 마당에 가득 사람이 넘치는 이곳 역시 옛날에 비하면 대궐같이 넓어졌다. 석가모니불이 봉안되어 있는 원통보전을 비롯하여 상, 하 두 채의 관음전과 삼성각을 거느린 이곳은 암자 수준이 아니라 어엿한 사찰이 아닌가 싶다. '향일암'이라는 이름이 '향일사'로 바뀌는 것은 아닐까?

  몇 해 전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로 절이 몽땅 타버렸었는데 불탄 흔적은 전혀 찾아볼 수 없는 깨끗한 모습으로 새단장을 했다. 타 종교와의 관련성이 소문에 떠돌기도 했었는데 사실이 아니길 바라지만 만에 하나 사실이라면 매우 슬픈 일이다. 종교간의 포용이 점점 사라지고 대결만이 전면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은 언제부터였을까? 그 시작이 명확할 수는 없지만 최근에 눈에 띄게 심해진 것은 분명하다.

 

<향일암 원통보전 뒷편으로 보이는 금오산>

 

▶ 갑작스런 開眼!

 

  상관음전으로 올라가는 길에 특이한 모양으로 절리가 발달한 바위를 볼 수 있다. 올 때 마다 '참 이상하다'고 생각을 했지만 그 원인은 깊이 생각해 보지 못했던 그 바위들을 오늘도 만난다. 처음 이곳에 왔던 대학 3학년 시절부터 줄곧 의문을 갖고 있었지만 돌아가면 잊어버리기 때문에 깊이 생각을 해보지 못했었다. 처음 이곳에 왔던 그 때는 지금 생각하면 이런 현상을 해석하기에 너무 애송이였는지도 모른다. 지리학보다는 곁눈질에 바빠 얼추 지리학을 부전공 하다시피 하던 두 명의 얼치기 지리학도가 해석을 하기에는 너무 어려운 현상이었다. 그러니 당연히 과학적 원인보다는 거북인지 자란지에 얽힌 전설이나 줏어 듣고 말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장 최근에 왔던 것은 2008년 겨울 테니스 동지들과 '전지훈련'을 왔던 때였다. 그 때 역시 이 바위의 정체를 정확히 해석하지 못했었다. 그런데,

  이런 것을 개안(開眼)이라고 해야 할까?

  갑자기 '이 바위가 화산암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왔다가 돌아가서 한번 만이라도 지질도를 뒤져 봤으면 이런 의문을 진작 해소했을텐데 왜 한번도 후속 작업을 하지 않았단 말인가? 어쨌든 직선상으로 발달한 긴 절리는 다른 지역의 절리와는 달리 그 깊이가 얕고 일정한 방향성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절리가 일정한 방향성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그것은 지각운동과는 무관하다는 이야기가 된다.

  그렇다면? 

  내 상식으로는 답은 화산암뿐이다.

  그러고 보니 표면이 떨어져 나간 부분은 철분 함량이 높아 산화된 것처럼 보인다. 이번엔 집에 돌아가서 잊지 말고 지질도를 꼼꼼하게 찾아 보리라.

 

<향일암 화산암 앞에 선 입장료 받는 아저씨. 표면이 떨어져 나간 부분은 철분이 산화된 것처럼 보인다>

 

▶ 뼛속에 스민 냉전의 논리

 

  바위 틈으로 난 좁은 굴을 지나 상관음전에 올랐다. 사실 나는 그곳으로 등산로가 나 있으리라 생각을 했기 때문에 올라갔었는데 올라가다 생각해 보니 지난 번에 왔을 때도 똑같은 생각을 하고 올라갔다가 등산로를 못 찾고 그냥 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결국 그 때는 시간이 부족해서 시간을 내서 등산로를 찾을 여유가 없었다.

  등산로는 찾을 수 없었지만 대신에 진귀한 구경을 한 가지 했다. 스무 척에 가까운 어선들이 경주를 하듯이 물보라를 일으키며 향일암 앞 바다를 가로질러 달려가는 장면이었다. 아내와 아들이 이 장면을 보고 이구동성으로 뱉은 말은 '전쟁났다?' 였다. 아무리 애를 써도 냉전의 논리를 벗어나 이 땅에 산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나중에 동네 주민에게 물었더니 요즘은 백조기나 병어잡이 배들이 많다고 한다. 협동작업 때문인지, 아니면 좋은 어장을 먼저 차지하기 위해서인지는 알 수가 없었다. 주업이 음식 및 숙박업이고 한치 등을 말려서 판매하는 분에게 구체적인 정보를 얻는 것은 한계가 있는 것 같았다. 도시에 살고 있다고 도시에서 이루어지는 경제활동을 다 알 수 없듯이 바닷가에 산다고 해서 그 근방에서 이루어지는 수산업에 대해서 모두 다 알고 있는 것은 아니다.

 

<향일암 관음전에서. 어선들이 이렇게 떼지어 이동하는 것은 난생 처음 보았다>

 

▶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보여 주겠다!

 

  대학시절 친구와 처음 왔을 때 밧줄에 매달려 올라갔던 그 바위산을 오늘은 꼭 다시 가보고야 말겠다는 생각을 굳게 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다지 달가와 하지 않는 식솔들의 의견을 굳이 무시하고 등산로를 찾기 위해 이리저리 헤매인 끝에 마치 숨은 그림 찾기처럼 숨겨져 있는(?) 등산로를 찾아 내었다. 등산로는 원통보전에서 산신각을 지나 내리막을 조금 내려가다가 왼쪽에 있었다. 물론 아래에서부터 올라 온다면 다시 내려갈 필요가 없는 길이지만 대부분의 관광객들이 향일암을 먼저 들른다고 보면 올라갔다가 내려가는 길에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나저나 젊은 아들들은 올라가지 않겠단다. 그래도 나는 간다. 아내가 높은 신발을 신은 주제에 의외로 함께 간다고 따라 나선다. 앞장서서 산신각을 넘어서다 보니 온다던 아내는 안 오고 큰아들이 따라온다. 역시 '책임감의 큰아들'이다. 아내가 내 생각해서 따라 나서니까 큰아들이 만류를 하고 대신 올라온 것이다. 체력을 비축하겠다는 작은 아들과 아내는 천천히 내려가서 기다리기로 하고 큰아들과 둘이 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기쁜 마음에 큰 소리를 쳤다.

  "네가 지금까지 본 바다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를 오늘 보여주겠다!"

 

<향일암 산신각에서 바라본 환상의 남해바다(큰아들 사진)>

 

 ▶ 갑자기 주상절리가 눈에 들어오다

 

  워낙 오래 전 기억이라서 그렇기도 하지만 등산로도 분명히 옛날과는 많이 달라져 있다. 우선 기억 속에 강력하게 남아 있는 밧줄이 하나도 없다. 난코스에는 모두 철계단이 설치되어 있어서 계단을 오르면 된다. 줄을 잡고 오르는 것 보다야 쉽지만 가파른 계단은 이상하게 공포감을 일으킨다. 앙코르왓의 그 좁고 가파른 돌계단('타이·캄보디아 여행 3' 참조)이나 구마모토성 덴슈카쿠의 좁고 가파른 나무 계단('일본여행-큐슈' 참조)이 떠오르기 때문이다. 어렸을 적 꿈에 자주 등장하던 돌아갈 길이 막막한 계단이 항상 그렇게 생겼었다. 게다가 이젠 나이가 들어서 그런지 계단을 오르다가 문득 '다리가 풀려서 넘어지면?' 하는 맹랑한 생각이 머리를 드는 것이다. 언젠간 TV 뉴스에서 나왔던 지하철 계단에서 넘어지던 할아버지의 영상이 오버랩되면서 계단이란 것이 만약 넘어진다면 안전장치가 전혀 없는 시설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그런 소심하고 구질구질한 생각들을 하면서 산을 오르는데,

  앗!

  갑자기 앞 쪽에 가파른 절벽이 눈길을 잡아 끈다. 멀리 바다를 배경으로 서 있는 가파른 절벽면에는 상당히 규칙적이고 비교적 조밀한 수직 절리가 발달하고 있다. 암자 주변에 있던 바위들과는 또 다른 모습인데 퍼뜩 머리를 스치는 것은 주상절리이다. 아까의 생각과 연결을 지워보니 정말 그럴듯한 가설처럼 느껴졌다. 이제 돌아가서 지질도를 통해서 화산암인 것만 확인한다면 내 가설은 거의 맞는 것이다. 이미 다 알려진 사실이겠지만 순간 나는 가슴이 뛰었다. 정말 순간적으로 開眼을 한 것이다.

 

<금오산 주상절리>

 

  무등산의 입석대처럼 중생대 화산암이라면 이처럼 절리면의 깊이도 얕고 모가 나거나 각이 지지 않은 모양을 하고 있을 것이다. 한번 그렇게 생각을 하고 나니 계속해서 나타나는 다른 바위들도 그렇게 보인다. 거북등 모양으로 갈라진 바위들도 이젠 쉽게 설명이 된다. 정상으로 올라가면서 나타나는 바위들은 모두 이런 모양을 하고 있다.

  아들은 '정말 올라오길 잘했다'면서 내 체면을 살려준다. 약간 연무가 끼기는 했지만 비교적 날씨가 좋아서 남해바다 특유의 바다색을 잘 볼 수 있다. 내려오는 길은 여러모로 정말 기분이 좋다. 오랫만에 가보고 싶었던 금오산 정상에 올랐다는 성취감 이상으로 느껴지는 무엇이 있다.

 

<거북등 모양으로 갈라진 절리>

 

<돌산도 일대의 지질구조  *원도:한국지질자원연구원, K3:중생대 백악기 화산암>

 

<금오산에서 바라본 향일암 앞 상가와 거북 머리>

 

 

<금오산 화산암>

 

▶ 사진을 찍을 가치가 있는 음식이란?

 

  아내와 작은 아들은 '주차장까지 무료 수송'을 해주는 음식점을 골라서 점심을 먹을 준비를 하고 있다고 연락이 왔다. 점심은 게장백반이다. 게장은 꽃게가 아닌 돌게(바카지)로 만든 것이지만 짭쪼름한 특유의 맛으로 눈맛을 돋운다. 호남의 냄새가 확 느껴지는 화려한 반찬은 아니지만 바닷 내음이 잘 느껴지는 해안형 식단이다. 나는 밥상 차림을 맛보다는 지역특성으로 보는 직업병을 가지고 있다. 항상 식탁에 관심을 갖고 있지만 그래서 사진을 모두 찍지는 않는다. 입맛이 둔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넘쳐나는 맛집 타령에 나까지 발을 들여놓고 싶지 않은 것도 또 하나의 이유이다. 그런 면에서 오늘 점심은 사진을 찍을 가치가 있어 보인다.

 

<돌산도의 게장백반>

 

  산행과 그에 이은 점심 식사는 눈꺼풀을 자꾸만 무겁게 한다. 돌산을 벗어나기 전에 길 옆에 놓인 평상을 우연히 발견하고는 그곳에서 다같이 짧은 낮잠을 즐긴 다음 귀가길에 올랐다. 그래도 내내 눈꺼풀이 무겁다. 정말 갑작스럽고도 우연한 기회에 이루어진 아이들과의 여행은 아마도 일부러 계획을 했더라면 성공하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때론 급조한 여행이 오랫동안 계획한 여행보다 즐거울 때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