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조선을 따라 흐르는 하천
강의 흐름은 '구불구불'하다. 물이 낮은 곳을 찾아 제 맘대로 흐르다가 점점 그 자리를 깊이 파서 물길이 되었을 것이므로 구불구불한 것이 당연하다. 그런데 상류로 갈수록 하천 주변의 산지와 하상과의 고도차가 커서 하천이 주변 지형 때문에 강제로 구불거리는 것을 쉽게 관찰할 수 있다. 감입곡류(嵌入曲流河川, incised meander)라고 하는 이러한 하천은 한반도 하천의 상류에서 잘 나타난다. 반면에 하천의 하류로 갈수록 하천과 주변 산지와의 고도차가 작아진다. 따라서 하천은 주변 지형의 영향보다는 하천이 스스로 낮은 곳을 찾아 흐르다가 곡류하게 되었을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하천은 '자유곡류(free meander 蛇行川)'이다.
[강경 옥녀봉에서 바라본 곡류하는 금강. U자형으로 크게 곡류하는 부분의 출발점이지만 육안으로 보면 거의 각을 느낄 수 없다]
'自由 free'와 '嵌入 incise'은 반대말로 받아들여지지만 사실 두 곡류는 본질적으로 큰 차이가 없다. 왜냐하면 하천이 유도되기 위해서는 먼저 밑그림이 땅에 그려져야 하기 때문이다. 밑그림이란 물을 유인할만한 틈(구조선)을 말하는데 우선 틈이 땅에 만들어져야 하고 물이 그 틈을 따라 흐르게 되면서 점차 하곡이 만들어지게 된다. 알고 보면 이유는 아주 간단하다. 물이 자신의 무게와 속도만으로 마음껏 팔 수 있는 땅은 사실상 거의 없기 때문이다. '낙숫물이 바위를 뚫는다'는 말도 있기는 하지만 물의 침식력은 사실은 그다지 크지 않아서 물 혼자 힘으로 '쌩바위'를 깎아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바위가 물에 의해 깎인다는 것은 사실은 깎이기(침식작용, erosion) 전에 바위가 깨지는 과정(풍화 작용, weathering)이 선행되기 때문에 가능하다. 물은 단지 풍화가 먼저 진행되어 생산된 부서진 암설들을 끌고 갈 뿐이다.
요약하면 하천이 구불구불 흐르는 이유는 자유곡류이든, 감입곡류이든 지질 구조선을 따라 흐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질 구조선은 지각운동 과정에서 만들어지므로 지각운동 에너지가 가해지는 방향을 반영하여 대개 일정한 방향성을 갖는다. 또한 구조선은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대부분 직선 구조를 보인다. 따라서 이론적으로 하천은 자유로운 곡선이 아니라 각이 진 모양으로 흘러야 한다. 한반도는 특히 필리핀판과 태평양판의 영향을 강하게 받아서 기본 구조선이 북동-남서 방향, 또는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발달하며 이 방향과 수직 방향의 2차 구조선이 발달한다. 따라서 대부분의 하천은 1차 구조선과 2차 구조선이 만든 격자상의 구조선을 따라 흐르므로 직각 모양을 보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물이 흐를 때 발생하는 관성과 원심력에 의해 꺾이는 부분이 지속적으로 침식을 당하여 그 각이 부드러워진다.
[금강 중류(공주~부여)에 나타나는 직선상 유로 *Google earth]
▣ 자유곡류, 사실은 자유롭지 않다
그렇다면 금강하류와 같은 곡류는 어떻게 이해를 해야 할까?
한반도는 전체적으로 형성된 시기가 오래된 땅이기 때문에 지질구조가 복잡하다. 지질구조는 지표의 지형으로 표현이 되므로 지형도 매우 복잡하다. 특히 하천은 이러한 지질구조를 잘 반영하여 형성된다. 즉, 물은 낮은 곳, 또는 약한 곳을 찾아 흐르도록 되어 있으므로 복잡한 지질구조선 중에서도 낮고 약한 부분을 자신의 유로로 선택하게 된다. 한반도는 오랜 지질 시대를 거치면서 수많은 지각변동을 받았기 때문에 필리핀판과 태평양판에 의해 만들어진 기본 구조선 외에도 다양한 방향의 구조선이 발달한다. 이러한 구조선들은 하천의 방향에 정확하게 반영이 되어 있다. 금강 하류도 마찬가지이다.
금강 하류 역시 물길이 구불구불하다. 부여읍보다 하류쪽으로 내려가면 주변 산지는 대부분 200m를 넘지 못하는 낮은 구릉성 산지들 뿐이다. 그나마도 하천과 제법 거리가 있어서 이들이 하천의 흐름에 영향을 주었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사실은 완전히 '자유롭게' 물이 흘러서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온전히 물의 힘만으로 땅을 깎기 위해서는 모래나 진흙으로 이루어진 땅이어야만 하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거의 찾아보기 어렵다. 금강 하류도 물론 마찬가지이다. 겉으로 보이는 높은 산이 없을 뿐이지 사실은 상당히 복잡한 지질구조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이 일대에는 한반도에 흔히 나타나는 북북동-남남서 방향의 구조선이 기본적으로 발달한다. 이 구조선은 부여군의 석성면-장암면-임천면으로 이어지는 산지와 논산시 성동면-부여군 세도면-익산시 용안면-익산시 함라면-군산시 임피면으로 이어지는 산지에서 뚜렷하게 관찰이 된다. 특히 성동~임피 산지는 폭이 매우 좁으면서도(200m~1km) 긴(30km) 독특한 형태를 잘 보여준다.
기본 구조선이 뚜렷하게 관찰되는 것에 비해 기타 구조선들은 잘 드러나지 않는다. 하지만 이는 오랜 침식과 복잡한 지질구조 때문이다. 한 예로 부여군 장암면, 임천면, 양화면, 서천군 한산면 일대의 지질도를 보면 매우 복잡한 지질구조선이 나타난다. 또한 세도면과 장암면의 경계 부분으로는 금강이 지나가는데 이 부분은 화강암 지대와 편마암 지대의 경계 부분으로 금강에 의해 직선상으로 절단된 지형을 관찰할 수 있다. 성동~함라 산지 역시 중간에 금강에 의해 서북서-동남동 방향으로 두 번(성동면-세도면, 세도면-용안면) 절단이 되었는데 이는 전형적인 2차 구조선 방향이다.
[구조선이 매우 복잡한 부여-서천 경계 지역 *한국지질자원연구원]
▣ 서로 다른 지층의 경계를 절단한 금강: 장암면 장하리
부여군 세도면, 장암면, 석성면 일대는 지질구조가 복잡한 편이다. 화강암 지대와 편마암 지대가 주를 이루며 독특하게 백악기 퇴적암(경상계)이 세도면 일대에 일부 분포한다. 하지만 금강의 하류에 해당하여 높은 산지는 없다. 지질구조선의 방향은 전체적으로 북북동-남남서 방향이며 금강 북쪽(석성면 일대)에는 구조선을 반영한 단층선이 발달하여 산지가 단층선을 따라 직선상으로 발달하는 독특한 형태를 보인다.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발달하는 이 산지는 부여군 장암면 장하리 앞 부분에서 금강에 의해 갑자기 절단되었는데 절단된 부분은 바로 화강암 지대와 편마암 지대의 경계부이다. 즉, 하천의 유로가 지질 구조선에 의해 유도됨으로써 거의 직각상으로 곡류하게 되었으며 이로 인해 공격사면과 퇴적사면이 뚜렷하게 구별되게 되었다. 장하리는 직각상으로 곡류하는 금강의 퇴적사면에 발달한 마을이다.
장하리 남쪽에 위치하는 하황리 일대(삭신골)의 산지는 금강의 건너편인 석성면 봉정리 일대의 산지(파진산, 200m)와 연속된 산지였으나 금강에 의해 절단되었다. 그 증거는 하천 양쪽의 산지 사면이 급경사의 말단면을 보이는 것이다. 또한 이 말단면은 모양이 대략 삼각형인데 이는 산의 단면 형태를 반영한 것으로 삼각 말단면, 또는 산각 말단면이라고 한다.
[직선상으로 발달한 산지가 금강에 의해 절단된 부분(부여군 세도면-부여군 장암면)]
[장암면 장하리에서 바라본 석성면 파진산의 삼각 말단면]
[다양한 선구조(Linear structure)가 나타나는 금강 하류 *Google earth]
금강 하류는 중류 지역에 비해 유로가 훨씬 불규칙한 모양을 보인다. 하지만 이러한 현상은 자유곡류에 의한 현상이라기 보다는 위에서 살펴본 것처럼 다양한 방식으로 지질구조가 반영된 결과이다. 금강 본류 양안의 산지들은 전체적으로 북북동-남남서 방향으로 배열되어 있는데 금강은 이 구조선을 때로는 절단하고, 때로는 따라가면서 유로를 형성하고 있다. 특히 금강의 동남부의 구릉성 산지는 뚜렷한 북북동-남남서 방향을 보여준다. 오랜 침식으로 고도가 낮아졌으나 그래서 더욱 뚜렷한 방향성을 관찰할 수 있다. 또한 선모양으로 발달한 구릉 정상부의 높이가 거의 비슷한 봉고동일(峰高同一)형의 도상구릉(島狀丘陵, inselburg) 형태를 보여주는 특이한 지형이기도 하다.
[금강에 의해 절단된 직선상의 산열(부여군 세도면 청포리-익산시 용안면 용두리)]
[익산시 용안면 일대에 발달한 직선상의 산지. 봉고동일(峰高同一)형의 도상구릉(島狀丘陵, inselburg)이다]